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노래 '무릎'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조용하던 두 눈을
다시 나에게 내리면
나 그때처럼 말갛게 웃어 보일 수 있을까
-아이유 '무릎' 중-
이 노래는 내게 3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나도 한 때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던 시절이 있었다. 작고 마른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으면, 이 노래에서처럼 항상 내 머리칼을 넘겨주셨다. 돌이켜보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할머니의 주름 가득한 연약한 손. 그 따뜻한 온기에도 마지막이란 게 있을 줄은, 그땐 미처 몰랐다.
대학생이 되면서 할머니에게 소홀한 손녀딸이 되어갔다. 친구들이랑 노느라, 학교 공부를 하느라, 그리고 대외활동을 하느라 할머니라는 존재는 내게서 점점 잊혀 갔다. 일 년에 한두 번, 엄마가 할머니를 보러 시골에 내려가자고 하면 가끔은 귀찮은 마음이 들었다.
“이번 주말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못 갈 것 같아 엄마"
할머니는 바빠서 못 간다는 손녀딸에게 늘 괜찮다고 하셨다. "바쁠텐디 뭘 여기까지 오고 그려. 널랑 집에서 쉬어. 아프지 말고." 할머니도 손녀딸이 많이 보고 싶으셨겠지. 내가 아는 우리 할머니라면, 행여라도 손녀딸에게 부담을 될까 괜찮은 척하셨을 거다.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뵈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는 이제 더 이상 우리 곁에 할머니가 없다는 걸 의미했다. 우리는 꼭 잃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해, 정말 이상하게도 연초부터 할머니 생각이 문득문득 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꿈도 한 번 꿨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해 4월, 회사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오열을 하며 내게 전화를 하셨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엄마 무슨 일이야, 응? 진정하고 얘기를 해봐"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엄마의 오열에 나는 회사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셨을 때 할아버지(할머니의 남편)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한 평생 밭농사와 남의 집 일을 도우시며 힘들게 번 돈으로 우리 엄마를 포함한 세 자매를 키우셨다.
할머니는 막내딸인 우리 엄마를 특히나 많이 사랑해주셨다고 한다. 그런 할머니를 보내는 우리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엄마를 둔 덕분에, 나 역시 엄마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랄 수 있었다.
할머니를 영영 보내드리던 날,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그 날 엄마에게 더 잘하겠다고 할머니께 약속했었다. 그리고 이 새벽, 아이유의 '무릎'을 듣고 있자니 할머니 생각이 나고 그래서 엄마한테 더 잘하겠다고 다짐한다.
지난 주말, 엄마랑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다.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할머니 얘기를 꺼냈다.
"아 갑자기 할머니 보고 싶다."
"그러게 엄마, 나도 할머니 보고 싶네."
"엄마가 이 얘기했나? 네가 서울로 이사오던 날, 엄마가 할머니 꿈을 꿨거든. 할머니가 엄마를 보고 활짝 웃는 거야. 무슨 말을 하셨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꼭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더라. '정원이 (내 개명 전 이름) 잘 내보냈어. 하고 싶은 거 해보도록 내버려 두어. 갸는 어디다 내놔도 살아남을겨'.... 그래서 엄마는 우리 딸이 서울 가서 일이 잘 풀리려나 보다~ 했지"
운전하는 엄마도 따라 울까 봐 내색은 안 했지만, 주룩 하고 눈물이 흘렀다. 내가 꿈에 그리던 서울살이 하는 걸 울 할미가 어떻게 알고... 엄마 꿈에까지 등장하셔서 기뻐해 주셨을까.
오늘 밤은 나도 할머니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할머니~ 할머니가 나는 어릴 때부터 무인도 내놔도 살아남을 거라 했잖아. 할머니 말대로 언제 어디서든 할머니 손녀딸이란 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또 즐겁게 살고 있어. 나한테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요 할머니. 할머니 몫까지 엄마한테 잘하려고 더 노력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해요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