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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Mar 18. 2022

나는 참 귀여워

메타인지의 잘못된 예, '난 왜 그렇게 못해?'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은 내가 대학생 때 신드롬을 일으킨 책이었다. 기분 탓인 것 같기도 한데 그 이후로는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는 내용의 에세이가 많이 나왔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고 너는 너야, 다른 사람에게 너의 감정을 휘둘리지마, 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미움 받을 용기를 갖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책 내용 다 알겠고 이해하겠는데, 여전히 잘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왜 나는 미움 받을 용기가 없지? 왜 이렇게 남을 신경 쓰면서 살지?' 미움을 받는 게 싫었을 뿐인데, 거기에 더해서 미움 받는 게 싫은 내가 싫어? 이건 뭐 뫼비우스의 띠다. 이중으로 고통 받았다.


그러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미움 받기를 싫어하는구나, 어유 귀여운 !'

그리고선 뭔가 달라졌다. 오히려 인정을 하고부터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하기보다는 받아들였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가 어렵다면, 사랑할 만한 멋진 나를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공부하고 도전했고, 나를 사랑하고서는 남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드디어는 미움받을 용기가 생겼다.


미움 받을 용기가 없는데 '미움 받을 용기가 있어야 ! 당장 내가 원하는 대로 휘갈긴 다음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움 받을 것이야!'  사람은 없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그럴 때는 그냥 그런  나구나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나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결국은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된다. '에이 몰라!' 하는  무책임한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어렵다면, 멋지다고 생각하는 나를 만들면 된다. 거기에는 때로는 세상의 기준이 들어갈 수도 있다.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인데. '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까?'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신경  수밖에 없다. 신경을 쓴다는  사실 자체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  역시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멋진 내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아쉬움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아니어도   있는 나를 상상하는 것이니까. 다만, 그런 내가 되기 위해서 그런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시도는 필요하다.


이렇게 시작하다보면 끝내는 미움 받을 용기가 조금 생긴다.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있다. 미움 받을 용기뿐만이 아니다. 뭐든 되지 못하고, 하지 못하는,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대로 되지 못하는 내가 있다면, '나는 , 귀엽다, 귀여워~' 하고 생각하자.  발짝 여유로워지면 그만큼 다른  보이고,  발짝 나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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