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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홍 Mar 13. 2024

야, 아침 먹고 나가!!

엄마의 아침 밥상








"야! 이거 먹고 나가!"

“엄마, 나 늦었어...!!”

"엄마가 학교에 전화해 둘 테니까 먹고 가. 차린 사람 성의를 봐서”

“하아...”         




물론 엄마는 단 한 번도 샘에게 전화를 해준 적이 없다. 덕분에 나는 늘 남아서 청소를 해야만 했다.



"마! 넌 반장이란 놈이 허구한 날 지각이야..!"

"아니 쌔앰... 엄마가 밥 먹고 가라고 해서..."

"또 또 엄마 핑계! 그럼 더 일찍 일어나야지!"




맞는 말이었다. 핑계다. 하지만 한창 크는 10대에게 아침 일찍이 어디 쉬운 일인가.  




엄만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아침밥을 차려주셨다. 하얀 쌀밥에 계란프라이. 날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기본 세팅은 비슷했다. 나는 그 아침이 너무 싫었다. 꾸역꾸역 넘겨 삼키는 밥알이 모래알처럼 까끌거렸다.  




엄마는 왜 그렇게 밥에 목숨을 거는지. 한국 사람들의 '밥 사랑'이야 당연한 거지만 우리 엄마는 아침에 유난히 집착했다.




'사람이 아침을 챙겨 먹어야지'

'아침 거르지 말아라'

'아침 꼭 챙겨 먹고!'




나이 들어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그녀에게 '아침 챙겨 먹으라는' 말을 더 많이 듣게 됐다. 전화로 문자로. 언젠가부터 익숙해져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문득 궁금했다. 그녀가 왜 그렇게 아침에 집착하는지.



본가에 들른 어느 날 그녀에게 물었다.



"엄마, 근데 왜 이렇게 아침을 좋아해?'

"그야 아침밥이 중요하니까"

"아니 중요한 건 맞는데, 왜 중요하냐고"



"음... 그게 말이야. 너네 할머니 때문이야"

"할머니가 왜?"

"외가에 형제들이 많잖아. 일곱 형제. 엄마 어렸을 때 형제들이 다 같이 학교에 다녔어. 산을 두 개나 넘어서. 엄마랑, 큰삼촌이랑, 큰 이모랑, 막내 삼촌이랑 이렇게 다 같이"



"산을 두 개나 넘었어?"

"응. 그땐 그랬어. 시골에 학교가 없어서. 근데 어린애들이 꼭두새벽에 일어나 산을 두 개나 넘으려면 얼마나 배가 고프니? 근데 할머니가 꼭  큰삼촌한테만 감자를 싸주는 거야. 가다 먹으라고. 그리고 삼촌은 그걸 우리한테 안 나눠주고 꾸역꾸역 다 먹었다? 세상에, 어린 마음에 그게 어찌나 서운하던지"



"허얼... 너무해. 감자가 부족했나?"

"응, 그땐 그랬지. 모두가 가난했으니까. 항상 먹을 게 부족했어. 식구가 워낙 많으니까. 일곱 형제 점심 도시락도 싸줘야 하지, 학교 돌아오면 밥도 먹여야 되지. 소죽도 끓여야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큰 아들만 그렇게 아침을 싸주니? 우리도 자식인데"



"얼마나 먹고 싶었겠어"

"우리 집은 그나마 좀 덜한 거였어. 엄마 친구 중엔 하루 종일 물만 마시는 애들도 있었어. 그 후 다짐했어. 절대 굶지 않겠다고.



나중에 서울 와서 꼭 아침 차려 먹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간장에 밥이라서 휙휙 비벼 먹고 나왔어. 그랬더니 그 한이 좀 풀리더라. 그 힘으로 서울에서 산 것 같고"

"와아..."



몰랐다. 엄마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나는 늘 엄마에게 반찬 투정이나 하고 안 먹겠다고 징징댔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이렇게 건강한 건 모두 엄마 덕, 아니 그녀가 차려 준 아침 덕이다. 아침마다 밥을 먹으니 자연스럽게 건강한 식습관이 형성됐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한식이고 단 건 잘 먹지 않는다.




나이가 드니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가 간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엄마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인다. 이런 게 철이 든다는 건가.




이제는 혼자서도 아침을 곧잘 챙겨 먹는다. 간단한 빵이나 요거트라도. 혹시나 나중에 내게 딸이 생긴다면, 아침은 꼭 챙겨 먹으라고 해야겠다. 사람은 아침 아니, 사랑의 힘으로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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