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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 Oct 29. 2024

막내딸의 노후대비

마흔 전에 달성해야 할 것들






요즘 부쩍 나이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함께 사는 동거인 부부의 흰머리가 하루하루 늘어가는 걸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나의 미래에 대해 그려보게 된다. 엄마는 나를 26살에 낳았다. 아빠는 33살. 그런 두 분이 지금은 예순, 일흔이 훌쩍 넘었다. 60살이 된 내 모습은 어떨까? 70살은? 그때쯤 내 옆에 할아범이 있을까? 아니면 혼자일까?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생체시계가 자연스럽게 아이위주로 흐른다.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아이의 성장 속도에 따라 이미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 살고 싶은 곳 등이 정해져 있었다. 지인은 얼마 전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딸아이 때문에 이사를 했다. 무리였지만 학군지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반면 인생의 모든 것이 ‘내가 알아서 하기’에 달려있는 나 같은 싱글은 이쯤에서 인생의 방향을 어디로 정해야 할지, 지금쯤 내가 반드시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고민이 많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먼 북소리>에서 나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 시기에 달성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시기가 지나 버리면 후회할 만한 일은 무엇일까?



그래서 지금부터 '이 시기에 달성해야 할 것들 목록'을 만들기로 했다. 참고로 이 목록은 졸업-취업-승진-결혼-육아 등의 사회가 말하는 생애주기에서 벗어나 있다. 오로지 나의 주기대로, 나만의 위한 나만의 느낌대로 가는 '머스트 두잇 목록'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건, 돈이다 돈. 으이그, 그놈의 돈. 배우자가 없는 나는 지금이라도 노후를 위해 바짝 돈을 모아야 한다. 그래서 최근엔 금융공부에 열심히다. ‘주’자도 모르던 ‘주린이’가 책을 보며 안전하다는 주식들을 열심히 사 모으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IRP, 연금저축펀드 등 세제혜택이 많은 노후 대비 금융상품도 가입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지금이라도 시작하는 게 어디인가. 단순한 공부 외에도 내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뿌듯하다. 비록 하루하루 주식창이 파란색으로 물들지라도…



건강에도 신경 쓰는 중이다. 학창 시절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으니, 어느덧 나도 다이어트 25년 차. 이제 먹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도가 트였다. 이제는 ‘마름’이 아닌 ‘건강’에 초첨을 맞추고 있다. 고기는 줄이고 채소 위주의 식단을, 어차피 참으면 터지는 식욕, 먹고 싶은 건 적당히, 맛있게 먹는다. 운동은 꾸준하게, 이제는 슬슬 나잇살이 찌기 시작하는 나이므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엉덩이가 중력의 힘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운동은 근력 위주로 유산소는 타이트하게! 건강에는 꾸준함이 생명이다.



‘부모님과의 소중한 추억 만들기’도 목록에 들어있다. 만약 삶의 속도가 정말 나이와 비례한다면 부모님의 속도는 나보다 훨씬 빠르다. 함께 살고 있는 나도 하루하루 나이 듦을 느끼는데 부모님은 오죽할까. 점점 기력이 약해지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나이 든다는 건 부모님과 함께 할 날이 점점 줄고 있다는 의미, 그래서 동거 중인 주인댁 부부와 일상 속 소소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는 최대한 부모님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부모님이 쉬는 날이면 두 분을 모시고 가까운 근교로 나가거나 오빠네가 오는 날에는 두 분이 좋아하시는 식당을 미리 예약한다. 처음에도 귀찮다고 하던 부모님도 막상 나오면 소년 소녀처럼 좋아하신다. 귀여운 손녀와 사진도 찍고 바람도 쐬고, 이런 좋은 걸 왜 조금이라도 일찍 하지 않았을까.



사회적 연락망도 놓칠 수 없다. 앞선 통계청의 조사에서 혼자 사는 고령자 중 19.5%가 교류하는 사람이 없으며 18.7%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10명 중 2명은 친구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나중에 아파 죽겠는데 전화 한 통화할 사람도 없다며 얼마나 슬플까! 지금부터라도 내 인간관계는 내가 준비해두어야 한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잘하려고 노력한다. 작은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혹시나 내가 정말 혼자 산다면 끝까지 나와 놀아줄지 누가 알겠는가. 



‘의미 있는 도전목록’도 있다. 하루라도 빨리 해보면 좋은 것들을 모으고 모아서. 우선 내년까지 ‘국내 3대 풀마라톤 완주', '뉴질랜드에서 번지점프 하기'를 목표로 잡았다. 이미 국내 마라톤 풀 코스 1회는 완주했으니 이번에는 두 번째 마라톤에 참가해 보기로. 어차피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몸, 아껴서 뭐 하나. 하루라도 젊을 때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누군가 죽기 전 나에게 ‘죽기 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나는 ‘끊임없이 도전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매일 작은 발걸음을 내딛으며 그려가는 내 삶이, 나만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불확실한 내일이 두렵기도 하고 혼자인 미래가 막연히 서글프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스스로를 단단하게 다지는 지금이야말로 나를 더 알아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나만의 도전과 목표, 그리고 부모님과 추억이 쌓여가는 과정 속에서 불완전한 인생일지라도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믿는다. 언젠가 나 역시 흰머리가 가득해졌을 때,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길 바라며.



그러니 다른 사람의 속도가 아닌, 내 삶의 리듬을 찾아 나가는 재미와 성취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루키가 말한 ‘한 시기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들’은 사회가 말하는 취업, 결혼, 육아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진짜 의미 있는 추억과 경험들일 것이다. 나만의 속도로 내 삶을 자유롭게 채워가는 것. 그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유럽으로 떠나 <상실의 시대>를 완성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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