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놈 많은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27 시간을 훔치고 예술을 지킨 사람들

by 조디터 Joditor

루브르 박물관의 아침은 생각보다 소란스러웠다. 유리 피라미드 앞에는 이미 긴 줄이 꼬불꼬불 이어져 있었고, 전 세계 각국의 언어가 공중에서 흩날리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찰나, 중앙 광장으로 향하는 어두컴컴한 실내에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고, 무심한 듯 서 있던 가드에게 뮤지엄 패스를 내밀자, 그는 손짓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계단을 내려가자 기적처럼, 사람들로 북적이던 피라미드 광장 아래로 바로 루브르의 입구가 열려 있었다. 어쩌면 오늘 하루는 운이 따르는 날인지도 모르겠다.


지하에 들어선 루브르 박물관은 상상 이상으로 넓었다. 이곳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라, 800년의 세월을 품은 거대한 성이었다. 원래 루브르는 12세기 필리프 2세 왕이 세운 요새였다. 그가 지하에 남겨둔 성벽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관람객의 발 아래 남아 있다. 무너진 돌담 사이를 지나면, 예술로 재탄생한 궁전의 복도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루브르를 다 둘러보려면 하루 8시간씩 봐도 100일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전시된 작품만 해도 3만 5천 점에 달한다. 결국 유명한 순서대로 대강 훑어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부족했다.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사모트라케의 니케’였다. 두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바람을 가르며 서 있는 여신의 형상은, 머리와 팔이 없는데도 살아 있는 듯했다. 대리석이 이렇게까지 역동적일 수 있을까! 그 계단 아래에서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숨을 죽였다. 고대 그리스 조각가들이 추구한 건 단순한 미의 표현이 아니라, ‘승리의 순간’ 그 자체의 시간 정지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니케는 원래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모트라케섬에서 발견되었을 때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지만, 19세기 프랑스가 그것을 복원하며 세계는 다시 이 여신을 만났다. 어쩌면 루브르의 모든 예술품은, 이렇게 ‘부서진 영광’을 다시 잇는 미션을 수행 중일지도.


다음으로 향한 방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The Death of Marat)’. 차가운 초록빛 테이블 위에 쓰러진 혁명가의 시체. 손에는 마지막 편지를 쥐고 있다. 그는 목욕 중 암살당했지만, 화가는 그 장면을 마치 성화(聖畵)처럼 그렸다. 죽음조차 숭고해지는 이 그림은, 혁명의 이상이 어떻게 신화로 변해가는지를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비드 자신은 나폴레옹의 화가로 변모하며 또 다른 권력의 초상을 그리게 된다. 예술은 언제나 시대의 거울이다. 그 거울은 늘 피 묻은 손으로 닦여진다.


이어지는 대작,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와 ‘나폴레옹의 대관식’ 앞에선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특히 대관식 장면은 벽 하나를 가득 메운 크기로, 실제 대성당의 제단처럼 웅장했다. 그림 속 나폴레옹은 스스로 왕관을 들어 올리며 자기 머리에 씌운다. 그는 신의 대리인이 아니라,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한 인간이었다. 이 작품이 그려진 순간, 프랑스의 ‘혁명’은 ‘제국’으로 변했다. 루브르 역시 그와 함께 변신했다. 왕의 궁전에서 시민의 박물관으로. 1793년, 프랑스 혁명 중 루브르는 처음으로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그때부터 루브르는 단순히 예술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인류의 시간’을 전시하는 무대가 되었다.


잠시 고개를 들어 올리면, 천장에도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황금빛 장식과 천사, 그리고 역사화가 한 폭의 하늘처럼 이어진다. 루브르는 수직의 공간에서도 예술을 쌓았다. 이곳의 건축은 그 자체가 예술이다. “그림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지 말고, 때로는 하늘을 봐라.”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다음 방에서 마주한 건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상징, 삼색기를 든 여인 마리안느. 그 눈빛에는 두려움보다 확신이 있었다. 자유는 언제나 피를 대가로 한다는 걸, 이 그림만큼 선명히 보여주는 작품은 드물다.


그리고 마침내, 루브르의 심장, 모나리자 앞에 섰다. 그녀를 보기 위해 다시 20분의 줄을 서야 했다. 바리게이드 너머의 작은 그림 하나에 세상의 모든 시선이 집중된다. 500년 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여인의 미소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한 설에 따르면, 다 빈치는 이 그림을 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도 함께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건너왔으니, 어쩌면 모나리자는 그의 또 다른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1911년, 이 그림이 한 번 도난당했을 때 루브르는 폐쇄되었다. 범인은 이탈리아 목수 빈첸초 페루자였는데, 그는 ‘이탈리아의 보물을 되찾기 위해서’ 훔쳤다고 진술했다. 2년 뒤, 피렌체에서 잡혔을 때 모나리자는 무사했다. 그 사건 덕분에 오히려 이 작은 초상화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도난이 그녀를 불멸로 만든 셈이었다.


루브르에서 나왔을 때, 이미 파리의 밤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피라미드의 유리면에는 조명이 반사되어 별처럼 반짝였다. 순간, 광장 한쪽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자가 무릎을 꿇고, 여자는 놀란 듯 입을 가렸다. 이들이 들고 있던 풍선에는 ‘WILL YOU MARRY ME?’라는 문장이 걸려 있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그들은 포옹했다. 루브르 피라미드 앞에서의 프러포즈는 그 결과를 굳이 물을 필요는 없었다. 파리에서의 사랑은 언제나 성공하니까.


루브르를 떠나며 생각했다. 이곳에 있는 예술품들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인간이 시간을 이기는 방법’의 증거라는 것을. 전쟁과 혁명, 도난과 복원, 그리고 수많은 인간의 욕망을 거쳐 지금 이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어쩌면 예술의 본질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지속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점의 그림이 수백 년을 건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그 자체로 인간이 시간을 이긴 순간이니까. 못 보고 지나친 유물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파리에 다시 와야 한다.


Nov, 2022


그리고 지금.

2025년 10월 19일 새벽, 루브르 박물관 개관 30분 만에 네 명의 범인이 건설업체 유니폼을 입고 침입했다. 창문을 절단한 뒤 왕실 보석이 전시된 ‘Galerie d’Apollon’에서 약 8억 8천만 유로, 우리 돈으로 1조 3천억 원이 넘는 보석 여덟 점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불과 7분 만의 일이었다. 모터사이클로 도주하던 중 왕관 한 점이 도로에 떨어져 회수됐지만, 대부분의 보석은 아직 행방이 묘연하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절도가 아니라, ‘국가의 기억을 훔친 범죄’라 불린다. 루브르는 임시 폐관됐고,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의 역사를 향한 공격”이라 밝혔다. 한순간의 틈으로 사라진 유산 앞에서, 나는 몇 해 전 루브르를 떠나며 남긴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예술의 본질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도 계속 존재하려는 의지라는 것. 그리고 그 의지는 여전히, 밤의 피라미드 아래에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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