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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홍 Mar 23. 2024

노처녀가 꼰대에게 대처하는 법   

어머, 자기 여적 온자야?

어머, 자기 애인  자기 애인 없어?ㅍ




“어머, 근데 자기 결혼 안 했어?”

“....”

“아니, 자기 말이야, 자기 여적 혼자냐고”

“.... 아? 아아- 저요? 네. 저 결혼 안 했어요. 하하”          




평소 별로 친분도 없는 동료가 툭툭 치며 묻는다. 이럴 때는 상대의 무례함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나저나 하필 구내식당에서 이렇게 크게 물어볼 게 뭐람.           



“아니, 이렇게 예쁜데 왜 안 없대~ 남자들이 다 눈이 뼜네”

“그러게 말이야, 자기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니야?”           



오지랖이라면 1, 2위를 다투는 옆자리 동료가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 거든다. 순간 밥을 먹던 사람들이 슬쩍 이쪽을 쳐다본다.           




“(속삭이며) 그러니까요, 제가 눈이 좀 높아요”

“근데 자기 몇 살이랬지?”

“(눈만 웃으며) 그건 비~밀! “







나이가 드니 넉살이 는다.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땀을 흘리며 당황하거나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횡설수설하고 있을 텐데 이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 곧 마흔, 직장생활은 10년이 훌쩍 넘었다. 넉살은 늘어나는 나이와 비례하는 걸까? 가끔 내가 '능글맞다'라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회생활 초창기에는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 몰라 늘 삐그덕 댔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잘 지냈지만 직장은 달랐다.



모르는 것투성이고 선배들은 다들 왜 그렇게 무서운지, 상사에게 뭐 하나를 물어볼 때도 몇 시간을 끙끙 앓며 고민하다 물어봐야만 했다.      



“저... 저기 선배, 여기 이거요.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눈은 모니터, 손은 자판을 두드리며) 으응...? 뭐? 나 이것만 끝내고..”    


사수는 왜 항상 바쁘기만 한지. 선배는 이내 내 질문을 까먹고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나의 첫 직장은 잡지사다. 그곳은 매일이 전쟁터요 사방이 지뢰밭인 곳이라 마감이 가까워지면 모두의 신경이 곤두섰다. 게다가 패션계 사람들은 완벽주의자가 많아서 나처럼 어설프고 덜렁대는, 소심하기까지 한 부류와 잘 맞지 않았다.



그나마 친한 선배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네가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래...”라는 말만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 이 힘든 사회생활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난감했다.            



하지만 뭐든지 하면 는다고 나이가 드니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었다. 이제는 일도 사람도 웬만큼 다룰 수 있게 됐으니.



나같이 천성이 소심한 사람은 적당한 사회성과 융통성이 필수다. 뭐든 웃어넘기지 못하면 주변에 꼰대들이 기다렸다는 듯 '노처녀 히스테리네' '저러니 아직 시집을 못 갔네' 등등의 근거 없는 수식어가 붙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참에 나의 넉살 비법에 대해 세 가지만 풀어볼까 한다.




첫 번째, 똑 부러진 이미지부터.



사회생활 초반에 사람들에게 치이고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 때  나는 이 모든 게 내가 일을 잘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같은 서류도 여러 번 꼼꼼히 확인하고 최대한 기일에 맞춰, 아니 기일보다 빨리 마치는 걸 연습했다. 조직 내에서 일을 잘하는 이미지를 만들어서 아무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정말 나를 다르게 대하기 시작했다. 우선 나에게 막말하는 사람이 줄었고 일로 인정도 받았다. 인정받기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할 말은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예를 들어 '나는 이 일을 이러하게 처리했는데 저러한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더 이상 진행하기 곤란하다'와 같은 맥락이 만들어진 것이다.


 



두 번째, 모든 것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어렸을 땐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에게 기분 상하는 말을 해도 '사정이 있어서 그랬겠지' 혹은 '저렇게 말한 데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야'라는 식으로 상대의 무례도 이해하려 들었다.



그러니 화살의 방향이 자꾸 나에게로 돌아왔다. 부당한 상황의 원인을 내 잘못으로 돌리거나 모든 이유를 나에게서 찾곤 했다. '내가 이래서 그가 저랬을 거야' 혹은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을까' 곱씹는 식으로.  



하지만 이런 생각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문제는 대부분 내가 아니라 상대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불합리함의 이유를 자꾸 나에게서만 찾으려 하면 나는 계속 잘못하는 사람이 돼버린다. 그럼 다른 일도 잘 해내기 힘들다. 늘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상한 말을 했을 때는 ‘저 인간은 그냥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넘기거나 과할 경우는 적당한 선에서 말하는 걸 연습해 보는 건 어떨까? 웃으며 ‘하하 그런가요’ 하는 정도로.


 


세 번째, '저는 괜찮아요'



한 번은 지독한 꼰대 동료를 만난 적이 있다. 무슨 말만 나오면 비꼬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쏟아내는, 그러니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지가 옳다'는 생각으로 무장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종종 야근하는 나를 보고 '그렇게 자주 야근하면 윗사람들이 싫어해요'라고 말하길래 '네? 아.. 네' 하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슬슬 눈치를 보며 자신의 전 직장에서 상사와 야근으로 얽혔던 일을 장황하게 말하며 나를 설득시키려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냥 듣는 척하다가 잠시 텀을 두고 말했다.



'하하.. 감사해요. 근데 저는 괜찮아요'



꼰대들은 자기가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한다. 그러니 그에게 반응하는 것은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이럴 때는 그냥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 신경 쓰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던져주어 보자. 그럼 상대는 나를 '쟤는 통하지 않는구나, 혹은 '쟤는 4차원이네' 하며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모든 이의 말에 일일이 대응했다. 때로는 창피해서 얼굴도 벌게지고 쓸데없이 진지하게 반응하느라 '웃자고 던진 이야기에 죽자고 덤벼드는 애'가 되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모든 게 사랑받기 위해서였으리라.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하지만 나이가 드니 점점 타인의 관심이 부담스럽고, 실제로 사람들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남을 신경 쓰기보다 나를 지키는 방법을 연구했다. 내 마음이 좋아야 남들에게도 좋게 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에서 만큼은 '똑 부러지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쌓고 인간적으로는 '적당한 넉살'로 응수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아주 잘 통한다.



이 방법은 나처럼 결혼적령기를 넘긴 싱글에게 효과적인 방법이니 참고하자. 참고로 지난번 식당에서 '결혼 안 했냐'라고 묻던 아줌마는 그날 이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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