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친한 친구와 셋이서 만나기로 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보자고 했더니 전화기 너머로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대충 들어보니 삼겹살에 소주나 먹을 것이지 간지럽게 이런 데서 보냐는 식의 이야기인 것 같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평소와 다르게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온 걸로 봐서는 말로만 그런 게 분명하다. 아마 마지막 연애 이후로 이런 레스토랑은 얼씬도 안했어서 어색해서 그랬으리라.
와인 몇 잔을 마시니 어색해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다. 금세 취기가 올라 묻지도 않은 근황을 시시콜콜 말해준다.
요즘 그의 화두는 '결혼'이다. 결혼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한다고 한다. 무슨 노력을 하는지 어디 한번 들어보자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줄줄 나열한다. 난생처음 피부과 가서 관리를 받았고, 살 빼려고 PT도 시작했고, 가전제품 파는데 가서 미리 예산 계획까지 세워봤다고 한다.
훌륭하다.
훌륭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내게 묻는다. 자기 친구이자 내 남편을 가리키며 대체 이런 놈이 뭐가 좋아서 결혼했냐고.
이때다 싶었지만,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 차분하게 말한다.
"남편은 다른 남자들이랑 확실히 달랐던 게 하나 있었어요."
대체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냐는 눈빛이었지만, 예의상 뭐냐고 물어봐준다.
"나한테 질문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이렇게까지 순수한 관심을 가져준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보통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외적인 조건이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돈, 집, 차... 그래서 항상 '자기 얘기'를 많이 했다. 이만큼 능력이 있고, 이만큼 재밌고, 이만큼 돈이 많고... 자신이 뭔가 많이 가지고 있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결혼하는 데 있어 분명 중요한 사항이다. 그렇지만 결혼을 할지 말지 조건을 따져보기 위해서는 일단 상대에게 끌려야 한다. 일단 끌려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는 거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조건 때문에 연애를 못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없어서, 잘생기지 못해서... 사실 뭔가 없긴 하다. 바로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다!
누군가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모두의 관심은 자기 자신을 향해있다. 이렇게 중요한 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 이렇게 훌륭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 감탄할 수밖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진심 어린 관심을 말하는 거다. 그냥 찔러보거나, 음흉한 목적으로 관심 있는 척하는 건 소용이 없다. 사람들은 그런 건 귀신같이 구별해 낸다. 특히, 여자들의 레이다는 민감도가 대단하다.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다소 놀란 표정을 짓는다.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다른 게 하나 더 있었어요. 이 사람은 처음으로 내 꿈이 뭔지 물어봐줬거든요."
진짜 그랬다.
아마 많은 이들이 현재의 모습에 관심을 갖는다. 생각이 깊은 이들은 상대의 과거까지도 묻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만약 상대방이 나의 미래에 관심을 갖는다면? 나의 꿈이 무엇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봐준다면?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애를 낳아도'라고 말하는 남자보다 백만 배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나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봐주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직은 남편 친구와 그 정도로 친하지 못해서 이렇게까지 이야기는 못했다. 잔소리처럼 들릴까 봐 걱정이 됐다. 내가 뭐라고 상대방에게 이렇게 하라고 훈수를 두겠는가? 그렇지만 알려주고 싶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으려면 '나'를 내려놓고, '상대'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나'의 가진 것을 드러내기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순수한 관심을 쏟는 것이 제일 먼저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