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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홍 Feb 14. 2024

마흔인 우리는 왜 지금까지 혼자일까

노처녀 궐기대회





오랜만에 예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그녀는 83년생 나는 85년생. 같은 곳에서 근무했다는 것 외에도 우리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아직도 싱글이라는 점. 물론 우리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비혼 같은 미혼일 뿐. 그녀도 나도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당장이라도 결혼, 아니 식부터 올릴 준비가 되어있다(웃음).



오랜만에 만났지만 여전히 인사는 같다.


“뭐 재미있는 일 없어?” (남자친구 생겼냐는 뜻이다)

“없어! 자기는?”

“나? 나도 없지이 이- 좀 생겼으면 좋겠다!”

“푸하, 뭐야 우리 왜 이래. 크크”


한참 밀린 이야기를 끝내고 나니 대화는 다시 제자리다.


“근데 샘은 이렇게 멀쩡(?)한데 도대체 왜 못 가는 거야?”

“푸하.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샘은?”



그러고 보니 우리는 왜 지금껏 혼자일까? |



“전에 만났던 사람 중에 아쉬웠던 사람 없어?”

“있지, 그런데 말했잖아, 종교 문제가 워낙 컸어”

“맞아 어차피 결혼까지 못 갔을 거야”


역시 노처녀는 합리화가 빠르다.


“근데 자기는 도대체 왜 안 가는 거야? “

“못 간 거지이- 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너무 따지는 게 많았던 것 같아. 주제넘었지. 풉”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근데 있잖아, 재미있는 건 시간을 돌려 다시 돌아가도 비슷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사람마다 '때'라는 게 있잖아.”






‘반드시 해야 되는 게 어디 있어? 누구는 80에도 대학에 가고 70에도 이혼해. 어떻게 다 똑같이 살아? 남들이 한다고 다 따라 하고,
누가 하란다고 하면 그건 누구 인생인데?’



애초에 꼬인 건지 늘 남의 말에 반기부터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싫어 흔한 어른 심부름조차 요리조리 피해 다녔고 첫 직장에선 지시만 하는 상사가 꼴 보기 싫어 2년도 채 못 버티고 나왔다.



결국 평범한 공무원이 되었지만 마음속에는 늘 ‘비범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어릴 적 엄마가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든 거야’라고 말할 때마다 ‘엄마나 그렇게 살아!’ 하고 방문을 쾅 닫곤 했는데 정말 이렇게 다르게 살 줄 누가 알았는가.



하지만 엄마에게 큰소리친 전적과는 달리, 나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다. 남들 다 하는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다면 누가 봐도 부러운 화려한 싱글로 살면 좋으련만, 내 삶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10년 넘은 직장 생활에도 모아둔 돈은 별로 없고 큰맘 먹고 영끌해서 싼 아파트도 상투를 잡았는지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요즘 같아선 아이 있는 친구들이 부럽다. 비범하지 못하다면 대세라도 따를걸. 이런 마음이니 이상하게 남의 아이가 더 예쁘다. 몽실몽실한 얼굴 하며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볼따구니, 마음에 안 들면 뿌에엥 하고 울어버리는 변덕스러운 심보도 이모가 보이에는 그저 귀엽기만 하다.



"아이고, 귀여워. 까꿍. 너희 엄마는 어쩜 너 같은 공주를 낳았다니"

"야, 그렇게 예쁘면 데려가서 키워. 난 이제 체력이 달려서 죽겠다"



쌍둥이 육아로 휴직 중인 친구는 이런 나를 보고 늘 타박하듯 잔소리를 퍼붓지만.



"난 진지하다고! 이제 나이 더 들면 정말 평생 애 못 낳을지도 몰라. 그때 가서 후회하면 어떻게 해?"  



“으이그, 이 헛똑똑아. 그렇게 맨날 똑똑한 척하더니, 잘하는 짓이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제발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길 바라는 그 꽉 막힌 태도 좀 버려. 내가 항상 말하잖아. 넌 다 좋은데, 이럴 때 진짜 답답하다니까. 너 어렸을 때 너 좋다는 남자 다 차버리고, 그렇게 망설이기만 하더니, '그 업보를 이제 다 받는다...' 생각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 그렇게 콧대 높게 굴었으면 이 정도는 감안해야지 “



맞다. 나는 그랬다. 늘 결혼하고 싶다고 외치면서도 늘 누군가 다가오면 슬그머니 발을 뺐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다 대면서 진지한 관계를 피했다. 그리고는 사느라 바빴던 부모 탓만 하기 바빴다. 



