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의 높아진 위상, 이야기로 풀어내다

변소와 화장실

by 풀솜

한 달에 두세 번 손녀들의 유치원 하원을 도와준다. 아이들에게 갈 때 먹을 것을 준비하는 거보다 중요한 것은 이야깃거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야기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주제가 방귀나 똥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들이 서너 살이 지나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똥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에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똥얘기는 변소나 화장실의 이야기 똥과 관련된 귀신얘기까지 점점 확장된다.


할머니가 어렸을 때는 집 안에 화장실이 없었어. 화장실 대신 밖에 변소가 있었어. 변소에 가려면 신발을 신고 밖으로 가야 했어. 낮에는 괜찮은데 밤에 변소 가는 것이 정말 싫었어. 변소는 구석지고 으슥한데 있었거든.
변소는 아래가 뚫려있어. 쪼그리고 앉아 아래를 보면 정말 무서웠어. 아주 깊어서 아래가 보이지 않았어. 냄새도 심했어.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대강 볼일만 보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와야 했어.
사람들은 변소에 귀신이 산다고 했어. 어느 날 똥을 다 누었는데 휴지가 없었어. 휴지가 어디 있나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변소 아래가 울리면서 이런 소리가 들렸어.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너무 놀라 바지를 올리지도 못하고 뛰쳐나왔어.

어느 추운 겨울날 밤 한 아이가 똥이 마려웠어. 참다 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 혼자 밖에 있는 변소에 가는 것이 너무 춥고 무서웠다. 형에게 같이 가자고 부탁했다. 동생이 똥을 누는 동안 형은 변소 밖에서 기다렸어.
'형 춥지?' 똥을 누면서 동생이 말했어.
'괜찮아.' 밖에서 형이 대답했어.
'조금만 기다려. 거의 다 눴어.'
동생은 형이 밖에 있나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이나 물었어.
동생이 볼일을 다 보고 밖으로 나왔는데 밖에 형은 없었어. 대신 저 멀리 늑대인지 여우인지 눈알이 반짝였어.

동생은 너무 놀라 걸음아 날 살려라 뛰어 들어왔어. 형은 어디 갔지? 집 안에 형이 있었을 거 같아? 없었을 거 같아?


나는 이야기에 도취되어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마치 연기를 하듯 동작까지 실감 나게 했다. 어디까지 주워들은 이야기인지 어디까지 내가 꾸민 이야기인지 나도 알지 못한다. 다만 손녀들이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보다 똥에 관련된 이야기를 좋아한다.




학창 시절 친구가 사촌언니가 결혼한다고 자랑했다. 그 시절 결혼은 꿈이었고 이상이었고 드라마였다. 친구는 그 결혼이 집안에서 얼마나 큰일인지 사촌언니가 얼마나 예쁜지 형부 될 사람은 얼마나 멋진지 결혼할 시댁이 얼마나 부자인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친구의 자랑 가운데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있다. 사촌언니가 시집갈 시댁은 너무 부자여서 변소가 집 안에 있다고 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변소를 화장실로 불렀는지 우리 집은 언제부터 건물 안에 화장실이 있었는지 생각해 봤다. 도시 한옥에 살았던 때는 분명 밖에 변소가 있었다. 양옥집으로 이사 갔을 때 세면과 목욕 빨래를 할 수 있는 다용도실을 지나 화장실 문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분명 화장실이 건물과 붙어 있었다. 화장실이 건물 안에 있었지만 아직 푸세식이었다. 그 시절 분명 대문 옆에도 변소가 있었다. 하지만 밖의 변소를 이용했던 기억은 없다. 양옥집이었지만 아직 밖의 변소를 포기하지 못했던 거 같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변소는 건물 안으로 들어왔고 우리는 변소를 화장실이라 부르고 있었다.


변소가 화장실이 되기 위해서는 물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즉 수도시설이 필수다. 변소와 화장실의 차이는 세면기능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화장실은 말 그대로 화장하는 데 필요한 설비를 갖추어 놓은 방이다. 변소라는 용어가 화장실로 바뀌었지만 화장하는데 필요한 설비까지는 갖추지 못했다.


세면과 수세식 변기가 함께 있는 화장실 문화가 일반화된 것은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형태의 영향이 컸다. 70년대 이미 서울에서는 아파트가 보급되었다. 아파트와 주택의 가장 큰 차이는 부엌과 화장실이다. 그 가운데서도 화장실은 정말 획기적이었고 문화충격에 가까웠다.


나는 70년대 서울의 아파트에 살았다. 젊은 도시민들이야 화장실문화가 별일 아니었겠지만 시골에서 올라오신 친척 어르신들이 보기에 화장실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분들은 젊잖은 체면에 화장실 이용방법을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시골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대학에 입학하고 서울의 모든 것이 신기했다. 어느 날 친구가 호텔 화장실이 얼마나 좋은지 설명하면서 한번 가보자고 했다. 가장 마음을 혹하게 하는 것은 화장실 휴지가 공짜라는 것이다. 우리는 호텔 화장실을 보기 위해 일부러 시청역에서 내렸다. 호텔에 들어가 화장실을 이용하고 공짜 휴지를 한 움큼 가져왔던 기억이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 시카고 여행 중 트럼프타워의 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있다. 미국의 유명한 빌딩 화장실은 작은 아파트 거실정도의 넓은 공간이었다. 인테리어는 사방이 검은색이었고 검은색과 대비되는 금빛 수조는 너무나 강렬했다.


집의 규모는 화장실의 개수와 상관관계가 있다. 아파트에서 한 개만 있던 화장실은 최소 두 개는 있어야 한다는 문화가 일반적이다. 화장실은 위치도 점점 중요한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거실의 화장실은 기본이고 안방 침실의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안방 화장실은 드레스룸 파우더룸과 함께 놓이고 화장을 하거나 몸을 단장하는데 필요한 물품과 시설을 갖춘 진정 화장실이 되었다. 화장실 문화는 점점 편리하고 화려해지고 있다. 가구를 명품으로 장식하고 유럽의 어느 왕가처럼 꾸민 화장실을 자랑하기도 한다.




변소든 화장실이든 사람들이 사는데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용해야 하는 공간이 편리하고 친숙한 공간으로 발전했다. 우리 손녀들은 변소를 경험하지 못했다. 변소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경험을 말하는데 우리 손녀들은 허구로 받아들인다. 아이들에게 해주는 방귀나 똥이나 더 나아가 귀신이야기가 불과 50여 년 전 우리가 사용했던 변소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것에 놀랍다. 지구상에는 아직도 제대로 된 화장실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불편한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현실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를 이야기하는 동물로 규정했다. '인간의 발전은 허구를 만들어내는 일로 시작되었다. 인간은 신과 국가와 기업에 대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의 근간이자 삶에 의미를 주는 원인 된다. 우리가 인류 역사를 이해하길 원한다면 허구적인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말한 이야기들이 다른 이야기로 발전해서 그들의 미래가 될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손녀들이 새로운 허구를 만들어낼 때 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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