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플루언서의 임밍아웃
어느 인플루언서의 임밍아웃
좋아하는 인플루언서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혼. 전. 임. 신.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4년 넘게 곁을 지켜준 남자친구가 있었고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다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혼전 임신이 뭔가 큰 잘못이나 되는 듯 쉬쉬하던 시대였다. 2016년만 해도 연예인도 혼전 임신 사실을 숨기고 결혼했고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어머, 남사스러워...’
하지만 이제 세상이 변했다. 이미 0.8% 이하로 추락한 출산율과 함께 ‘인구 절벽’, ‘고령화 시대’라는 말이 사회의 가장 큰 화제가 되었다. 동시에 ‘아이가 혼수’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임신 자체가 그야말로 축복이자 시대의 희망인 시대가 된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나라에도 '산하제한'이란 말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인구 문제는 단기간에 큰 변화를 거쳤다. 정부는 식량난 해결을 위해 '산아 제한 정책'을 시행해 1970년대에는 자녀를 둘만 낳자는 정책을, 1980년대에는 한 아이만 낳자는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인지 내 친구들 중에는 외동이 별로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결혼한 친구들은 대체로 아이는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주의고 딩크로 살겠다는 이들도 많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와 함께 내 마음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 중이다.
서른아홉.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이 별로 안 좋아해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나인데 이제 막 태어난 조카를 볼 때마다 돌변한 내 눈빛이 심상치 않다.
오동통한 팔 다리 하며 포근하게 안기는 따스한 감촉 하며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로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마음속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월급날마다 사재기하는 입지도 않을 옷이나 퇴근 후 넋 놓고 보는 고양이 영상으로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마음속의 허기가, 출처 모를 뻥 뚫긴 구멍 하나가, 지지부진한 썸이나 짧은 연애로는 도저히 대체할 수 없는 깊은 곳 어딘가의 결핍이 뒤늦게 아우성을 치지 시작한 것일까?
20대에 세계여행을 하던 탐험가 정신도, 살면서 하고 싶은 건 다 하겠다며 큰소리치던 패기도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었다.
주변에 결혼 안 한 친구들은 하나둘씩 진지하게 난자를 얼리겠다고 하고 유튜브에 ‘30대 결혼’을 치면 가슴을 후벼 파는 댓글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이런 거친 환경 속에서 내 마음은 점점 더 쪼그라들고 서글퍼진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고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빠르게 변하는 세상만큼 수시로 바뀌는 나의 마음에도 잠시 멈춤을 주고 싶다. 아, 달라지는 세상만큼 기술도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이번주에는 병원에 한번 가봐야겠다. 왜냐고? 난자라도 얼려두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