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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홍 Mar 06. 2024

오빠, 조카 낳아줘서 고마워

노처녀 고모와 귀염둥이 조카

 

             


오빠는 얼마 전 예쁜 딸을 낳았다. 그렇게 딸을 낳고 싶어 하더니, 드디어 소원을 풀었다.



오늘은 조카가 돌잔치 날, 아침부터 온 가족이 준비로 분주하다.
 


원래 조카는 다 이렇게 귀여운 건가? 아가는 다 똑같다고 여기던 나인데 유난히 조카가 예쁘다. 통실통실 볼살에 눌린 자그마한 눈코입하며 터질 듯 오동통한 허벅지, 이게 과연 제 기능들을 할까 부서질 듯 작고 귀여운 10개의 손가락 발가락까지 어느 곳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다.      



나도 이렇게 예쁜데 직접 낳은 엄마는 오죽할까. ‘그래서 친구 놈들이 그렇게 인스타에 아가 사진만 올렸구나...’ 노처녀 고모는(이모 아님) 요즘 조카를 통해 뒤늦게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새언니, 혹시 OOO 이거 샀어요? 이거 꼭 있어야 한대요. 혹시 OOO은요? 없다고요? 그럼 제가 이번에 쏠게요!”          



나의 삶도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에는 관심도 없던 브랜드 ‘KIDS’ 코너에 수시로 들어가서 내 옷보다 비싼 아기 옷을 구경한다. 월급날이면 조카에게 필요한 국민템을 찾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맘카페를 뒤진다. 얼마 전에는 조건 까다롭기로 유명 카페를 뚫기 위해 친구의 개인 정보를 도용(?) 하기도 했다. 이렇게 극성인 조카 바보가 또 있을까.           



무엇보다 달라진 건 우리 부모님이다. 첫 손주는 원래 이런 걸까? 무뚝뚝이라면 둘째가라도 서러운 아빠도 손녀를 보는 날이면 내내 싱글벙글, 그야말로 무장해재다.



“어이구, 우리 공주님 할부지 보고 싶어쪄요? 어디 할아버지가 한 번 안아보자!”      



하루에 10마디도 하지 않는 아빠는 그녀와 함께 있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어떤 날은 조카의 재롱에 덩실덩실 함께 춤까지 추시니 말이다.           



엄마는 더한다, 일 년 전 그녀가 태어난 날 엄마는 대성통곡을 했다. 기쁜 건 알겠는데 이게 그렇게 까지 울 일인가 싶을 정도로 그녀는 하루 종일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는 요즘 드라마를 보는 대신 유튜브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분석(?)하고 뽀로로 노래도 연습 중이다. 손녀가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불러주고 싶다나.            





덕분에 우리 집 풍경도 확연히 달라졌다. 퇴근 후 각자 방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거실에 모여 새언니가 가족방에 보내준 조카 동영상을 뜯어보며 열띤 토론을 벌인다.            



“엄마, 언니가 보내 준 영상 봤어? 한 번 봐봐”

“세상에, 넘어졌는데 일어났어!! 귀여워!!”  

"아니 어쩜 그렇게 걸음마가 빨라? 천재인가?"

"어머어머, 먹겠다고 이거 막 뜯는 거 봐, 세상에 기특해라"

"아악! 웃는 거 봐, 너무 예뻐어어어어어"          



이런 팔불출 가족이 또 있을까.

물론 우리는 '시'자가 들어가는 필연적인(?) 존재라 어떤 일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나름 개념 있는(?) 시누이인 나의 검열을 거친다. 피할 수 없는 가족 행사가 있을 때 조심스레 오빠에게 상의하고 가족 단톡방 메시지는 내가 1차 검열, 오빠에게 보낼 반찬을 바리바리 싸는 엄마를 말리는 것은 물론 조카와 관련된 모든 일은 새언니와 먼저 의논한다.   


       

이건 내가 배려심이 넘치는 시누이라서 그렇다기보다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한 암묵적 평화협정 같은 것이다. 부모님에게 귀한 손주를 안겨 준건 그녀이고 부족한 우리 오빠를 데리고 살아 주는(?) 것도 그녀이니 당연히 그들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조카 덕분에 특별할 것 없던 부모님의 삶도 달라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은행에서 '할머니' 소리를 들었다고 열불을 내던 엄마가 이제는 '할미' 소리가 절로 나온다.


매일 같이 유튜브에서 정치 영상을 보는 게 낙이던 아빠도 지금은 퇴근 후 매일 같이 손녀 사진을 보느라 바쁘시다. 생각해 보니 요즘 들어 아빠가 쏟아내던 ‘나훈아가 죽었다며?’ 등의 망언을 들어본 지 오래다.   


     

어느 날 오빠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오빠, 엄마아빠가 좋아하는 거 보면 내심 보면 뿌듯하지?”

“말해 뭐 해. 겁나 뿌듯해. 내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윤지 낳은 거야.””

“푸하. 인정. 효도한다는 느낌도 들어??”

“들지. 그동안 속 썪인 거 갚는 중이다”

“어익후, 기특하다, 성OO!!”

“고맙다. 동생 놈아. 근데 넌 요즘 뭐 없고?”

“나?”

“응, 만나는 사람 없어?”

“흐음.. 아무래도 이번 생은 그른 게 아닐까?”           



조금 있으면 곧 돌잔치가 시작된다. 나는 오늘을 핑계로 산 카메라를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예쁘게 찍어줘야지' 오랜만에 꺼내 입은 원피스도 가다듬는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스하다.

          


아, 조카가 돌잡이로 뭘 집었으면 좋겠냐고?


음.... 돈?


나중에 외롭게 사는 고모 맛있는 거 많이 사줘야 하니까.


          

“고마워, 오빠. 덕분에 인생의 짐(?)을 하나 던 기분이야!”



성황리(?)에 막을 내린 조카 돌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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