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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Oct 03. 2020

안 하던 요리를 시작했다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취를 하며 가장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요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밀 키트를 활용한 조리(?)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따금씩은 재료 손질부터 음식 간도 직접 하는 진짜 '요리'를 하기도 한다.


어제는 절친한 동생이 집에 놀러 왔다.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라 시간 내기도 쉽지 않은데, 먼 길 해준 게 너무 고마워서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었다. 얼마 전 TV를 보는데 백종원이 요린이들에게 김치볶음밥 레시피를 알려주고 있었다. 간단하고도 맛있어 보여 언젠가 해 먹어 봐야지~ 했는데 여기에 모차렐라 치즈만 더해주면 친구에게 대접해도 손색없는 메뉴가 될 것 같았다. 얼마 전 엄마가 가져다주신 고구마가 있으니 이걸로 고구마 스틱을 만들면 후식으로 딱이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보통 요리를 할 때 성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레시피를 보고 정확히 따라 하는 FM유형, 그리고 손 가는 대로 요리하는 내 맘대로 유형. 나는 분명 후자에 속한다. 모든 사람의 입맛과 음식 취향이 다른 한, 레시피는 재료 준비와 음식 순서에 대한 가이드를 주는 참고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요리 방식은 중간중간 정신없이 맛을 보며 최상(?)의 간을 맞춰 나가는 마구잡이 식이다. 언뜻 보면 누가 봐도 요리 고수처럼 보인다.


김치볶음밥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푹 익은 엄마표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양파와 햄을 함께 볶은 다음 밥과 참기름을 넣고 볶으니 제법 먹음직스러운 첫 메뉴가 완성되었다. 다음으로 도전할 메뉴는 난생처음 해보는 고구마스틱이었다. 튀김 요리는 기름의 온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역시나 이론에 집착하지 않는다. 일단 고구마를 원하는 스틱 모양으로 자른다. 얇을수록 바삭해지고, 두꺼울수록 고구마 맛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본격적으로 고구마스틱을 튀겨보자! 기름을 프라이팬에 두르고 조금 끓는다 싶으면 고구마를 넣어보면서 노릇노릇하게 튀겨지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시 언짢다 싶으면 온도를 높이고, 너무 지글지글 끓는다 싶으면 온도를 낮추면 된다. 언뜻 보면 원시 시대 사람의 요리방법 같지만, 정말 맛있었다! 취향에 따라 소금이나 설탕을 솔솔 뿌려주면 시중에 판매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맛있다. 처음 해본 것 치고는 나름 괜찮은 비주얼의 고구마 스틱이 완성!


노릇노릇하게 익은 고구마 튀김!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동생은, 내가 이미 이 메뉴들을 몇 번 해본 줄 알았다고 한다. 내 요리의 자신감은 아마 어머니에게로부터 온 것 같다. 우리 엄마는 호텔조리학과를 나오셨다. 내가 한창 어릴 때 엄마가 조리사 자격증 공부를 하셨는데 양식, 일식, 한식, 중식까지 정말 안 먹어본 메뉴가 없을 정도로 입이 호강했던 시절이었다. 어릴 때 이런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경험해 본 덕에 '맛'을 잘 느끼고 평가할 줄 안다. 그래서인지 레시피를 보며 따라 하지 않아도 간장, 소금, 설탕, 물엿, 고춧가루 등을 적절하게 섞어 맛을 곧 잘 내는 편인 것 같다. 요리를 많이 해보지 않고도, 어느 정도 간을 맞출 수 있는 신비로운 재능을 주신 우리 엄마에게 무한 감사를 드린다.


그렇게 약 1시간 동안 김치볶음밥과 고구마스틱을 만들었고, 동생은 이 음식들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누군가에게 직접 요리를 해주고, 먹는 모습을 지켜볼 때의 뿌듯함이란!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어릴 적, 내가 무언가를 먹고 싶다고 말만 하면 엄마는 바로바로 그 음식을 해주셨다. 그때만 해도 엄마는 자녀들을 위해 당연히 요리를 해줘야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요리가 끝나고 뒷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면서 엄마의 마음을 다시 생각해본다. 음식을 하기 위해 메뉴를 생각하고, 장을 보고, 재료 손질을 하고, 요리를 하고, 또 뒷정리를 하는 모든 과정은 엄마의 몫이었다. 내가 하는 거라곤 맛있게 엄마가 한 음식을 먹는 일. 그리고 엄마는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다, 맛있었으면 나중에 또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설거지를 하셨다. 내가 혼자 살며 누군가에게 요리를 대접해 보니 이 모든 과정들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그리고 상대에 대한 큰 애정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임을 마음속 깊이 깨닫는다.


다음 주에 엄마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맛있는 요리를 대접해드려야겠다.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 설거지 까지, 늘 엄마가 했던 이 모든 귀찮고 수고스러운 것들을 이번엔 내가 직접 해드려야겠다.


혼자 살다 보니 안 하던 요리를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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