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영혼'을 아나?
저는 어머니께서 하도 영끌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하셔서 영끌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한 시간 반은 걸리는 싼 집을 샀습니다. 저는 조심성이 많은 편이라 그때도 ‘더 비씬 집을 사고 싶은데’라는 생각에 불만스러웠던 건 아닌데, 지나고 보니 더 잘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와중에 더 느끼게 된 영끌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영끌의 진짜 문제점은 영끌을 실행하기 이전에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어디까지인지 알지 못하는 것, 다시 말해 ‘영끌’을 제대로 계산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와 나의 자산 상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막연한 가정’을 너무 많이 하는 것입니다.
영끌은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말인데, 이 말은 너무 추상적입니다. 추상적인 표현은 직관적이긴 하지만 때로 이성적인 사고를 막곤 합니다. 집을 살 때 내가 끌어다쓸 수 있는 것은 결국 돈입니다. 현재까지 모인 돈, 앞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돈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와중에 이런 가정들은 원래대로라면 더 신중하게, 보수적으로 했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집값 안 떨어지겠지.
금리 더 안 오르겠지.
갑자기 돈 쓸 일 안 생기겠지.
별 일 안 생기겠지.
나한테는 그런 일 안 생기겠지.
이런 가정들이 들어가면 나의 영혼은 아주 커다란 것이 됩니다. 실제 영혼을 넘어서는 것일 수 있습니다. 현실은? 생각보다 돈이 나갈 구석이 많고, 집값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고, 금리가 올라가면서 재무 건전성에 불이 들어오고, 그렇게 나는 작은 변동성에도 몸살을 앓게 됩니다.
저는 집을 살 당시, 집값이 30% 떨어질 수 있다고 가정했습니다. 대출을 받을 때에는 금리가 여기에서 5% 오르면 얼마나 더 내야 하는 것인지도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회사에서 급여를 줄 때는 물가인상률을 웬만큼 반영해 주는데, 집을 샀던 당시 시점의 월급이 계속 유지된다는 가정을 했고, 성과급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가정했습니다.
하나의 원리로 요약하자면, 나한테 달리지 않은 것은 다 보수적으로 잡아서 계산을 했습니다. 국제 정세? 나에게 달리지 않았죠. 그에 따른 금리? 집값? 나에게 달리지 않았습니다. 집을 사면서 긍정회로를 돌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회로를 멈추고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30% 하락이면 얼마나 크리티컬 한가, 보완하거나 존버할 수 있는 정도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월급도 성과급도 주는 대로 받는 것이 회사원의 숙명이니, 현재 수준이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과하게 조심했던 것 같지만, 그래도 금리가 상승했을 때, 집값이 떨어졌을 때도 괜찮을지는 꼭 생각해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조심해서야 한 방은 언제 터지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요. 그래도 어떤 일이든 가능성을 생각할 때에는 나의 노력으로 해낼 수 없는 것들은 내 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