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14 득템의 마을, 라 발레 빌리지
그리고 4년 뒤, COVID-19 팬데믹이 막 끝날 무렵, 다시 파리에 가게 됐다.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네 번째 착륙했다. 이번 트립에는 운 좋게도 개인 시간이 좀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파리를 오가며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두 잠든 후였다. 다음 날 늦잠을 실컷 자고, 디즈니랜드 파리 방향으로 차를 몰고 달렸다. 목적지는 라 발레 빌리지(La Vallée Village), 유럽 최대 명품 아웃렛으로 매번 파리에 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그런데 올 때마다 항상 아쉬운 점이 있었다. 시간이다. 매번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시간에 쫓겨 들르다 보니 상품을 제대로 둘러볼 시간이 부족했다. 기껏 한두 시간 정도였을까? 그래서 이번에는 여유롭게 천천히 산책하듯 둘러보기 위해 여기부터 시작했다.
이곳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득템’의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정가 대비 보통 30~60% 할인받을 수 있고, 시즌에 따라 추가 세일도 있다. 여기에 부가세 환급(Tax Refund)까지 받으면 또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 아웃렛보다 희소성이 높은 아이템이 종종 풀린다. 예를 들어, 시즌 한정으로 나온 색상이나 파리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만 팔던 물건이 이곳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여기에 포르쉐 디자인 숍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포르쉐X리모와 파우치를 할인에 할인을 더해 1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사서 지금도 애지중지 잘 쓰고 있다. 그 밖에도 몇몇 명품을 웃음이 새어 나오는 가격에 얻었다. 좋지 아니한가!
쇼핑도 식후경, 바지런히 돌아다니려면 든든히 먹어야 한다. 라 발레 빌리지 내의 상점은 110개가 넘는다. 점심은 라 발레 빌리지 옆에 있는 Centre Commercial Val d'Europe에서 먹었다. 식당은 이곳에 많다. 라 발레 빌리지 안에는 마땅히 밥 먹을 곳이 없다.
가드들이 서 있는 정문을 들어서자 설렘 게이지가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지름신들의 올림포스랄까. 견물생심, 이 마을에만 들어서면 없던 물욕도 샘솟는다. 유독 동양인에게 인기가 놓은 숍들이 있다. 몽클레르(Moncler), 버버리(Burberry), 프라다(Prada), 구찌(Gucci), 셀린느(Céline) 등 한국에서 가격이 높은 명품 브랜드 숍은 항상 붐빈다. 특히, 몽클레르 다운 재킷, 버버리 트렌치코트는 환율·할인·면세까지 고려하면 국내 대비 상당히 저렴해 인기가 높다. 발렌시아가 스니커즈 등도 잘 팔린다. 유럽 현지라 사이즈와 컬러 옵션이 한국보다 다양하다. 디올, 구찌, 프라다, 코치, 마이클 코어스 등 핸드백과 지갑류도 잘 팔리고, 가족 단위로 온 여행객은 봉쁘앙(Bonpoint), 키즈 라인 명품 브랜드도 많이 찾는다. 상품을 둘러보고 있으면, 영상 통화 혹은 사진 찍어서 보내는 이들도 많이 보게 된다.
이번 방문에서는 몽클레르에서 다운 재킷을 하나 샀다. 무려 60% 할인. 한국에서 많이 안 입는 스타일이긴 한데, 오히려 더 좋다. 여기에 부가세 환급까지 더하면 거의 70% 깎인 가격에 구입했다. 숍에 있는 거의 모든 재킷을 다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건 입어보기까지 했다. 구매하기까지의 이러한 과정을 천천히 여유롭게 즐겼다. 난 알고 있었다. 이러한 순간이 다시 오기는 아주 매우 대단히 어렵다는 걸. 몽클레르 다운 재킷은 입고 있는 동안 기분이 쾌적하다. 부피는 큰 편인데 상당히 가뿐하다. 원단 촉감은 부드럽고, 안감 통풍이 잘 되는지 실내에서 입고 있어도 땀이 차질 않는다. 안에 반팔 티셔츠 하나 입고 가볍게 걸칠 수 있어 평소 열이 많은 나에겐 꽤 실용적이다. 왜냐하면 겨울이어도 웬만한 실내는 온도가 20도 내외라 나는 365일 반팔 티셔츠를 입기 때문이다.
폴 스미스 매장은 이곳에 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른다. 과거 MINI STRIP 작품을 통해 입덕한 폴 스미스는 국내에서 쇼룸을 만나기 어렵고 규모도 작은 편이었어서 여기 오면 실컷 구경했다. 폴 스미스의 가장 큰 매력은 영국식 클래식 슈트에 유머를 더한 감성이다.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에 고급 원단을 쓰고, 형광 안감, 컬러 스티치, 버튼 뒷면의 숨은 포인트 등 디테일은 예상 밖이다. 진지함 속에 위트가 숨어 있다. 정장을 입되, 지루하진 않은 철학이 꽤 매력적이다. 멀티컬러 스트라이프는 자유와 낙관을 드러내고, 정형화되지 않는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 패션은 이처럼 즐거워야 한다.
AMI Paris, ba&sh, Anne Fontaine, A.P.C., Zadig & Voltaire, Sandro, Maje, Longchamp 등의 프랑스 브랜드도 이곳에서 만나면 뭔가 더 실감 난다. 각 브랜드들이 고민하고 펼쳐 놓은 상품들은 누군가에겐 작품이다. 그게 만든 사람이든, 사는 사람이든. 그걸 구경하고 내 소유로 만드는 재미는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하는 것과 다른 묘한 즐거움을 준다.
Nov,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