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탤미 Oct 09. 2020

심마니가 되고 싶은 걸까.

지난 3월 회사 친구들이 책을 선물해 줬다. 엄밀히 말해 내가 갖고 싶다고 한걸 사준 것인데, 책 배송을 사무실로 시켜 바로 언박싱 할 수 있었다. 박스를 풀자마자 보물책을 펼치듯 첫 장을 펼친 나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런 나를 신기한 듯 우스꽝 스러운 듯 옆자리 주임님이 어이없는 웃음소리로 한마디 하신다.


"야 탤미 너 그 책 뭐야? 풉, 뭐 심마니라도 될 거야?"


그녀가 이 책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책은 식물 박사라도 될 요량으로 읽게 된  <우리 몸에 좋은 30가지 약용식물 활용법>이란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나라 산 곳곳에 있는 30가지 식물들의 약학적 효능에 대해 정리한 책이다. 내가 업무 중에 엄청난 기운을 내뿜으며 이 책을 뒤적거리고 포스트잇으로 체킹하고 있으니 특이해서 물어보셨음에 틀림없다. 물론 생각해보면 이 책을 선택한 독자들은 나같이 젊은(?) 30대가 아니라 삶의 어느 정도의 연륜이 있는, 그리하여 세상 자연의 이치와 풍수지리학적 고증을 파악한 나이 지긋한 어른일 터였다.




하지만 내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책을 고른 이유는 뭐.. 내 건강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위 장 문제 때문에 이약 저 약을 먹어가며 호전되어 가고 있었는데 그중 3번째 지어먹는 한약이 조금씩 효능을 보이기 시작할 때 즈음이었다. 아무래도 한약을 먹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약값이 보통이 아니기에 '직접 내가 만들어 먹을 순 없을까'란 깜찍한 생각으로 읽게 된 것이다.


실제로 나는 약초 책뿐만 아니라 다른 건강 서적도 여럿 읽었다. 염증에 관한 책부터 식품생명 학자가 전하는 사람들이 오해했던 식품에 대한 바른 정보 등. 그리고 한때 아주 잠깐 식품영양학과에 들어가 다시 공부를 해볼까도 생각했다.

공부라는 게 꼭 전공하지 않아도 삶의 큰 전환점에서 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래서 당시 나는 허영 가득한 꿈을 꾸곤 했던 것이다. 보통 아픈 사람들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서 책도 내고 강연도 하는 경우들이 더러 있지 않나. 가령 어렸을 적부터 몸이 안 좋은 사람이 어떤 식품을 먹고 너무 좋아 자신이 창업을 하게 된다거나. 식품영양학과를 전공한 후 전혀 다른 일을 하다가 가족의 몸이 안 좋아지면서 다시 식품에 대해 공부해 전문가가 되어 강연도 하고 책도 낸다던지 하는 성공 스토리 말이다. 건강치 못하고 진척 없는 현실에서는 꿈꾸는 미래가 훨씬 달콤한 법이니까.


그래서 당시 한약학과나 식품영양학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공부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란 놀랍도록 견고한 것이었다.

매달 월급 받는 안정적인 직장생활은 어떻게 할 것이며 내가 이과적 머리가 전혀 없는데 화학이니 생명과학이니 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 스스로에 대한 불신감. 중요한 건 내가 진짜 학교에 편입이나 입학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체력이 될 것인가. 안되자고 보자면 수만 가지의 이유들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이런 고민은 쉽게 꺼지지 않았고, 여러 지인들에게 이런저런 의견을 물어봤다. 친한 친구는 멋진 꿈이라며 도전해 보라는 쪽이었고, 혹자는 쉽지 않은 결정 같다 진짜 확실한 목표가 아니면 더 고민해 보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은 조언은 꽤나 명쾌하고 단순했다. 


 "일단 네가 진짜로 공부하고 싶다면 1년 동안 혼자 독학으로 해봐. 솔직히 진짜 하고 싶으면 그런 정규 교육 없이도 할 수 있거든? 그래서 1년 뒤에도 제대로 할 마음이 든다면 그때 해도 늦지 않아."


이 조언을 해주는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마치 내가 질문을 할 것이라는 걸 알았던 사람처럼. 그의 말대로 정말 하고 싶은 공부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면 지금 당장 해보면 알 것이다. 변덕쟁이인 내가 시간을 두고 질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공부라면 그때 해도 늦지 않은 거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소화되지 못한 체증이 내려가듯 생각의 정리도 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 나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진귀한 약초 책이니 건강식품이니 하는 모든 책들은 철 지나고 유행지나 입지 않은 옷처럼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있다. 그의 조언 덕택에 나는 새로 공부할 만큼 그 분야에 집착도 열망도 부족했던 것을 알게 됐다.

결국 심마니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내가 했던 모든 공부가 결코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분명 앞으로 나의 삶에 있어서 건강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는 계속될 테니까. 그래서 난 여전히 고이고이 책꽂이에 꽂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볼 요량이다. 혹시 아나? 정말 내가 공부하고 싶은 때에 다시 식품의 전문가로 도전해 볼지?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니까.



작가의 이전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유진우를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