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늘 조급했다. 방법같은 건 몰랐다. 주변의 어른들이 제안하는 성공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는 게 가장 확실한 길이라 생각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지. 좋은 대학교에 가야지. 빨리 어른이 돼서 돈을 벌어야지. 많이 벌어야지. 나도 좋은 집에 살고 엄마, 아빠도 좋은 집 살게 해드려야지.
‘어른이 돼서 돈을 벌어야지’까지는 해냈는데, ‘많이 벌어야지’부터는 소식이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 아니지?
돈 벌이를 시작하고 ‘이제 집을 좀 사볼까’ 하고 고개를 들어 집값을 바라 봤을 때는 황당했다.
‘... 집값 무슨 일이야?’
구내식당에서 1일 1식을 하고, 나잇살이 찌지 않아 옷도 살 필요 없고, 물욕이 0인 상태를 못해도 20년 유지하고, 그러는 동안 집값이 더 도망가지 않고 제 자리에 있어야만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슬럼프에 빠졌다. 특별히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랜 기간 조금씩 쌓아온 믿음이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면 멋진 집이 생겨 있을 거라고 믿어왔던 지난 25년의 시간, 그 시간동안 가졌던 기대와 열정이 변기물 내려가듯이 쏴아아 쓸려 내려가 버렸다. 내 생각은 똥이었던 것이다!
제법 오랜 기간 동안 나를 방치했다. 열심히 살아도 소용 없었는데, 뭘. 이제 와서 뭘. 열심히 안 살겠다는 의지를 회사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딱히 일을 못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이 일을 내가 맡아서 회사에 도움이 되고 있나 의심되는 날이 많았고, 술을 마시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회사가 회식으로 꼬박꼬박 술을 먹여 줬다. 회사 핑계를 댈 수 있게 만들어주는 회사가 고마웠다. 그런 날들이 반복됐다. 신체적인 건강도, 정신적인 건강도 전에 없이 나빠지던 어떤 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진짜 이렇게 살 거야? 이렇게 마음에 안 들게?'
아쉽게도 그날부터 극적으로 행동이 바뀐 것은 아니다.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기에 이것저것 삽질을 했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나았다. 내가 가진 것 중에 그나마 나쁘지 않은 것은 ‘성실’이니까, 그거라도 믿고 뭐든 해보자,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또 내가 가진 게 뭘까. 그동안 하염 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던, 회사가 내게 준 월급이라는 자원, 그리고 성실한 노예에게 지급하는 신용이 있었다.
엄마의 따끔한 조언도 있었다.
“마음이 힘들면 차라리 공부를 해.“
일단은 투자 공부를 했다. 마침 부동산, 주식 투자 열풍이 불었고, 공부를 안 하는 거지 못 하는 거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학습 자료들이 양산되고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부를 했기 때문에 동기부여도 됐다. 믿음을 수정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진 않구나. 단번에 좋은 위치의 좋은 집은 갈 수 없지만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그렇게 도달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겠다. 멀찍이 있는 목표를 하염없이 바라보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야 한다. 덧셈 뺄셈을 배워서 이차방정식, 함수까지 풀 수 있었던 것처럼, 긴 호흡의 지문을 읽고 듣기 위해 가나다라를 배웠던 것처럼 그렇게 하면 된다. 5세의 나와 25세의 내가 다른 것은 순진하냐 세상의 때가 좀 탔냐 하는 것 뿐이었다.
만 25살에 첫 내 집을 마련했다. 내가 살 집은 아니었다. 대출을 받아 고향에 있는 18평 아파트를 6500만 원에 사서 35만 원짜리 월세를 줬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할 수 있는 게 있어! 그해 말, 다음 해 초에 수도권에 20평대 아파트를 샀다. 1억 7천만 원 하는 집, 1억 4천만 원의 전세를 끼고 내 돈은 3천만 원을 들였다.
"저희 여기 살면서 좋은 일 많이 있었어요."
전 집주인이 매매 계약서를 쓰면서 말했다. 집을 사면 좋은 일이 있는 건지 살면 좋은 일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좋은 일이 있었던 건지 전 집주인의 매너가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았다. 말로만 들어 왔던 것들이 내 일로 받아 들여지기 시작했다.
내가 내 집에 들어가려면 2년이 필요했다. 내 집은 다 남에게 빌려줘 놓고 나도 남의 집을 빌려 살았다. 그래도 불안하지 않았다. 회사 근처 낡은 빌라의 원룸은 월세가 비쌌다. 이렇게 월세가 비싼 곳에 떳떳하게 살려면 아끼는 체력과 시간을 들여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하고, 내 생각과 이야기를 담아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어 이런저런 채널에 올렸다. 가끔은 치킨 한 두 마리 사먹을 정도는 되는 부수입이 생겼다.
전세 계약이 만료될 때에 맞춰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았다. 가성비 있게 인테리어를 하고 손 없는 날을 골라 이사를 했다. 종교는 없다. 논리적이지 않은 것도 싫다. 내 집에 들어가는데 안 좋다는 것은 안 하는 게 맞지! 본래 논리는 상황에 따라 주관적인 것이다. 침대 머리맡도 동쪽으로 했다.
회사 근처 빌라 원룸에 살다가 회사에서 먼 아파트에 살게 되는 게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몰라서 이사 전까지는 싱숭생숭했는데, 막상 다녀보니 그냥 좋다. 웃기긴 한데, 부자가 된 기분이다. 서울까지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소형평수의 나홀로 아파트라고 하면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를 소박한 집이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집이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 살아 보는 것도 처음이고, 10년 동안 기숙사에 살거나 원룸에만 살다가 방이 세 개나 있는 집에 사니 좋다. 화장실은 호텔인가 싶을 정도로 돈 들인 보람이 있고, 엄마랑 이모랑 같이 페인트칠한 방문은 괜히 애착이 생겨서 한 번씩 쓰담쓰담 들여다 보게 된다. 현관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곳 사이에 설치한 포인트 조명도 불멍 하기 좋다. 이곳이 나의 호텔이고, 아지트고, 캠핑장이다.
회사에서 먼 것은 단점이긴 한데,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난 다음 정신줄을 놓고 있다가 환승 한 번만 정신 차리고 하면 회사가 있는 역에 내릴 수 있다. 다 그렇게 사니까. 그 시간을 더 잘 활용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월세를 살면서 단련해 둔 '갓생력'이 도움이 될 터였다.
재테크, 투자 목적이 아니었다고 하기에는 내 집이 높이 평가 받으면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확실한 것은 좌절을 이겨낸 자존감, 내 집을 마련하고 내 집에서 실제로 살아 보면서 느끼는 안정감, 그 과정에서 얻은 배움, 미래에 대한 희망같은 것이다. 돈을 주고도 만들기 어려운 돈과 삶에 대한 철학이다.
설렌다는 말은 촌스럽나? 이곳에서 살아갈 날들이 설레고, 다음에는 또 어떤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것도 그렇다. 그러니 더 열심히 살아야지. 언젠가 설레지 않고 편안하기만한 날이 와도 꺾이지 않았던 그때 그 마음이 가치로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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