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정원을 거닐다

프랑스 #15 페르 라세즈 묘지에서의 思惟

by 조디터 Joditor

파리의 동쪽 끝, 바스티유를 지나 오랜 돌계단을 오르면 도시의 소음이 갑자기 옅어진다. 자동차 경적도, 카페의 웃음소리도 닿지 않는 곳. 대신 미세한 바람이 잎사귀를 스치는 소리와,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만이 길동무가 된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함께 있다.


페르 라세즈 묘지(Cimetière du Père-Lachaise)는 전 세계 묘지 중 방문객 수가 가장 많다. 해마다 350만 명 이상이 이곳을 찾아 조금은 무거운 산책을 즐긴다. 파리 최초의 정원식 묘지라 꼭 누군가의 묘소를 찾는 게 아니어도 마냥 걷기 좋은 곳이다. 처음 이곳에 들어섰을 때, ‘묘지’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잊었다. 고요함 속에서도 묘한 생동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좁은 오솔길 양옆으로 고딕풍의 묘비와 이끼 낀 천사가 나란히 서 있고,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묘비 위를 물들였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죽음의 정원’을 설계한 듯했다. 삶과 죽음이 같은 땅 위에서 순환 중이다.


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다 보면 이름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프루스트, 쇼팽, 피아프, 모딜리아니, 오스카 와일드, 짐 모리슨… 한 시대를 흔들었던 예술가들의 이름이,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무심히 놓여 있다. 하지만 묘비 앞에 서면 그들의 죽음보다도 그들이 남긴 ‘기억의 생명력’이 먼저 다가온다. 역시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기억된다는 건, 어쩌면 가장 완전한 생의 증명 아닐까?


가장 먼저 만난 건 쇼팽의 무덤이었다. 하얀 대리석 위에 음악의 여신 에우테르페(Euterpe)가 부서진 리라를 들고 울고 있다. ‘잃어버린 선율’이라는 제목의 조각이다. 바람이 지나가면 그 조각상에 붙은 낙엽이 흔들리며 마치 음악처럼 흩어진다. 누군가 놓고 간 하얀 장미 한 송이가 묘비 아래 누워 있었다. 폴란드에서 온 방문객일까, 아니면 그의 녹턴을 사랑했던 어느 청년이었을까? 삶이란 결국 짧은 멜로디의 연속이다. 현재 그의 시신은 파리에, 심장은 바르샤바 교회에 안치되어 있다.


그다음 길모퉁이에서 만난 건 오스카 와일드의 묘였다. 날개를 펼친 스핑크스가 무덤을 덮고 있었고, 투명한 유리 벽 너머로 수많은 입술 자국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에게 키스를 남기며 사랑을 고백한다. 생전의 와일드가 그토록 추구했던 것은 결국 사랑과 자유였을 것이다. 묘비에 새겨진 문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를 애도할 자들은 모두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들이리라.”


조금 더 걸어가면 언덕 중턱에 짐 모리슨의 무덤이 있다. 이 묘지 최고의 스타다. 언제나 그 앞엔 누군가가 남긴 담배꽁초와 와인병, 꽃다발 등이 있다. ‘Riders on the Storm’의 가사처럼, 그의 삶도 폭풍 속 질주였다. 흥미로운 건 그의 무덤이 늘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팬들이 낙서를 남기고, 경찰이 지우고, 또 새로운 낙서가 생긴다. 살아 있는 듯, 여전히 대화가 이어진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대화의 다른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의 흉상은 1988년에 도난당했다 최근 경찰이 사기 사건을 조사 중 우연히 발견됐다고 한다. 묘지로 돌아갈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묘지의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르자,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회색의 파리 지붕들, 멀리 에펠탑의 실루엣, 그리고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석양. 이곳에 누워 있는 이들에게 이 풍경은 매일 저녁의 인사일 것이다. 삶의 마지막 장면이 이런 빛이라면, 죽음도 그리 두렵지 않을 것 같다.


내려오는 길, 헬로이즈(Héloïse)와 아벨라르(Abélard)의 묘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11세기 말 둘은 스승과 제자로 시작해 깊은 학문적 교류와 감정적 유대를 주고받으며 사랑했다. 세상의 반대로 둘은 수도자의 길을 걸으며 헤어졌지만, 둘은 편지로 서로의 삶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깊은 정신적 유대를 이어갔다. 이들의 편지는 중세 라틴어 문학의 보물이 되었고, 사랑, 도덕, 헌신, 갈등을 탐구하는 중요한 기록이 됐다. 묘소에는 이들이 함께 누워 있는 모습이 조각돼 있다.


묘지를 나서는 길목에는 커다란 벽이 있다. ‘코뮌의 벽(Mur des Fédérés)’이라 불리는 그곳에서 1871년 혁명가들이 총살당했다. 묘지의 고요 속에서도 그 벽 앞은 유난히 무겁다. 그러나 동시에 희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매년 5월, 사람들은 이 벽에 꽃을 놓으며 자유와 평등을 기린다. 죽은 자들의 이상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나의 죽음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까? 내 장례식장에는 누가 올까? 누가 울까? 화장 후 내 유골은 어디에 안치될까? 혹은 어디에서 흩뿌려질까? 영혼은 어디로 흘러갈까? 누가 얼마 동안 어떻게 기억할까? 기억이나 할까?


길 끝에서 문득, 이곳이 묘지가 아니라 거대한 기억의 도시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모두 언젠가 이곳의 주민처럼 되겠지만, 중요한 건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일 것이다. 음악 한 줄, 시 한 편, 혹은 누군가의 기억 속 따뜻한 미소 하나라도. 묘지의 문을 나서자 다시 소음이 몰려왔다. 택시의 경적, 아이들의 웃음, 커피잔이 부딪치는 소리.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소음이 하나의 교향곡처럼 들렸다. 죽음의 정원을 걸은 뒤라서일까, 세상의 모든 소리가 조금 더 선명하게, 조금 더 소중하게 들렸다.


Nov,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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