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18 퐁피두 현대미술관에서
파리의 하늘은 잔잔하게 젖어 있었다. 센강 위로 얇은 안개가 흘러가고, 퐁피두 현대미술관의 유리 외벽에는 빗방울이 부딪혀 흘러내렸다. 회색빛 하늘 아래, 철제 구조로 이루어진 이 낯선 건축물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빛났다. 마치 빗속에서 제 색을 찾은 것처럼.
이 낯선 건축물이 주는 감정은 낯설지만 묘하게 익숙했다. 신발 뒤꿈치 부분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나이키 에어맥스 시리즈. 그 디자인은 퐁피두 센터 건물 외관에서 영감받았다. 파이프와 덕트, 설비 등이 건물 외부에 노출된 퐁피두 센터의 디자인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다. 애벌레처럼 외벽을 따라 길게 설치된 투명 에스컬레이터는 길이만 1㎞에 달한다.
이곳에는 프랑스의 국립현대미술관(Musée National d'Art Moderne)이 있었다. 90개국, 6,400명 작가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작품 수만 10만 점이 넘는다.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고, 세계에서는 뉴욕 MoMA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그래서 볼 게 너무 많았다. 4층은 모더니즘, 5층은 추상표현주의, 6층은 특별 기획전을 전시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빗소리가 멀어지고, 대신 정적이 나를 감쌌다. 캔버스와 조각들 사이로 묘한 리듬이 흐르고 있었다. 그건 분명히 ‘침묵의 음악’이었다.
가장 먼저 나를 멈춰 세운 것은 에펠탑 덕후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의 작품들이었다. 그의 대표작 ‘에펠탑’은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색과 노란색, 그리고 그사이를 오가는 청색의 리듬이 조화를 이룬다. 그의 붓질은 형태를 그리기보다, 빛 그 자체를 잡아내려는 듯 보인다. 들로네는 색을 통해 현실을 새로 짜맞추었다. 그의 에펠탑은 더 이상 강철의 구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에너지와 진동의 상징, 파리의 맥박이었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그림 속에서는 모든 것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들로네가 ‘에펠탑’에서 뜨거운 색채를 드러냈다면, ‘시인 필립 수포(Le poète Philippe Soupault)’에서는 차가운 침묵을 표현했다. 수포는 단순히 시인이 아니라 당시 아방가르드 문학/예술운동의 교차점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림 속 수포는 창문 너머 도시 쪽을 바라보는 듯 보이면서, 동시에 내면을 향한 사색자의 표정을 하고 있다. 배경에는 들로네의 특징인 창문·커튼·에펠탑 같은 도시 구조물이 색면과 형태의 리듬으로 표현됐다.
색이 울리는 듯한 들로네의 작품을 지나자, 샤갈의 서정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이카로스의 추락(La Chute d’Icare)’ 앞에서도 한참을 서 있었다. 신화 속 인물인 Icarus(이카로스)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다가 날개 왁스가 녹아 추락한다는 고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샤갈은 이 신화를 자신의 유년기 마을인 벨라루스 풍경, 또는 그 기억들과 결합해 표현했다. 그림 속 배경이 마을 광장처럼 보인다는 설명이 보였다. 위에서부터 하강하는 이카로스, 아래쪽엔 마을 사람들, 집들, 동물 등이 함께 등장하며, 붉은 톤과 밝은 톤이 대비되어 ‘추락’의 역동성과 시각적 충격을 만든다. 역시,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기도하는 수녀(Nonnens bøn)’는 경건한 제목과 달리, 비현실적 공간·변형된 인체가 부조화와 긴장을 만들어내는 초현실주의적 작품이다. 덴마크 화가 빌헬름 프레디(Wilhelm Freddie)는 1930년대에 무의식의 표현을 환각적인 이미지로 섬세하게 묘사하는 회화 기법을 도입했다. 1938년 파리 국제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출품된 이 그림에서 달리의 ‘유령’ 형상을 연상시키는 기형의 여성 신체는 불분명하고 불안한 공간에 고립됐다. 그 안에는 신성모독적인 성격이 뚜렷하게 드러나 눈길을 끌었다.
어렵다. 사실,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은 모두 난해하다. 현대미술 자체가 그러하다. 19세기 이전의 미술은 종교·역사·신화처럼 명확한 이야기와 주제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작가들은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라고 생각했다. 칸딘스키, 몬드리안은 ‘감정과 음악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를 표현하려고 했다. 달리, 마그리트, 샤갈 등은 ‘꿈과 무의식’을 시각화했다. 즉, 작품은 ‘정답을 전달하는 그림’에서 ‘질문을 던지는 매체’로 바뀌었다. 그래서 퐁피두의 전시를 보면 ‘이게 뭘 말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그 혼란이 곧 현대미술의 핵심 경험이다. 예를 들어, 샤갈의 ‘이카로스의 추락’은 신화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그가 경험한 인간의 한계와 꿈의 추락을 담았다. 빌헬름 프레디의 ‘수녀의 기도’는 종교의 상징을 뒤틀어 당시 사회의 위선과 금기를 비판한다. 예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이다. 그림 앞에서 길을 잃는 순간, 오히려 내가 나를 다시 발견한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는 미술관을 나올 때쯤 잦아들었다. 광장에는 아직도 물웅덩이가 남아 있었고, 그 위로 퐁피두의 불빛이 일렁였다. 저 멀리 에펠탑마저도 내 머릿속처럼 모호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Nov, 2022
그리고 지금
퐁피두 센터는 개관 반세기를 지나 복원의 시간을 맞이했다. 낡은 설비와 석면을 걷어내고, 더 효율적이고 열린 공간으로 태어나기 위한 준비 중이다. 2025년 9월 22일부로 문을 닫았고, 2030년 재개관을 향해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다. 그 빛나던 유리 외벽은 지금 복원을 위해 긴 잠에 들었다. 2030년, 다시 깨어날 그날의 파리 하늘은 또 어떤 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