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홍 Feb 28. 2024

혼밥 레벨 ‘초고수’

혼밥에도 래벨이 있다







한때 혼밥 레벨에 관한 짤이 돌아다닌 적이 있다.



1단계는 편의점, 2단계는 학생식당, 3단계는 패스트푸드,  4단계 분식집,  5단계 일반 음식적, 6단계 맛집,  7단계 패밀리 레스토랑,  8단계 고깃집,  9단계는 혼술.



집단을 중시하던 우리 사회에서 막 '개인'의 개념이 싹틀 시기였고 아직은 사회적으로 ‘혼자’의 개념이 어색한 우리에게 큰 공감을 자아내며 짤은 각종 SNS를 떠돌았다.




인터넷을 떠돌던 혼밥 레벨





물론 지금은 <나 혼자 산다>의 감성이 보편화되었고 1인 가구도 많아졌기에 더 이상 혼밥이 특별하지 않다. 나도 이제는 혼밥이 꽤 편하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나름 서사가 있었지만.  



나의 ‘혼밥력’은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

그때는 그야말로 하수 중에 하수였다. 워낙 소심한 성격인 데다 ‘자아 중심성’이 절정에 달했을 때라 혼자 밥을 먹어야 할 때면 편의점 삼각 김밥으로 때우거나 굶었다. 이상하게 혼자라는 사실 자체가 창피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나름 중수가 되었다.

졸업반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혼자 먹는 시간이 늘었다. 취업 준비로 마음이 조급했고 동기들이 저마다 어학연수, 인턴, 휴학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같이 먹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용히 학식을 먹거나 급한 대로 매점에서 김밥을 사 먹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점점 혼밥이 편해졌다.

첫 직장에서 업무 외에 나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식사 메뉴 정하기'였다. 나는 사무실 막내였기에 선배의 업무를 이어받았다. 자고로 직장인에게 식사란 삶의 질을 좌우하는 주요한 지표인 데다 애초에 그 누구도 100% 만족시킬 수 없다는 프로젝트의(?) 특성상 매번 선배들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야근도 많던 직종이라 점심 외에도 야식까지 정해야 하는 상황에 부담은 배가 됐다. 나중에야 사수가 그동안 모아둔 전단지를 전해줄 때 왜 그렇게 흐뭇한 얼굴이었는지 알게 됐으니 말이다(그때는 배달 앱이 없었서 매번 인터넷을 찾거나 전단지로 주문을 했다).



이제 막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밥벌이의 설렘은 과중한 업무와 인간관계의 피로함으로 이어졌고 직장생활 '짬바'가 쌓일수록 인류애는 점차 사라짐을 느꼈다. 나는 후천적으로 습득한 사회적 E 성향에, 내면으로는 'I' 기질을 가진 이중적 인간이었기에 회사에서는 사회성 좋은 척 열심히 연기를 했다. 덕분에 집에 오면 주로 뻗어있었지만. 퇴근 후 내가 가장 많이 내뱉은 말,



 '하아... 기 빨려...'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부대낄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해졌다. 그래서 간신히 막내를 벗어났을 때부터 혼밥을 찾게 됐다. 밥시간이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평화의 시간이었기에. 도시락을 싸와서 먹거나 근처 카페에서 간단히 먹고 멍 때리거나 책을 읽었다. 나이가 들 수록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각 단계를 거치며 혼밥이 익숙해졌지만 아직 ‘고수’가 되진 못했다. 여전히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뷔페는 꺼려졌다. 혼자 여러 번 움직이는 불편함이나 서비스 마인드로 무장한 웨이트리스를 마주하는 게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그러던 중 지인의 결혼식에 가게 됐다. 함께 아는 친구가 없어서 혼자 갔다. 예전 같으면 얼굴만 비추거나 식만 보고 나왔지만 갑자기 무슨 도전정신인지, 꼭 밥을 먹고 오고 싶었다. 게다가 그곳은 수많은 강남의 예식장 중에서도 밥이 맛있기로 소문이 난 곳이었다.



