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야경 맛집은 여기다

프랑스 #23 에투알 개선문 야간 산책

by 조디터 Joditor

파리의 밤은 언제나 금빛으로 물든다. 그 빛의 중심에는 에펠탑이 있고, 조금만 시선을 옮기면 별처럼 교차하는 12개의 길 한가운데, 또 하나의 상징이 서 있다. 바로 에투알 개선문(Arc de Triomphe de l’Étoile). 나는 그날, 늦은 오후부터 개선문으로 향했다.


가을의 파리였고, 샹젤리제 거리는 이미 따뜻한 조명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노을이 막 사라지고, 하늘이 짙은 남색으로 물드는 순간이었다. 도심의 소음이 잦아드는 듯하다가, 이내 다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차들의 경적이 파도처럼 번졌다.


지하 통로를 따라 개선문 아래로 들어가면, 거대한 아치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그 규모는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가까이 다가가면, 마치 산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늘 꺼지지 않는 불꽃 하나가 타오른다.


‘무명용사의 묘(Tombe du Soldat Inconnu)’,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프랑스 병사들을 위한 불꽃이다. 1923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 종전 5주년에 처음 밝혀진 이 불꽃은 지금까지 단 하루도 꺼지지 않았다. 매일 저녁 6시 30분, 시민 단체들이 모여 ‘불꽃 재점화 의식’을 이어오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화려한 도시 한복판에 숨겨진 시간의 무게가 느껴진다.


많은 사람이 개선문을 나폴레옹의 ‘승전 기념물’로만 알고 있다. 맞다. 1806년, 나폴레옹은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승리한 직후 “내가 입성할 그 길 위에 문을 세우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완공된 개선문을 보지 못했다. 공사는 30년 넘게 이어졌고, 나폴레옹이 사망한 후인 1836년에야 완공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폴레옹의 유해가 파리로 옮겨올 때, 그 관은 개선문 아래를 지나갔다. 그의 승리와 몰락, 그리고 영원한 제국의 꿈이 이 아치 아래를 통과한 셈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석벽을 가득 채운 수많은 이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장군들의 이름, 전투의 이름이다. ‘Austerlitz’, ‘Ulm’, ‘Wagram’, 역사책에서 보았던 전투들이 새겨져 있고, 그 옆에는 프랑스의 장군 558명의 이름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중 밑줄이 그어진 이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사한 장군들의 이름을 뜻한다. 돌 위에 새겨진 이 선 하나가, 그들이 싸운 전쟁의 무게를 대신한다.


고개를 들어 아치의 안쪽 천장을 바라보면, 섬세한 조각들이 한 칸 한 칸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직접 보면 마치 대성당의 돔을 보는 듯하다. 조각가 장 샤를 코르디에(Jean Chalgrin)는 고전 로마의 개선문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그 위에 프랑스의 예술적 장엄함을 더했다. 네 면에는 각기 다른 주제를 담은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마르세유 출정(La Marseillaise)’이다. 가슴을 드러낸 여성상이 프랑스를 상징하며, 시민들을 전쟁으로 이끄는 모습이다. 그 여인은 “자유의 여신상”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택했다. 280개의 나선형 계단은 마치 끝이 없는 터널 같았다. 숨이 차오르던 그 끝에, 드디어 파리의 야경이 펼쳐졌다. 그곳에서 보이는 에펠탑은, 정시마다 반짝이는 ‘스파클링 타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발 아래로는 샹젤리제 거리의 끝없는 불빛 행렬이 흐르고 있었다. 오렌지빛 가로수, 쇼윈도에 반사되는 조명, 거리의 음악가들, 그리고 서로 다른 언어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그 모든 풍경이 한 장의 영화처럼 겹쳐졌다. 그때 문득, 개선문이 이름처럼 ‘문(Arc)’임을 실감했다. 승리의 문, 역사의 문,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떠나고 돌아오는 문. 이곳은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파리라는 도시의 ‘심장’ 같은 곳이었다.


에투알(Étoile)은 프랑스어로 ‘별’을 뜻한다. 개선문이 있는 샤를 드골 광장(Place Charles de Gaulle)은 12개의 도로가 별 모양으로 뻗어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이 광장을 ‘Place de l’Étoile’이라 불렀고, 지금도 많은 파리 시민은 여전히 그렇게 부른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개선문이 단 한 번 ‘포장’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2021년, 고(故) 설치미술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유작 프로젝트로, 개선문 전체가 은빛 천으로 감싸졌다. “언젠가 개선문을 포장하겠다”던 크리스토의 60년 된 꿈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당시 파리 시민들은 ‘숨결이 잠시 멈춘 듯한 파리’라고 표현했다. 승리의 상징이 잠시 ‘예술의 상징’으로 변신한 그 순간, 이 도시가 얼마나 예술과 삶을 하나로 엮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올 때쯤, 시계는 밤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샹젤리제 거리에는 여전히 인파가 가득했고, 멀리 에펠탑의 불빛이 구름 사이로 번졌다. 길가의 낙엽 위로 택시 헤드라이트가 스치고,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섞여 흩어졌다. 나는 다시 불꽃 앞에 섰다. 낮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셀카를 찍고 지나가지만, 밤에는 파리 시민들이 조용히 멈춰 선다. 어떤 이는 꽃을 두고, 어떤 이는 묵념을 올린다. 그 불빛은 승리의 상징이라기보다, 망각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불이다.


에투알 개선문은 단지 파리의 랜드마크가 아니다. 그곳은 시간과 사람, 전쟁과 평화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도시의 심장 한가운데에서 타오르는 작은 불꽃 하나가, 파리라는 도시가 여전히 인간의 기억과 존엄을 지키는 이유를 말해준다. 파리의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나는 생각했다. 이 도시는, 빛으로 장식된 화려함보다 그 빛 뒤에 숨은 ‘기억’을 더 사랑하는 곳이라고.


Nov,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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