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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초 Joe Cho Mar 02. 2024

빌어먹을 안도감을 주는 한강

2023년 8월 반포한강공원을 걷는 이유

CB MASS의 데뷔 앨범 중에 <서울 Blues>라는 곡이 있다. 최자의 “허무함 속에 보내는 매일의 삶 속에 그 속에 세상에 지친 나의 고독한 영혼에 가로막힌 앞날에 이곳 서울이라는 무대 위에 인생이란 긴 공연을 펼치네…” 랩으로 시작하는 노래다. 당시 대구에서 서울로 갓 올라와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터라 가사 한 문장 한 문장이 주는 임팩트가 남달랐다. 이 곡은 <나침반>, <진짜>와 달리 유명하지 않은 노래라(나만 아는 노래라) 노래방에 가도 섣불리 예약할 수 없었지만, 만취하면 꼭 기여코야 반드시 꺼내 부르곤 했던 노래다. 그중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가사는


“이곳은 빌어먹을 안도감이 들어와 와와!! 빌어먹을 안도감이 생겨 하…”


그렇다. 서울은 로열 럼블 같은 일상이 도사리는 징글징글한 정글이어도, 어디론가 여행 갔다가 돌아오면, 그래도 이제는 빌어먹을 안도감이 생기는 곳. 어느덧 알 수 없는 포근함과 추억이 있는 곳이 되어 버렸다. 내가 태어난 곳도 아닌데 고향 같은 안념을 준다. 그 안정감은 해마다 더 깊어지는 듯하다.


이러한 서울에서 내가 가장 애정하며 걷기 좋은 길은 한강이다. 그중에서도 세빛섬이 있는 반포대교 일대, 그중에서도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런데 이 명소를 정작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르는 듯하다. 석양이 깔리기 시작할 즈음 서래섬에는 일몰을 감상하기 위한 이들이 모여드는데, 반 정도는 외국인이다. 치맥을 즐기는 이들로 북적이는 건너편 서래나루와 달리 이곳은 여유롭고 심지어 목가적이기까지 하다. 바로 뒤에 반포 래미안과 자이가 거인처럼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곳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빌어먹을 안도감이 생기곤 한다.


어둠이 한강에 내리면 반포대교는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는다. 빨주노초파남보 색깔과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달빛무지개분수는 4월부터 10월까지 반포대교에서 춤춘다. 계단은 계단식 관람석으로 변한다. 어디선가 K-POP도 들려온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어째 말이 별로 없었다. 5분만 앉아 있어도 위로가 되었다.


서울의 밤, 한강의 밤이 주는 위안은 인공적이다. 야근하느라 저녁 식사를 하느라 불을 밝힌 건물과 가로등, 어디론가 바삐 가는 자동차의 라이트 등이 만들어낸 조명의 교향곡이다. 전깃불 없는 한강은 암흑의 아마존강과 다름없다. 이 얼마나 메트로폴리탄다운 위로인가. 서울에 한강이 있어서, 세빛섬이 있어서, 서래섬이 있어서 참 행운이다. 이곳은 하루하루가 로열 럼블 같은 서울살이에 오아시스처럼 잠시나마 숨통을 틔워준다. 일과를 마치고 걷고 쉬다 보면 그래도 다시 일어설 체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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