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17 생루이섬과 시테섬 산책
파리의 하루는 언제나 느리게 깨어난다. 분주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는 묘한 생기가 있다. 이른 아침, 센 강 위로 옅은 안개가 내려앉았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생루이섬(Île Saint-Louis)은 더욱 고요했다.
관광객이 몰려드는 시테섬과는 달리, 이곳은 파리의 일상과 낭만이 고요하게 공존하는 공간이다. 오래된 석조 건물, 작은 갤러리, 부티크 그리고 문턱 낮은 카페들.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져 있다. 횡단보도가 교차하는 모퉁이의 식당만 분주해 보였다. 누군가 나와서 빗자루로 이미 깔끔한 보도블록을 습관처럼 쓸고 있었다. 간판에는 ‘Le Saint-Régis – Paris’ 라는 이름이 걸려 있었다. 혹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나 싶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Bonjour, monsieur.” 종업원의 인사와 함께 따뜻한 공기가 내 얼굴을 감쌌다. 카페 안은 오래된 나무 테이블과 황동 조명이 만들어내는 아늑함으로 가득했다. 유럽식 클래식이 잔잔하게 흘러나왔고, 커피 머신의 증기 소리와 잔 부딪히는 소리가 교차했다. 나는 오믈렛과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접시 위에 완벽한 곡선으로 말린 오믈렛이 놓였다. 포크를 넣자 부드럽게 갈라지며 향긋한 버터 향이 퍼졌다. 따뜻한 달걀 사이로 녹아든 치즈가 흘러내렸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그 부드러움 속에 깃든 깊은 맛이 입안을 감쌌다. 짭조름한 버터, 고소한 달걀, 그리고 은근한 허브 향. 모든 게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시자, 입안의 버터 향이 선명해졌다. 진한 커피의 쓴맛과 오믈렛의 부드러움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그 짧은 순간, 파리의 아침은 완벽했다. 나는 아무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유리창 너머로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조깅하는 남자, 그리고 강가에 멈춰 선 연인들이 있었다. 파리의 하루가 천천히 깨어나는 모습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 문을 나섰을 때, 햇살은 한층 더 따뜻해져 있었다. 강가의 공기는 상쾌했고, 물결은 잔잔하게 반짝였다. 생루이 교(Pont Saint-Louis)를 건너 시테섬으로 향했다. 생루이 교는 1630년대에 처음 놓였다. 그런데 지난 세월 수차례 물살에 떠밀려 무너지고 다시 세워졌다. 지금까지 목조 다리, 붉은 다리, 쇠다리가 겹겹이 존재했다. 여러 번 죽고 다시 태어난 역사가 담겨있다.
시테섬으로 들어가자 웅장한 노트르담 대성당(Notre-Dame de Paris)이 보였다. 몇 해 전 화재로 지붕이 크게 훼손된 뒤 복원이 한창인 그곳은 여전히 장엄했다. 수 세기 동안 그 자리에 서서 파리의 시간을 지켜본 건축물답게, 비록 상처를 입었어도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대성당 광장에는 ‘Point Zéro des Routes de France(프랑스 도로의 출발점)’라는 작은 청동 원반이 바닥에 박혀 있다. 모든 프랑스 도로 거리 측정의 기준점이다. 아마도 시테섬이 파리의 기원이기 때문일까? ‘Cité’라는 이름 자체가 라틴어 ‘Civitas(도시)’에서 왔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이곳은 정착지였고, 파리의 옛 이름 루테시아(Lutetia)의 중심이기도 했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이곳을 한 번 밟으면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시테섬은 파리의 연인들 은신처로도 유명하다. 중세 시절에는 섬 곳곳에 정원과 과수원이 있었고, 귀족들이 은밀한 만남을 즐기던 곳이었다.
퐁 다르콜(Pont d’Arcole) 다리를 건넜다. 이 다리는 ‘사랑의 다리’라고도 불린다. 파리의 다리들에는 항상 사연이 있다. 1848년 혁명 때, 한 젊은 병사가 깃발을 들고 이 다리를 뛰어넘다 전사했고, 그를 기리기 위해 다리에 ‘아르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후대 연인들은 그 희생을 ‘열정과 헌신의 상징’으로 여겨 이곳에서 사랑을 맹세한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자 고풍스러운 파리 시청(Hotel de Ville) 건물이 으리으리하게 나타났다. ‘Hotel de Ville’는 말 그대로 ‘도시의 집’이라는 뜻이다. 1357년, 파리 시민들의 대표였던 에티엔 마르셀(Étienne Marcel)이 “왕의 명령이 아니라, 시민의 힘으로 도시를 운영하겠다”라는 선언과 함께 세운 자치의 상징이다. 1871년 ‘파리 코뮌(La Commune de Paris)’ 당시 노동자와 시민들이 일시적으로 파리를 장악하며 사회주의적 자치를 선언했는데, 정부군이 진압에 나서자, 코뮌 세력이 퇴각 직전 시청에 불을 질렀다. 그 불길은 사흘 동안 꺼지지 않았고, 르네상스 양식의 원래 건물은 완전히 잿더미가 됐다. 지금 우리가 보는 시청은 1882년에 원형 그대로 복원된 ‘불사조 건물’이다.
시청 건물의 한쪽에는 파리 관광 안내소(Office de Tourisme de Paris)가 있다. 그곳에서 ‘파리 뮤지엄 패스(Museum Pass)’를 구매했다.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등 파리의 주요 미술관에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는 카드였다. 그곳의 기념품숍은 의외로 풍성했다. 작은 엽서, 루브르의 미니어처 조각, 에펠탑 열쇠고리, 노트르담의 북마크까지. 파리의 감성이 작은 오브제로 변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몇 가지를 골라 담았다.
시청사를 나와 다시 강가로 걸었다. 햇살은 이제 완연히 따뜻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거리의 카페에서는 빵 굽는 냄새가 퍼졌고, 자전거를 탄 배달원들이 오가며 도시의 리듬을 완성했다. 파리의 아침은 그렇게, 무심히 지나갔다.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그저 걷고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도시가 주는 선물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다.
Nov,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