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에서 죽음까지 그려지는 집(죽음)

매산고택

by 풀솜

집은 한 사람이 태어나고 일하고 성장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그려지는 집이 있다. 경북 영천시 임고면에 위치한 매산고택이다.


매산고택은 매산 정중기(1686~1757)가 관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집이다. 매산고택은 넓은 대청마루의 안채와 근사한 누마루가 있는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ㄷ'자형이지만 별도의 건물로 보이는 사랑채를 더하여 'ㅁ'자형으로 보인다.


고택을 돌아보는 것은 단순하게 건물을 보는 것이 아니다. 고택에는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은 물론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집을 지은 사람의 철학이 담겨있다. 고택을 돌아보며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매산고택은 방문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기억에 남는 집이다. 그 이유는 넓은 대청마루도 아니고 대청에서 바라보이는 훌륭한 경치도 아니다. 매산고택의 기억이 나를 붙잡는 것은 사랑방 안쪽에 붙은 작은 골방이다. 이 방은 집안에 초상이 나면 장례를 치르는 동안 시신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한다. 부패를 방지하고 방 안의 공기를 서늘하게 하기 위해 벽면과 바닥을 황토와 보리까락(보리의 낱알 겉껍질에 붙은 수염)을 배합해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집을 돌아보며 집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람이 죽고 장례를 치르는 며칠 동안을 위해 시신을 두는 방이 있다니 부잣집이니까 가능했겠구나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산고택의 골방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집이라는 삶의 공간인데 죽음의 공간이 있다니...


고택에서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대청마루 옆 어느 방에서는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를 길러내기 위해 부엌에서 마당을 가로지르며 바쁘게 움직였을 젊은 부부와 고방열쇠를 쥐고 집안을 관리했을 부모님, 뒷방에서 노구를 추스르며 하루하루 보내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마지막에 생을 다하고 집을 나서기 전 누워있는 곳이 이 작은 골방이다.


매산 고택에서 인간의 일생이 한눈에 그려진다.


과거 우리는 죽음과 친밀했다. 생로병사의 모든 과정이 집 안에서 이루어졌다. 죽음도 가족들은 집 안에서 손수 처리했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시신이 집 안에 그대로 있었다. 시신을 안방 윗목에 두고 관 앞에 병풍을 치고 병풍 앞에서 절을 했던 기억이 있다. 마당에는 천막을 치고 천막 아래서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부엌에서는 음식을 만드느라 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초상집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 시절 죽음은 가족과 공동체에 기반을 둔 삶의 일부였다. 지금도 지구상에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직접 목격하고 나름의 문화에 따라 한 생명을 보내는 장례절차를 진행한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엄마와 함께 하셨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아버지를 뵈었다. 평소 살가운 딸은 아니었는데 그날을 뭔가 달랐다. 누워계신 아버지 손을 잡고 얼굴을 비비며 아버지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틀 후 아침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는 집 가까운 병원으로 가시는 동안 돌아가셨다. 내가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빈 병실 침대에 누워 계셨다. 아버지의 얼굴을 잠깐 봤다. 평온하게 눈을 감고 계셨다. 장례식장이 있는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가족들과 아버지 시신을 태운 버스가 앞서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출근시간이었다. 차가 밀렸다. 멀리 터널이 보였다. 터널 넘어 산 위로 아침 햇살이 나에게 다가오는 거 같았다. 아버지의 시신을 직접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운구차를 따라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의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병원에 가고 있으니까 의사 진료를 받으면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실 거 같았다.


사람들은 의학의 전문지식이 생명을 구해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늦출 수 있을 뿐이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삶의 끝자락에서 통증과 괴로움을 관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죽음을 늦추기 위해 생명 연장을 위해 새로 개발된 약을 먹고 피를 수혈받고 많은 돈을 들이지만 사람은 결국 죽는다. 이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과잉 의료행위의 부작용만이 있을 뿐이다. 빨리 죽음을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죽음에 대한 불안과 삶의 하찮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사람이 아프면 병원으로 가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장례절차를 밟는다. 이 모든 과정이 우리의 손을 벗어나 있다. 병원은 사람들로부터 죽음에 대한 친밀감을 앗아 갔다.


우리가 이렇게 죽음과 멀어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모든 동물이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삶에는 가까이 죽음이 있다. 19세기 이전에는 미국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죽음이 멀어지게 된 것은 에브라헴 링컨 사망 이후, 링컨 시신의 방부과정이 자세히 보도되고 미국의 장례산업이 획기적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장례산업의 성장은 현대적인 병원의 증가와 동시에 일어났다. 이때부터 사람이 아프게 되면 병원으로 가고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죽음의 과정을 대신하고 마지막에 땅 속에 묻힌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없어졌다.



부탄은 삶의 행복도가 높은 나라다. 죽음과 행복은 상관관계가 있다. 부탄에서는 하루에 세 번씩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국가 교육과정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부탄 사람들의 집단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부탄 사람들의 행복도가 높다고 한다.


"만일 내가 죽음을 나의 삶 속으로 끌어와 인정하고 정면으로 바라본다면, 죽음에 대한 불안과 삶의 하찮음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나는 자유롭게 나 자신이 될 것이다.

"라고 하이테커를 말했다.


죽음을 생각했던 사람은 죽음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전보다 더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산다.


매산고택의 골방은 죽음이 삶의 일부임을 알려준다. 솟을대문을 오가면서 의식하지 않지만 무의식 중에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곳에 누웠다 가신 조상들의 이야기가 일상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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