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과 번뇌가 사라지는 곳

해우소(解憂所)

by 풀솜

사람이 살면서 먹고 먹은 것을 소화시키고 배설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개인의 삶에서 배변활동이 원활하지 않을 때 그보다 더한 근심이 있을까? 우리의 생활공간에서 변소는 부엌만큼 중요한 공간이다. 해우소(解憂所)는 사찰에서 변소를 이르는 말로 굳이 해석하면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생리적으로 물리적으로 당연히 이해가 가지만 근심과 번뇌가 사라지는 공간이라니 얼마나 철학적인가? 사람에게 있어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면을 헤아려 지은 명칭 같아 어느 공간보다 이해가 간다.


며칠 전 양주 회암사에 다녀왔다. 한 시대가 저문 폐사지의 쓸쓸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숭유억불정책으로 폐사되어 오랜 시간 방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단석과 건물의 초석이 너무 잘 남아 있었다. 기단과 건물의 기초석만으로도 조선 초기 왕실사찰의 위상이 느껴졌다. 사료적 가치가 풍부한 양주 회암사는 60년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최근까지 복원 관리 되고 있다. 인근에 박물관 설립으로 활성화되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 역사적 장소로 자리하고 있다.


폐사지의 사찰이 얼마나 컸던 사찰이었나 추정할 때 공양간의 규모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규모는 곧 공양간의 규모에 반영된다. 공양간에는 화덕 아궁이의 유구를 발굴하여 그 개수를 파악하던지 그릇으로 사용되는 대형 목기나 석조물이 발굴되면 절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큰 사찰은 공양간만 컸을까? 큰 사찰은 해우소(解憂所)라 불리는 변소도 꽤 컸을 것이다.


양주 회암사는 발굴조사 결과 변소로 추정되는 지역이 있었다. 발굴과정에서 토양분석을 하게 되는데 기생충알이 발견된 곳은 변소가 있던 지역으로 추정하게 된다. 회암사는 정면에서 바라봐서 왼쪽에 돌곽으로 쌓은 커다란 웅덩이를 회암사의 해우소로 추정하고 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규모가 대단했다.


해우소는 깊게 웅덩이를 파고 석축을 쌓았다. 석축 위에 나무로 발판을 만들면 변소의 바닥이 된다.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여러 칸으로 나뉘어 벽을 만든다. 그러면 여러 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변소 건물이 된다. 양주 회암사는 발굴된 유구로 보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우소로 추정되는 유구




지속가능한 순환 시스템 해우소(解憂所)


볼일을 본 배설물이 웅덩이에 모이게 된다. 배설물은 처음에 상당한 독성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독성은 사라지고 내용물은 묽어진다. 독성이 사라지면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는 훌륭한 유기질 비료이기 때문에 밭에 뿌리면 식물의 영양분이 된다. 유기질 비료에서 양분을 섭취해서 무럭무럭 자란 식물을 우리가 다시 먹게 된다. 해우소는 자연의 순환을 보여주는 훌륭한 시스템이다.


회암사와 같이 큰 사찰에서는 웅덩이를 만들지만 보통 사찰에서는 보통 경사면을 이용한다. 경사면에 기둥을 대고 경사면 위쪽에 바닥을 만든다. 바닥에 다시 기둥을 세우고 벽을 만들어 칸을 나누고 지붕을 올리면 경사면의 높은 쪽이 해우소다. 해우소 문을 통해 들어가면 공간이 몇 개로 분리되어 한번에 여러 명이 사용할 수 있는 변소가 된다. 배설물은 경사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아래로 떨어진 배설물은 웅덩이에서 오랜 시간 지나면서 독성은 사라지고 식물의 성장에 좋은 비료가 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정화조의 시스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세식 변기에서 나온 물이 정화조로 모아진다. 내용물은 정화조 안에서 머무르며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을 거쳐 나온 내용물은 물과 비료로 분리되어 밖으로 내보내게 된다. 도시에서는 공동주택에서 혹은 시에서 시스템화되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볼 수 없다. 하지만 해우소에서는 순환시스템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사찰에는 거의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해우소가 남아 있는 사찰이 있다. 직접 사용해 보면 발판이 엉성해서 무섭다. 비가 오거나 추운 날씨에는 이용하기 힘들다. 어느 시대나 편리를 앞세운 새로운 문물이 전에 있던 문물을 밀어낸다.


이번에 회암사에서 본 해우소 유구가 반가웠다.


해우소는 친환경 순환시스템을 갖춘 당시 최첨단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기피하는 공간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화장실을 자연의 순환을 존중하는 친환경 시스템으로 만들었으며 거기에 철학적 명칭을 부여했다.


근심과 번뇌가 사라지는 공간 해우소(解憂所)



PS. 이 글에 필요에 따라 변소 화장실 해우소를 혼용해서 사용했다. 다음 편에 변소가 화장실이 되는 과정에 관한 글을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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