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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홍 Feb 21. 2024

10년 만에 반찬통을 바꾸고 생긴 일

반찬 좀 덜어먹어!

 





내 자아가 바뀌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밥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맞벌이로 늘 바빴고 오빠와 난 학교에서 돌아와 직접 밥을 차려 먹었다. 맨 처음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준 건 각종 통조림이었다.


하얀 쌀밥에 통조림을 따서 올리고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를 데운다. 그렇게 하면 야채참치 덮밥, 고추참치 덮밥, 장조림 덮밥이 된다. 지금 생각하면 꽤 그럴듯한 일품요리였다. 나중에는 이 마저도 귀찮아서 반찬통만 꺼내서 밥에 대충 올려 먹었다.



"제대로 좀 차려 먹어. 엄마가 찌개랑 다 해놓고 가는데 왜 손을 안대"

"귀찮아-_-"



15살 소녀에게 찌개에 불을 붙이고 밥을 데우고 설거지까지 하는 모든 일이 귀찮았다. 그래서 최대한 간단하게 먹었다. 설거지까지 최소화해서. '


‘그냥 먹으면 뭐 어때,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데...'


이것이 어린 내가 가지고 있던 음식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러던 것이 '차려먹는 밥'에 대한 생각을 적극적으로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의 집이 소개되면 서다. 패션에 관심이 많던 나는 모델 '장윤주'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개성 있는 페이스, 인형 같은 몸매, 세계 무대에 오르는 당당한 태도까지. 어느 것 하나 멋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프로에서 그녀가 평소 즐겨 먹는 식단이 공개됐다. 건강한 식단은 당연했지만 무엇보다 내 눈에 띈 건, 하나를 먹어도 제대로, 예쁘게 먹는 그녀의 '테이블 습관'이었다.



"저는 과일 하나를 먹어도 예쁘게 깎아서 플레이팅도 해 먹어요. 그럼 대접받는 기분이 들거든요"



'띠잉-' 머리를 맡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나를 대접한다고...?‘ 10대 소녀에게 좋아하는 연예인은 절대적인 힘을 갖는다. 엄마가 아무리 백날 이야기해도, 주변에서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게 사람 마음인데, 연예인이라면 말이 다르다.

 


그 이후부터 나는 '내가 나를 대접한다'는 말의 절대적인 의미를 세기고 살았다. 반찬통을 꺼내먹는 습관을 버리고 아주 조금, 아주 간단히 먹더라고 꼭 접시에 덜어 먹는다. 그것도 예쁘게. 김치는 한입밖에 먹지 않지만 그마저도 반드시 그릇에 덜고, 엄마가 소분해 놓은 밥도 꼭 밥그릇에 옮겨 데워먹었다.



그런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나의 자존감 형성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이전의 난 스스로에 대한 큰 의식이 없었다. ‘식사는 그저 때우는 것이고, 음식은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가 신조였지만 ‘먹는 게 곧 나다. 음식은 나를 대접하는 일이다’로 바뀌었다. 바뀐 음식에 대한 태도, 테이블 매너, 건강한 식습관 등이 스스로를 아끼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예쁜 그릇을 사고 엉성하더라도 되도록 만들어 먹었다. 가끔 친구들을 불러 정체불명의(?) 요리도 해 먹었다. 나의 요리실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좀처럼 나아지진 않지만 이상하게 플레이팅 실력은 꽤 쓸만하다. 맛이 없어도 그럴듯하게 담아내면 이상하게 맛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분이 별로거나 되는 일이 없을 때 먹는 것부터 정갈히 한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곧 나고,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지금도 몸이 다운될 땐 설거지를 뽀드득뽀드득하고 과일을 가서 멋들어진 플레이팅을 해서 먹는다. 



우울한 땐 고기 앞으로란 말이 있듯, 나는 다운될 땐 식탁 앞으로 간다.



‘나를 소중히 대한다’는 의미가 밥을 통해 나에게 왔다. 나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반찬통을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통조림으로 밥을 대충 때우지도, 햄버거를 탐닉하지도 않는다. 대신 나를 위해 기꺼이 요리를 하고 귀여운 반찬통을 산다.


       

변화는 아주 작은 것부터,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한국인은 밥심이란 말이 있듯이 사람의 내면 역시 밥심이다. 반찬통을 바꾸었을 때 내가 나를 대접해 주었을 때, 나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이제는 한 끼를 먹어도 예쁘게 담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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