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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 Oct 27. 2024

우리는 공생가족

기생을 넘어 공생으로, 캥거루 가족의 재정의





“엄마, 나랑 사는 거 어때?”

“좋아, 괜찮아.”

“진짜? 정말로?”

“얘는, 그렇다니까.”




내가 이 나이 먹도록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다들 ‘아이고... 부모님 힘드시겠다…’하는 눈치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 부모님은 나와 사는 것에 꽤 만족하시는 것 같다.



얼마 전 엄마에게 나와의 동거에 대해 점수를 매겨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10점 만점에 6점(참고로 아빠와 둘이 살 때는 4점)을 주셨다. 엄마는 내가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해서 싫다고 하지만, 말할 사람이 있어 좋다고도 했다. 정말이다. 그녀는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 놓는데, 주로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임영웅에 대해 말할 때면 눈이 반짝반짝, 마치 10대 소녀처럼 변한다. 얼마 전에는 내가 임영웅 콘서트 티켓팅에 실패하는 바람에 큰 죄인이 될 뻔했는데 다행히 그 콘서트가 영화로 개봉해 화를 면했다. 이 기회를 빌려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딸 하나 살리셨어요!'




엄마에겐 언제든 그녀의 자아실현 욕망이 담긴 요리를 맛볼 입이 늘었다는 점도 좋은 듯하다. 그녀는 요리에 진심이다. TV를 보며 창의적인 요리를 자주 선보이시는데 최근엔 강된장에 부추, 오리고기, 보라색 비트를 넣은 세상에서 처음 보는 요리를 만들어냈다. 역시나 맛도 신비로웠다. 아빠는 이제 나이가 들어 그녀의 예술혼을 모두 받아낼 수 없는 상황이니, 내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다. 내가 아침드라마를 그만 보라고 하거나, 큰 손인 엄마에게 음식 양을 줄이라고 잔소리하긴 하지만, 엄마는 그런 잔소리쯤 아랑곳하지 않고 요리를 "묻고 더블로" 가신다. 이 정도면 윈윈 아니겠나 싶다.



한편, 아빠와의 일상도 각별하다. 아빠는 매일 아침 산을 함께 오를 친구가 생겼다. 참고로 아빠는 나에게 10점 만점에 10점을 주셨다. 몇 달 전부터 아빠와 주말마다 산에 오르고 있다. ‘내가 아빠와 몇 번이나 더 산을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씩 1년이면 12번,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갈 수 있을까? 요즘 많이 쇠약해지셨지만, 아빠는 등산 경력 25년 이상인 ‘산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정말 날다람쥐처럼 산을 오르던 분이었다. 내가 등산을 좋아하게 된 것도 다 아빠 덕이다. 어렸을 때, 마르고 길쭉한 다리로 산을 오르던 아빠의 모습은 사슴 같았다.



지금은 내가 먼저 올라가 아빠를 기다려야 하지만, 그와 함께 산에 오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덕분에 아빠에 대해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다. 군대에서 차 사고를 내서 영창에 갈 뻔했던 일, 엄마를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젊었을 때 하도 돈이 없어 라면 하나로 며칠을 버텼던 이야기 등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다.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살았는데, 그동안 난 뭘 했던 걸까.



또 다른 아빠와의 일상은 병원에 함께 가는 것이다. 아빠를 정기적으로 병원에 모시고 간다. 대학병원은 늘 북적이고, 대기 시간도 길다. 검사, 접수, 진료 준비까지 고령의 환자는 물론 젊은 나도 혼자 가면 막막할 때가 많다. 그래서 꼭 아빠와 병원에 함께 가는데, 위기를 함께 겪으며 느끼는 친밀감이 새롭다. 병원에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우리는 서로 더 친밀해진 듯하다. 담당 교수님은 늘 경고하신다. ‘술을 더 드시면 정말 큰일 나세요.’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요즘은 ‘툴툴대기만 한다’ 던 엄마도 나와 사는 것이 재미있다고 하고, 평생 무뚝뚝했던 아빠도 내 앞에서는 수다쟁이가 된다. 높은 산에서 뒤처진 아빠를 기다리는 내 마음은, 어린 시절 지친 나를 업어 산을 올랐던 아빠의 마음과 비슷할까.



덕분애 나는 엄마의 ‘연예인 리포트’ 덕분에 트렌드에 밝아지고, 아빠와 산을 오른 덕에 체력도 좋아졌다. 병원에 하도 다니다 보니 주차 시간대나 대기 줄 짧은 팁도 알게 되었고, 아빠의 ‘빨래 칼각 접기’나 엄마의 ‘10분 레시피’ 같은 일상 스킬도 배우고 있다.



혼자 살 땐 몰랐던 이 모든 것들이 나이가 들면서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번거롭고 귀찮기만 했던 일들이 이제는 거대하고 따뜻하게 내 마음에 들어온다. 집이란 이제, 도망치고 싶었던 곳이 아니라 내가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사람들로 가득하다. 결혼한 친구들은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바쁘게 살겠지만, 나는 원가족과 살며 그들을 밀접하게 살핀다.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는 표현을 나에게 맞게 바꾸자면, ‘부모와 나이 들어 함께 살면 부모 마음을 안다’ 정도겠다.



이제 양육의 의무가 사라진 부모와 부양의 의무를 지게 된 막내딸이 함께 사는 이 작은 생태계는 기생을 넘어 공생으로, 양육을 지나 부양으로 향해가고 있다. 이 안에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서사는 언젠가 끝이 나겠지만, 머무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철이 든다더니, 철들 나이가 한참 지난 후에도 나는 계속 기록을 경신하는 중이다. 이 정도면 나 같은 ‘캥거루족’에게도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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