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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 Feb 01. 2024

노래를 듣다가 내가 불쌍해졌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타샤의 노래






약속장소로 가던 중이었다.

문득 예전 노래가 듣고 싶어 유튜브에 윤미래를 검색했다(나는 옛날 사람이라 그녀를 좋아한다).


교복을 입은 앳된 학생들이 노래방에 앉아있고 그녀가 등장했다. 요즘 10대들은 그녀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노래가 시작되자 이내 표정이 달라졌다. 노래는 ‘검은 행복’





<검은 행복>


유난히 검었었던 어릴 적 내 살색
 사람들은 손가락질해 내 mommy한테
 내 poppy는 흑인 미군


 여기저기 수근 대 또 이러쿵저러쿵
 내 눈가에는 항상 눈물이 고여
 어렸지만 엄마의 슬픔이 보여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은 죄책감에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난 내 얼굴을 씻어내


 하얀 비누를 내 눈물에 녹여내
 까만 피부를 난 속으로 원망해


 why o why 세상은 나를 판단해
 세상이 미울 때, 음악이 날 위로해 주네


 So you gotta be strong
 you gotta hold on and love yourself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 지하철에서 웬 주책이람. 영상 속 한 친구도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친구들이 모두 자기를 미워하는 것만 같고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인 것만 같다고.



문득 어린 시절 내가 떠올랐다 |


친구와 밤늦게 학원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우리 앞에 커다란 차가 멈춰 섰다. 삼각형 엠블럼이 반짝이는 고급 세단이었다. 친구의 아버지였다. 칠흑 같던 밤에도 그 차는 왜 그렇게 번쩍이던지.


친구가 “아빠!” 하더니 놀라움 반 기쁨 반의 소리를 질렀다. 곧 차 안으로 미끄러지듯 올라탔다. 뒤늦게 뻘쭘하게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걸어가면 금방이라고. 결국 혼자 터덜터덜 걸어오며 생각에 잠겼다.  



‘수현이 아버지가 유명한 정치인이래. 지방에서 높은 자리 있다가 이번에 서울로 온 거래. 선거 나가려고’


그녀가 부잣집의 막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정말이었구나...’


함께 학원에 다닐 때도, 그녀가 처음 전학 왔을 때도 그저 잘 웃고 쾌활하고, 나랑 비슷한 점이 많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수학을 잘 못하지만 성적에 욕심이 많은 것도, HOT 멤버 중 강타가 아니라 토니오빠를 좋아하는 것도, 피구는 잘 못하지만 줄넘기를 잘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집에 돌아와 가방을 침대에 던지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전혀 다른 게 아닐까..?’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업했다. 나는 긴 취준생 생활을 1년이나 더 하고서야 훨씬 더 작은 회사에 들어갔다.



결혼도 빨랐다. 29살에 재벌이라던 남자를 만났다. 결혼식도 고급 호텔에서 했다. 그녀는 나를 초대했지만 공시생이던 나는 가지 못했다.





그 시절엔 내가 너무 작아 보였다. 그땐 오로지 가지고 태어난 것들로만 반짝이던 시기라서, 공부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던 때라서 스스로에 대한 미움의 화살이 쉽게 부모에게로 옮겨가던 시절이었다.



쉽게 좌절하고 쉽게 남을 탓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은 잘 오르지 않고, 주변에는 온통 나보다 잘난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았다. 부자 부모에 타고난 외모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 다들 나보다 우월하고 뛰어난 이들 말이다.



짤막한 키와 평범한 외모, 가난한 부모.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나는 세상에서 제일 멍청하고 못난이였다. 자기 연민과 냉소가 유일한 무기이자 방패였던.



오히려 대학에 들어가 새로 만난 친구들이 더 좋았다. 나를 아예 모르는 사람들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안하기만 한 20대와 어른이 된 것 같은 30대를 지나오니 생각이 점차 바뀌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니 재수까지 해서 원하던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고, 지금까지 두 차례 직업을 바꿨으며 학생 때 그렇게 하고 싶던 연애도 실컷 했다.



물론 남들처럼 결혼해 애까지 키우며 살고 있진 않지만 삶에서 나름 나만의 룰을 정하고 내가 택한 게임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됐다.



결과는 노력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패를 쥐고 있는 사람에게만 돌아오는 것은 아니며 성공의 기준도 행복의 유무도 모두 나에게 있다는 것도.



시간 덕분인지 나이 덕분인지 많이 성장했고 배웠고 또 철도 들었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불공평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노력의 유무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 모든 것은 오히려 축복이다.



어렸을 때는 내가 속한 세계가 우주의 전부인 것만 같다. 내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게 되고 한 없이 남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끝없이 자책하며 나에 대한 미움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그 미움은 부모에게서 사회로, 국가로 결국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윤미래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던 어린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때는 그냥 그럴 때라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그 작은 우주가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는 그런 때가 있다고. 그런데 조금만 지나면 더 큰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대학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그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내가 가진 게 이것이 전부라는 고작 가진 게 이것뿐이라는 그 생각에서만 벗어기만 해도, 수많은 자기 의심과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그 작고 슬프기만 한 우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얼마 전에 미국에 있던 수현이가 귀국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참에 늦었지만 연락을 한번 해봐야겠다. 그때 결혼식에 못 가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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