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홍 Feb 13. 2024

서른아홉, 연애를 끊었다

간헐적 연애 디톡스







지난번 만난 전 엑스와의 대화에서 내가 달라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얼굴이 훨씬 좋아 보여. 표정도 밝아지고”

“그냥 연애를 안 했어. 하하”




맞다. 나는 연애를 쉬었다. 습관처럼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왔건만 한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나이 때문인지 줄어든 호르몬 때문인지 애정결핍으로 인한 목마름도 사라진 데다 혼자 있으면 불안해지는 성격도 조금씩 바뀌어 갔다.




나이도 한몫했다. 결혼 적령기를 넘기니 자연스럽게 소개팅도 줄고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도 서로의 나이가 부담스럽다. 세상에 찌들어 갈수록 따지는 건 많아지고 상대도 그럴 거라는 생각에 만남 자체가 불편해졌다.



가끔 누구를 만나더라도 한참 연하와 의미 없는 만남을 추구하거나 한참 위 연상을 만나 현타를 맞는 식으로 나의 연애는 점점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즈음 부모님 집에서도 독립했다. 늦깎이 결혼이라도 하기 전, 혹은 제대로 된 비혼주의자라도 되기 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마침 부동산을 잘 아는 친구가 대출을 풀로 당겨서라도 사라고 했던 아파트에 좋은 매물이 나왔고, 나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지지부진했던 인생을 내던지듯 그동안 쌓아온 모든 신용을 던져 아파트를 하나 샀다.




순식간에 이사까지 마치고 나니 정말 혼자가 됐다. 새로운 동네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였다. 비록 본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사라지니 진정 혼자였다.




처음에는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이사 온 몇 달은 새로운 가구와 급하게 필요한 생필품들을 채워 넣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동안 SNS에  ‘오늘의 X’에 올라오는 주인의 취향이 돋보이는 집들이 부러웠는데 이제 나도 내 집을 꾸밀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21평 아파트도 혼자 사는 사람에겐 왜 이렇게 크기만 한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었다. 덕분에 짧은 시간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을 바삐 오가며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갔다.




갑작스러운 독립에 연애까지 끊으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부모님의 잔소리도 관계의 복잡함도 사라지고 나니 갑자기 시간이 넘쳐났다. 물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적막과 그리움이 오락가락했지만 그럼에도 혼자 일 수 있음에 행복했다. 이제는 시간도 공간도 오롯이 내 것이라는 생각에 감격스럽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연애를 안 하니 정신도 자연스레 디톡스가 됐다. 더 이상 생판 모르는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고 늘어만 가는 나이나 주름에 눌려 스스로 쪼그라들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미뤄뒀던 책도 실컷 읽었다. 주말에는 밀린 빨래를 하고 산뜻하게 청소를 했다. 늘 플레이팅이 엉망인 식사를 했지만 그마저 행복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기 위해 용기 내어 모임에도 나갔다. 나가보니 내가 제일 누나였지만, 이래나 저래나 늙은 걸 어찌하랴. 유난히 적적할 땐 부모님 집에 들렀다.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면 이상하게 힘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부터 거대한 외로움이 찾아왔다. 금세 우울해졌다. 정말 혼자가 돼버린 것만 같아서. 그럴 때면 당장 운동화를 구겨 신고 나가서 뜀박질을 했다. 그렇게 한 바탕 땀을 흘리고 나면 기분이 다시 괜찮아졌다.



서툴지만 조금씩 외로움을 다루는 법도, 엉망인 감정을 정리하는 법도 배워 나갔다. 누군가 들으면 다 늙어 청승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제 더 이상 남의 시선 따위는 생각하지 않겠다 다짐했으니. 나는 조금씩 혼자의 삶에 익숙해져 갔다.



어느 한적한 주말 아점을 먹고 책을 읽으려 소파에 눕기 전까지는. ‘까똑' 모르는 번호였다. 누구지?




이전 10화 이래서 부잣집 남자는 싫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