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16 그저 복원할 뿐
11월의 파리는 이미 겨울의 문턱에 서 있었다. 센강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에는 이방인에 대한 쌀쌀함이 묻어 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향하던 그날, 하늘에는 구름이 잔잔히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여전히 이 도시를 지켜보는 신의 시선처럼, 잿빛과 푸름이 섞인 그 하늘 아래에서 무언가 장엄한 것을 마주하러 가는 기분이었다.
성당 앞 광장에 다다르자, 익숙한 실루엣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첨탑을 둘러싼 비계만 족히 100m는 돼 보였다. 울타리에는 복원에 대한 인포그래픽이 만화 형식으로 빼곡히 표현돼 있었다. 화재 이후 복구 작업이 한창이던 노트르담은, 여전히 상처 입은 채로 서 있었다. 첨탑은 사라지고, 지붕 위에는 금속 발판과 크레인이 엉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불에 그을린 흔적마저도 마치 오래된 회화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2019년 4월 15일 월요일 오후 약 18시 18분쯤(파리 현지 시각), 유럽은 울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지붕 밑의 서까래 공간(지붕 구조 상부 부분)에서 화재가 시작됐다. 불은 빠르게 지붕과 첨탑(spire) 쪽으로 번졌고, 결국 첨탑이 붕괴하고 대부분의 지붕 구조가 없어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성당의 정면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거나, 철제 펜스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들의 틈 사이에서 가만히 숨을 고르고, 화재 당시의 장면을 떠올렸다. 불길 속에서도 종소리가 멈추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수많은 파리 시민이 밤새 성당 앞에서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스쳤다. 그 순간 노트르담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기억의 성전’처럼 느껴졌다.
성당 내부로 들어갈 수 없었기에, 대신 옆길로 돌아갔다. 복구용 구조물이 사방을 감싸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 고딕 양식의 아치는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질서정연한 곡선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신앙의 형태이자, 시간의 흐름을 견뎌낸 의지의 상징 같았다.
한참 동안 노트르담을 바라보았다. 찬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마음속엔 이상하게 따뜻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무너진 것, 잃어버린 것, 그리고 다시 세워질 것에 대한 믿음이 그 속에 있었다. 사람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불에 타거나, 부서지고, 무너져도, 우리는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그날 노트르담 앞에는 여러 언어로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Reconstruction in progress.”, “La renaissance de Notre-Dame.”, “다시 태어나는 노트르담.” 그 문구를 보며 나는 문득 ‘복원’이라는 말이 단지 건축적 행위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신앙의 복원, 공동체의 복원, 그리고 인간 자신에 대한 믿음의 복원이기도 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뒤에도 성당의 윤곽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불길이 사라진 자리에, 이제는 복원의 불빛이 깜빡였다.
Nov, 2022
그리고 지금.
2024년 12월 7일 노트르담 대성당은 복원을 마치고 공식적으로 문을 다시 열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프랑스 역사 기념물 총괄 건축가인 필리프 빌뇌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노트르담 대성당에 손을 댈 권리가 없습니다. 그저 복원할 뿐이죠.” 그의 말처럼 대성당은 원형 그대로 다시 살아났다. 2,000개의 조각상과 장식물이 복원되거나 새로 만들어졌다. 지붕을 덮기 위해 주조된 납의 면적만 4,000㎡에 달한다. 골조에 쓰인 참나무 수는 2,400그루다. 첨탑 위에 있던 수탉 장식만 불꽃 모양의 날개를 달고 재탄생됐다. 비계를 박기 위해 굴삭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는 두 기의 석관이 출토되기도 했다. 각각 1710년, 1500년대의 것으로, 별도로 추가 연구 중이다.
복원은 다른 말로 업그레이드다. 복원팀이 내부 벽면, 조각상, 석조 부재 등을 대대적으로 청소하고 복원해, 화재 이전보다 내부가 더 밝아졌고, 돌벽과 장식 부분이 훨씬 선명하게 보인다. 특히 장식 세부, 부조(relief) 같은 부분의 먼지와 때가 제거돼 더 뚜렷해졌고, 조명이 보강된 부분도 있어서 공간이 더 살아 보인다. 재개장한 지 거의 1년이 지난 지금의 노트르담은 과거의 상처와 복원의 흔적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모한 느낌이 강하다. 완전히 복원된 ‘완전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손상 전의 위용을 어느 정도 되찾았고, 무엇보다 현재진행형 복원 프로젝트라는 점이 이 성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