우리 집은 그리 화목하지 않았다. 하하 호호 화목한 4인 가정은 TV 속에나 있었고 우리 집과 거리가 멀었다. 당시 난 예민한 사춘기 소녀였고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부모님을 보고 ‘나는 절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몇 번이고 다짐했다.



부모님의 역효과인지 성인이 된 이후로 연애를 쉬어 본 적이 없다. 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친구는 그저 심심하면 만나는 동년배였고 연인은 구멍 뚫린 나의 마음을 간신히 막아주는 임시방편 같은 존재였다. 누군가와 만나면서도 진실한 사랑이란 드라마 속에나 있다고 믿었으니.



근데 말이야, 진정한 사랑이란 게 정말 있기나 한 걸까?



생각난 김에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근데 너 남편 정말 사랑해? 결혼하기 전에 어땠어?"

"참나, 이보세요, 선생님. 결혼하면 그런 거 없다. 전우애야, 전우애. 그리고 나라고 뭐 남편이 100% 좋아서 결혼했겠냐, 너 우리 신랑 봐. 어디 멋있는 구석이 있긴 하니? 물론 좋았지. 설레고. 근데 나도 조급했어. 조금 더 있다간 영영 못 갈까 봐 그냥 확 붙잡은 거야, 알지 나 38 남편 39. 꾹꾹 채우고 갔잖아 “

"정말 그런 거야? 나만 환상 속에 사는 거냐 “

"바보야, 그냥 쉽게 가. 지금이 제일 좋을 때야. 나이 같은 거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될 건 되고 안 될 건 안 돼. 세상이 그렇게 마음대로만 되면, 나는 지금 원빈이랑 결혼했겠다"

"하아… 열받는데 왜 니 말이 다 맞는 것 같냐"

"내 몸 하나 추스를 때가 제일 행복해. 그냥 살아, 즐기면서.”



역시, 이래서 애 낳으면 어른이 된다는 건가. 벌써부터 인생 선배 같다. 




지금까지 혼자라면 그저 인정하고 즐기며 살면 좋건만 늘 가지지 못한 것을 탐냈다. 한창 연애에 빠져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시들해지면 이내 싱글인 친구들이 부럽고, 결혼해서 마음고생, 육아로 몸 고생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래도 혼자가 낫다' 싶다가도 나이가 드니 가족의 따스함이 부럽다. 


서른에서 서른셋까지는 그렇게 조급하더니, 서른다섯을 넘어가니 초연해졌다가 마흔을 앞두니 다시금 불안해진다. '이대로 정말 혼자 늙어 죽는 건가?'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슬슬 기혼의 고달픔 안 보이고 가정의 행복함만 보이는 건 왜일까? 


인생주기라는 것이 있다. 세상에 나와 교육을 받고 성인이 되어 밥벌이를 하고 평생의 짝을 만나아이를 낳기까지의 긴 여정. 인간은 모두 다르지만 먼발치에선 보면 대부분 비슷한 길을 간다. 모두의 길에서 벗어났다는 것 만으로는 나는 지금 충분히 불안하고 두렵다.  


게다가 내 주변에는 멋지게 사는 비혼이 없다. 나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남들을 부러워만 하거나 외로움이나 생활고에 쪼들려 괴로운 삶을 사는 것 같은 사람들 뿐. 최연소로 승진한 여자 전무님은 늘 멋있지만 저렇게 독종으로 살 자신이 없고 10년째 승진 못하고 있는 배불뚝이 모태솔로 차장님은 전혀 닮고 싶지 않다. 


화려하고 반짝이는 싱글은 '나 혼자 산다'에서나 있는 것 같고 내 삶과 거리가 멀다. 생각 없이 흥청망청 놀았던 20대, 차마 실천은 못하고 고민만 많았던 30대, 이제 곧 40대. 하아... 여전히 혼자인 나,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누군가 나에게 딱 한마디만 해주면 좋겠다. 



"얌마, 너 멋있어! 쓸데없는 생각 말고 그냥 즐기고 살아. 지금이 제일 좋을 때다" 



그래, 우선은 별 생각 말자. 괴상한 망상은 집어치우고, 우선 오늘을 사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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