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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 Jul 31. 2020

결혼식, 당일의 기록

정신없고 정신없다


예식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금요일-토요일에 거쳐 대여한 물품들을 다 찾아왔다. 한복이나 턱시도 같은거.. 차 트렁크와 뒷자석 일부분이 모두 짐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짐이 이렇게나 많은거였구나..


당일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서 씻고 준비해서 메이크업 하러 출발했다. 메이크업 해주실 분은 니트 원피스를 입고 간 나를 보며 경악하셨었다.  


Tip) 예식 당일날 라운드 된거 입지 말고 웬만하면 셔츠 입을것.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메이크업을 받는데 진짜 약간.. 저게 다 내 얼굴에 올라간다고? 할 만큼 화장품을 바르셨다. 그리고 그게 다 발라지긴 하더라.. 어마무시한 머리숱을 자랑하는 내 머리를 보시고는 헤어디자이너님은 하실 말씀이 잠깐 없어지셨다가 이걸 어찌 저찌 묶어주시긴 하셨다. 나중에 지인들은 머리 무슨 일이냐며 난리도 아니었다. 이 머리를 어찌 할지 뜨거운 감자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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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크업이 끝나고 드레스로 환복하러 갔을 때, 스냅 찍어주실 분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남편 먼저 턱시도로 환복한 뒤 내가 갈아입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난 다음엔 세개의 티아라 중에 뭐가 더 나은지 보고, 귀걸이도 뭐가 더 나은지 봤다. 발 사이즈에 맞춰서 구두도 신고 스냅 사진 찍고 샵을 나섰다. 


tmi) 웨딩드레스를 입으면서 제일 걱정됬던건 사실 화장실이었다.. 그래서 당일날 물을 한모금도 안마시는 결정을 했다. 근데 너~~무 정신없어서 그런가 물이라던지 밥 생각이 하나도 안나더라. 그래서 그냥 어찌저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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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식이 1년중에 제일 늦은 날이었기 때문에, 당일날 결혼하는 팀이 나 하나 뿐이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도 사진찍고, 예식 끝나고도 사진찍고, 완전 전세낸 것 처럼 쓸 수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주차도 널널하고 식당도 여유로웠다 카더라. 이득도 이런 이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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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대기실에 앉는 순간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실 오전부터 정신이 없었긴 했지만, 가방순이를 해주기로 한 친구 두명이 나랑 결혼식장에 거의 같이 도착했다. 친구 한 명은 부케도 담당해줘서 조금 일찍 온거라고 했다. 부케를 들고 친구들 얼굴을 보니 정신이 좀 차려지는 것 같긴 했지만 이게.. 사람들이 오고 사진찍고 이러다보니까 또 정신이 하나도 없어졌다. 결혼식을 어떤 정신으로 치뤘는지도 솔직히 생각이 안난다. 그냥 발아파서 빨리 끝났으면.. 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친구 한명이 본인 핸드폰으로 신부대기실에 동영상 촬영을 해줘서 신부대기실의 근 1시간이 다 찍혀있는 동영상도 받게 되었다. 센스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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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예식 다 끝나고 폐백도 끝나고 인사도 다 끝나고.. 우리에게 남은건 반납과 허기 뿐이었다. 또 그만한 짐들을 다 싣고 턱시도를 반납하고, 한복을 반납하러 갔다. 반납을 다 하고 나니까 갑자기 너무 배고파져서 근처 식당 들어가서 곱창을 먹었다. 맘같아서는 소주도 한잔 하고싶었는데 내가 먹으면 남편도 먹고싶어질거고 남편이 먹고싶어지면 운전은 누가하나 싶어서 안먹었다. 맛은 있었는데 둘 다 진짜 아무말도 안하고 밥만 먹었다. 왜냐면.. 핸드폰에 축하한다는 카톡이 몇백개는 쌓여있었기 때문......  계속 답장하고, 답장하고, 답장했다. 집에 와서는 축의금 정리하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문자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신혼여행 출발이었기 때문에 짐도 쌌다..

 이 모든게 마무리 된 시간이 열한시쯤 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중에 몇몇은 축의금 봉투에 편지도 넣어줬는데, 편지읽고 나도 모르게 엉엉거리면서 울었다. 추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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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늘 뭐했지? 라고 계속 생각했는데, 진짜 정신이 너무없어서 아무 생각이 안난다는 이야기가 사실인가보다. 뭐 했고 뭐 했고 하는 굵직한 것들은 생각이 나는데 어디서 뭘 했나 하는 세세한 것들은 생각이 안난다... 


이것은 그동안의 우리의 작은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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