사진까지 찍고 서둘러 식당으로 갔다. 식권을 들고 조용히 자리를 물색했다. 마침 벌써부터 낮술을 즐기고 계신 어르신들 옆자리가 비었다. '그래, 차라리 저기가 편하겠다...' 조심스레 가방을 두고 첫 접시를 뜨러 갔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마음으로 비장한 마음까지 들었다. 오랜만에 신은 하이힐과 골반에 꽉 끼는 원피스가 마치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갑옷 같이 느껴졌으니.



설레는 마음으로 접시를 집었다. 조금씩 다 먹겠다는 마음에 처음에는 야채와 차가운 음식 위주로, 샐러드 회를 집어 들었다. 셰프님이 직접 회를 떠주고 계신 걸 보니 맛있는 게 분명했다. 연어와 광어회를 적당히 담고 자리로 왔다. 그리고는 드디어, 첫 젓가락을 집었다.



‘어머.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



부드러운 연어와 야들야들한 광어회에 빠져 혼자라는 사실도 잊은 채 회를 거진 다 먹고 있을 즈음, 옆자리 어르신이 말을 거셨다.



“아니, 아가씨 우리 00이 친구 분이신가?”

“네? 아,, 네에 ^^;;”



신부의 할아버지와 큰 아버님 식구분들이라고 하셨다.



“아이고, 아가씨가 복스럽게 먹는 게 아주 보기 좋아요. 여기 술 한잔 받아요!”

“어머, 아버님 실례예요. 죄송해요. 아버님이 오늘 기분이 좋으셔서”


평소라면 적당히 거절했겠지만 이상하게 술이 한잔하고 싶었다. 마침 차는 두고 왔고, 일행도 없었으니.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한잔 주세요”

“허허허, 00이 친구라 아주 시원시원하시구먼! 자, 여기 받아요!”


그렇게 혼자 간 지인의 결혼식에서 신부의 할아버님과 큰 아버님 댁, 그리고 내 또래와 비슷한 조카들 까지 함께 모여 소맥을 거나하게 말아먹고 뷔페를 3 접시나 비웠다.


예식장을 나왔을 땐 휴대폰에 모르던 전화번호가 3개나 추가되어 있었고, 주말 오후 여전히 햇살은 뜨거웠다. 슬슬 얼굴에 열이 오르고 속도 부대꼈지만 비실 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과연 혼자 먹은 건지 회식(?)을 한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혼밥 도전이었지만 이상하게 기뻤다.






언제부터인가 혼자가 편했다. 사회생활에 지쳐갈수록, 사람에게 상처받고 직장 생활에 회의가 들 수록 조직 속에 있는 게 힘에 부치고 사람에게서 점점 멀어지고만 싶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역시 아웃사이더인가, 사람들과 어울릴 줄 모르는 부적격 인간인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만 잔뜩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판 모르는 어르신들과 술도 마시고 이런저런 사담을 나누고 나니 오히려 기분이 말끔해진다.



그래, 인간은 사회적 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동안 대문자 'I'로 살며 한국의 조직적 문화가 힘들었다지만  사실 나도 혈액 속에 파이팅 하는 'K-기질'을 감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쭈욱 혼자가 좋은 사람은 없다. 쉴 틈 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즐겁기만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때로는 홀로, 때로는 함께 하기도 하며 인생의 밸런스를 맞춰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 아닐까.



그래도 다음번에는 홀로 고깃집에 도전해 봐야겠다. 체면 차리려면 2인분을 시켜야 할 테니 배는 최대한 비워 두어어야 지. 아니면 요즘 많다는 1인 고깃집도 좋겠다. 우선 적당한 곳을 물색해 놓아야겠다. 혹시나 '혼자력'을 기르고 싶은 분이 있으시다면 함께 가도 좋겠다. 가서 따로 먹어요! 하하



요즘에 이런 곳도 많더라고요!







이전 11화 10년 만에 반찬통을 바꾸고 생긴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