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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Aug 09. 2023

[책리뷰]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슬픔을 묻고 살아가는 사람

전작 '쇼코의 미소'에 이어 출간된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 전작과 마찬가지로 최은영 작가 특유의 섬세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는 소설이다. 7가지 중, 단편이 담겼다.


목차

그 여름

601, 602

지나가는 밤

모래로 지은 집

고백

손길

아치디에서


이 중 제일 첫 번째 실린 '그 여름'은 이경과 수이의 사랑과 헤어짐을 담았다.


학창 시절, 축구부였던 수이의 공에 우연히 맞게 된 것을 계기로 이경과 수이는 사랑을 시작하게 되고, 이후 성인이 되어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다. 달라진 환경 속에서 두 사람은 점점 서로에게 불만이 쌓여가고, 결국 이경은 수이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별 직후 은지와 짧은 연애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온 이경은 수이와 함께 걸었던 길을 거닐며 이별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수이를 추억한다.



이외 다른 6가지의 이야기, 그리고 전작 쇼코의 미소에서도 보이는 최은영 작가의 세계에서는 공통적인 키워드가 보이는 것 같다.


여성, 가족, 슬픔, 이별.


마지막 '아치디에서'를 제외한 7개의 이야기의 화자는 모두 여자이다. ('아치디에서'의 화자인 브라질 남자 랄도인데, 그마저도 이야기의 실제 중심은 한국인 여자 하민이다.)   

또한 이야기가 뚜렷한 기승전결로 구성되었다기보다는, 주로 인물 간의 정서적 공감이 중심을 이룬다. 사랑과 우정을 교감하는 인물들도 대부분 다 여성들인데, '그 여름'처럼 여성간 사랑 이야기도 있고, 자매 간, 숙모와 조카, 친구 간 우정도 있다. 그러나 인물 간의 관계가 다르다고 해서 그 정서가 전혀 다르지 않다. 주인공과 그 상대방이 어떤 관계이건, 어떤 이름이 붙은 사이이건 간에 상관없이 그들 간의 따뜻한 공감이 주된 내용이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가족 문제가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특히 이야기 속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을 보듬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폭력을 행사하거나 그 폭력을 묵인하고 방관한다.

중심이 되는 인물들은 이러한 가족 구조 속에서 약자로 등장한다. 부당한 대접을 받지만 드러내지 못하고 슬픔을 참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들에게 상처는, 물리적인 폭력 너머 마음의 아픔이다.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그 주변인의 '이해'이다.

'601, 602'의 효진이에게는 옆집 이웃 주영이가 있었고, '지나가는 밤'의 윤희에게는 동생 주희가 있었다. '모래로 지은 집'의 공무에게는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들 모래와 나비가, '손길'에서는 혜인이와 정희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했다.

그들은 서로의 일을 직접 나서서 해결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상처를 알아주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큰 의미가 되었다.

그런 미묘한 감정선이, 서로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때로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이별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은, 그들이 이별한다고 해서 서로를 지우지는 못하고 오래도록 남아 있게 된다.

  

© christinadera, 출처 Unsplash


내게 무해한 사람


첫 번째 이야기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왠지 이건 자전적인 소설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스토리 라인이 아니라, 인물 간의 정서와 감정에 대한 묘사가 '이건 분명 실제로 겪은 감정이다'하는 것을 바로 있을 정도로 섬세하고 감각적이었다.


그러한 사실은 역시 마지막 '작가의 말'에 나와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소설에는 내가 지나온 미성년의 시간이 스며 있다.'라고...


쉽고 함부로 다루어진 유년 시절에 대한 상처를 겪으며, 작가 자신은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고 한다.


지껄이는 입들과 너무 가벼운 손찌검으로부터 멀리, 아주 멀리로 가고 싶었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하지만 작가도 고백했듯, 우리는 순도 100%의 무해한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 어느 누구라도 의도치 않게 해를 끼치며 살아가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정도의 상처와 슬픔을 삭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작가가 그린 세계는 그러한 아픔을 서로 끌어안으며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삶을 치유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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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이공계 여자인 나에게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 같은 감성 소설은 너무 어렵다...

양자 역학이나 우주의 신비를 다루는 과학책이나 기승전결이 뚜렷한 역사소설 같은 경우는 단락의 목적이 확실해서 해석하기가 쉬운데 비해서, 감성 소설은 분위기와 상징을 읽는 데에 많은 에너지가 드는 것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있는 감성 없는 감성을 다 끌어올려 읽었더니 왠지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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