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24 텅 빈 거리에서 고요 속의 외침
2018년의 몽마르트르는 내게 언제나 ‘붉은 불빛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기억된다. 물랭루주 앞은 늘 사람들로 가득했고, 예술가 광장에서는 초상화를 그리는 붓들이 바삐 움직였다. 그때의 나는 파리의 모든 에너지가 이 언덕 위에서 살아 숨 쉰다고 믿었다.
그로부터 4년 뒤, 나는 다시 그 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한층 조용해진 파리였다. 거리의 공기는 여전히 낭만적이었지만, 그 속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19의 여파는 이 도시의 리듬마저 조금은 느리게 만들어 놓은 듯했다. 지하철역을 나와 고개를 들자, 익숙한 붉은 풍차가 눈에 들어왔다. 물랭루주(Moulin Rouge). 그 불빛은 여전히 눈부셨다. 하지만 그 아래의 인파는 사라지고, 대신 몇몇 자전거가 느릿하게 거리를 지나갔다.
물랭루주를 지나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향했다. 비에 젖은 돌길 위로 누군가의 구두 굽이 “딱, 딱”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마치 오래된 영화 속 흑백 장면처럼 들렸다. 길모퉁이의 와인 가게와 작은 카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문 앞에는 몇몇 현지인들이 와인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뒤로는 텅 빈 의자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2018년의 나는 이곳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걸었다. 그때는 거리마다 음악이 흘렀고, 누구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잠시 멈춘 듯했다. 그래도 이 고요함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한 장의 오래된 엽서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예술가 광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때 그 많던 화가들이, 정말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빈 자리를 대신한 건 낙엽뿐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돌길 위를 미끄러지며 흩어졌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다, 예전과 같은 자리에 있던 작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기타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직도 누군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마치 시간이 되감기는 듯했다. 공기 중에는 익숙한 치즈 향과 와인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양파 수프와 홍합 요리를 주문했다. 양파 수프가 먼저 나왔다. 치즈가 녹아내린 황금빛 표면 아래로, 달콤하게 캐러멜로 코팅된 양파가 숨어 있었다.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는 순간, 따뜻함이 온몸으로 퍼졌다. 추운 늦가을 저녁, 언덕 아래까지 번지는 그 국물의 향은 이상할 만큼 위로가 되었다. 아마도 그건 음식이 아니라, 기억의 맛이었을 것이다. 홍합은 여전히 훌륭했다. 하얀 와인 향과 허브가 섞인 국물에서 나는 오랜만에 ‘파리의 맛’을 느꼈다. 함께 나온 바게트 조각을 그 국물에 적셔 먹으며, 나는 그때의 활기찬 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이번엔 조용히 혼자였다.
식당에서 나와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자,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보였다. 흰색 돔이 조명에 비쳐 밤하늘 속에 떠 있는 듯했다. 그 아래로는 파리의 불빛이 끝없이 펼쳐졌다. 나는 계단에 앉아 숨을 고르며 도시를 바라봤다. 찬 공기 속에서 들려오는 기타 선율이 여전히 귓가를 맴돌았다.
몽마르트르, 그곳은 여전히 나에게 ‘기억의 언덕’이다. 언젠가 다시 돌아가면, 그때는 또 어떤 파리가 나를 맞아줄까? 아마도 또 다른 빛과, 또 다른 음악일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그 모든 순간이 여전히 ‘파리’라는 것이다.
Nov,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