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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 Jan 24. 2024

헤어진 사람과 친구가 돼요?

누군가는 그게 된 다던데





얼마 전 호감이 있던 사람에게 거절당한 후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도 내가 싫은 것 같진 않았는데. 함께 걸을 땐 손을 뻗어 도로 안쪽으로 걷게 하고 남아도는 컵을 굳이 같이 쓰자고 하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이것저것 챙겨주고. 용건 없는 카톡도, 매일 묻는 안부도 모두 호감의 의미로 받아들였 것만. 애매한 관계는 싫다고 물어보았던 것이 실수였을까?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 후 나는 그를 슬금슬금 피했다. 친구처럼 지내자고 했지만 도저히 난 그게 안 됐다. 쿨해 보이지 않을 걸 알면서도 SNS도 언팔하고(스토리 속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너무 꼴 보기 싫더라) 모임에 갈 때도 혹시 그가 오진 않는지 참가자 리스트를 꼼꼼히 살폈다(그는 같은 모임의 일원이다). 



그렇게 열심히 피해다녔 건만 결국 그를 마주쳤을 때는 어색해서 죽는 줄 알았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웃고 쓸데없는 말만 잔뜩 내뱉었다. 평소 잘 마시지 않는 술도 엄청 마셨다. 덕분에 나는 다음 날 필름이 끊기고 이불킥만 백만 번 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정말 나와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건지 자꾸만 와서 말을 걸고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좋아했던 사람과는 정말 쿨한 관계가 가능한 걸까? 


오래전 만났던 그가 떠오른다. 얼마 전  그가 tv에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중파 뉴스였다. 그때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지금은 성공한 스타트업의 CEO가 되었다. 그는 톡톡 튀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도전적이고 인사이트가 넘쳤다. 일하면서 만난 우리는 자연스럽게 오빠 동생으로, 나중에는 서로 호감 있는 사이가 됐다. 결국 잘 안 됐지만.  


고백하는 그를 내가 거절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때는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게 사랑인 줄만 알았다. 미치도록 설레는 게 사랑이라고 착각했다. 이런 세상 빙구 똥멍청이. 아무튼 그때는 연인은 아니어도 우리가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함께 있으면 편하고 좋았다. 무엇보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물론 그는 나를 열심히 피해 다녔지만.  


생각해 보면 나 역시 헤어진 사람과 친구가 된 적이 없다. 썸도 마찬가지다. 나를 거절한 사람을 다시 보는 건 영 불편하다. 어쨌든 관계는 끝이 났고 예전의 감정을 나눌 일도 없으니까. 무엇보다 그를 볼 때마다 나의 가장 찌질했던 순간이 떠오르니까.


전 연인을 다시 볼 때마다 창피한 기억이 줄줄 새어 나온다. 별 것도 아닌 일로 길거리에서 악다구니를 쓰고 소리를 지른 기억, 사람 많은 곳에서 눈물 콧물 흘리며 엉엉 운 기억, 다른 여자에게 조금만 친절해도 불 같이 화를 낸 기억,  작은 선물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한 기억. 무엇보다 그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세상이 무너진 듯 슬퍼하고 아팠던 기억. 다시 생각해 보라고, 제발 날 떠나지 말라고 구차하게 울며 불며 매달린 기억까지. 


썸남에게 거절을 당했을 때도 비슷했다. 좋은 사람인 건 알겠지만 미안하다는 말에, 그냥 친구로 지내자는 말에 심장은 총에 맞은 듯 아프고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왜 나는 안되냐고, 내 어디가 부족한 거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서, 막상 그 말을 직접 들으면 너무나 힘들 것 같아서 차마 묻지 못했을 뿐.  


그렇다. 이래서 좋아했던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가장 찌질하고 창피하고 아팠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니까. 


아직도 얼마 전 썸이었던 그에게 ‘우리는 무슨 사이야?’라고 했던 밤이 떠오른다. '무슨 사이긴 무슨 사이야. 사귀긴 싫고 적당히 썸만 유지하고 싶은 관계지. 아니, 남 주신 싫고 가지긴 싫은 딱 그런 관계지' 으이그, 이 병x아, 이 멍청이야. 아니, 정말 멍청했던 건지 아니면 멍청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건지. 눈치가 없던 건지 눈치가 없는 척하고 싶었던 건지. 그러게 물어보긴 뭐 하러 물어봤을까. 사실 다 알면서.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공평한 것 같다. 상처는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 오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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