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초목의 뿌리.
사물의 본질이나 본바탕.
자라 온 환경이나 혈통.
부사
처음부터 애당초.
‘근본’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본 결과다. 30년 넘게 살면서 근본이라는 단어를 부사로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명사의 1번 뜻으로 사용한 적 또한 마찬가지로 전무하다. 아무래도 ‘뿌리’를 두고 굳이 어려운 한자어를 쓸 필요는 없었으니까. 명사 중 두 번째 뜻으로 근본을 사용할 때에는 대부분 뒤에 ‘적’을 붙여 ‘근본적’이라고 쓸 듯하다. 내게도 ‘근본 원인’보다는 ‘근본적 원인’이라고 하는 게 더 익숙하게 느껴진다. 접미사 ‘-적’은 되도록 사용을 자제하라고들 하지만 이미 눈에 익고 입에 익어버려서 쉽게 버릴 수가 없다.
이제 남은 건 세 번째 뜻이다. “자라 온 환경이나 혈통”. 이 정의에는 어떤 인물의 출신 성분이나 받아 온 교육을 비롯해 여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간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함축되어 있다. 요즘 네티즌 사이에서 통용되는 근본의 의미와 가장 비슷해 보이는 정의이기도 하다.
네티즌들이 일컫는 근본의 시작은 프로 스포츠였다. 스포츠 구단의 근본은 얼마나 오래전 창설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강호로 군림했고 얼마나 많은 우승컵을 들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명문 구단을 가리켜 근본이 있다고 하는 반면, 비교적 최근에 막대한 자본이 유입되면서 강팀으로 급부상한 구단은 근본이 없다며 조롱을 당한다. 스포츠 선수 개인으로 보자면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뒤 고향을 연고지로 둔 구단에 입단하는 경우, 혹은 구단에서 운영하는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거쳐 1군까지 올라오는 경우 등을 두고 근본이 있다고 평할 수 있겠다.
요즘은 스포츠를 넘어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근본을 논한다. 대상에 따라 뉘앙스에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근본이 가리키는 큰 뜻은 다르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주식 시장에서 우량주에는 근본이 있지만 잡주에는 근본이 없다. 맥도널드 햄버거에도 빅맥처럼 스테디셀러로 불릴 만한 메뉴에는 근본이 있지만 정체불명의 신메뉴에는 근본이 없다. 아이패드나 맥북을 봐도 실버나 스페이스 그레이 색상에는 근본이 있지만 핑크나 퍼플, 스타라이트 등의 색상에는 근본이 없다(모두 임의로 든 예시일 뿐 내 의견이 이렇다는 건 아니다).
사실 나는 근본 없는 개발자에 가깝다. 어릴 때 체계적으로 프로그래밍을 교육받은 경험도 없는 데다가 대학교 전공 역시 컴퓨터 과학과는 거리가 먼 기계 공학이었다. 2학년을 마칠 때까지만 해도 프로그래밍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군 복학 후에야 뒤늦게 프로그래밍과 인공지능에 흥미를 가지고 부랴부랴 MOOC, 그리고 옆 동네 전기과와 컴퓨터과 전공 수업을 들으며 조금이나마 기초를 닦았다. 어린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을 접했거나 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 커리큘럼을 충실히 따른 전공자들과는 출발선이 달랐던 셈이다.
대학원에 진학할 때에는 소프트웨어를 많이 다루는 연구실에 들어갔다. 문제는 대학원 생활이 기대와 달리 나와 잘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프로그래밍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방황하느라 허투루 보낸 시간이 적잖았다. 전공을 살릴 것인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분야로 진로를 틀어야 할지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쯤 지도교수님이 창업한 스타트업에 자연스럽게(운 좋게) 멤버로 합류했다. 원래는 지도교수님과 연구실 선배 몇몇을 중심으로 굴러가던 회사였는데 팁스TIPS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자금에 여유가 생겼고 내게도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그동안의 고민은 잊고 일단 도전해 보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같은 연구실 출신이자 회사의 초기 멤버로 합류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채용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개발자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강도 높은 채용 절차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나도 다른 기업에 지원하려 했다면 따로 컴퓨터 과학 지식이나 코딩 테스트를 공부하고 개인적인 프로젝트도 진행해서 그 과정과 결과를 정리해야 했을 텐데 그마저도 없었다는 뜻이다.
이토록 근본 없는 내가 엉겁결에 ‘낙하산' 개발자가 되어 프로그래밍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나 자신을 개발자로 부르기 시작한 시점에 이미 나보다 수년을 더 앞서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을 것이다.
그러다 겁 없이 와인바를 여는 바람에 근본 문제를 하나 더 키우고 말았다. 과연 내가 와인바에서 손님 응대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인가 자문해보면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전문적인 소믈리에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가? 아니라면 오랜 기간 와인을 즐기면서 기본적인 지식을 탄탄하게 쌓아 놓았는가? 이마저 아니라면 관련 업계에서 실무를 경험한 적이 있어 와인 관리부터 서빙까지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가? 책상 앞에만 붙어살던 공대생이 맥주를 주로 파는 펍 몇 군데에서 홀 서빙 일을 조금 경험해 본 게 전부였으니 해당 사항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동안 손님으로 방문한 여러 와인바에서 특별히 전문적인 서빙을 받은 기억이 없었기에 나도 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응대를 하면 되겠지 싶었다. 애당초 내가 와인 서빙의 전문성을 제대로 판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와인 내공을 깊게 다진 사람이 내 눈높이에 맞추어줬을지도 모르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얼마나 안이한 발상이었는지는 단 며칠만 영업을 해 봐도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식견이 제법 높은 와인 애호가를 마주할 때면 내 부족한 근본이 티가 날까 두려워 어디로든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직원으로 일할 때에는 사장이라는 뒷배가 있어 조금은 부담을 덜고 일을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온전히 아내와 나의 가게에서 손님을 맞고 있으니 잘하든 못하든 모두 우리의 책임이다. 사실상 배수의 진을 치고 일을 하는 셈이다. 거참, 가게 이름에 ‘근본 없음'이라는 의미까지 담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큰일이다.
그럼에도 힘을 내서 뻔뻔하게 두 가지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건 몇몇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 덕분이었다. 가게에서 취급하는 와인은 생산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아볼 때가 많은데 개중에 배경이 흥미로운 이들이 눈에 띄었다.
예컨대 프랑스 알자스의 람베르 스필만은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사회복지사였지만 열악한 업무 환경에 환멸을 느끼고 와인 양조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알자스에서는 집안 대대로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는 별다른 연고 없이도 스스로 기회를 쟁취했고 결국 주목받는 와인 메이커가 되었다.
헝가리의 이스트반 벤쩨는 수학을 전공했으며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직접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IT 업무에 흥미를 잃었고 잠시 이탈리아에서 지내는 동안 와인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다시 부다페스트로 돌아왔을 때에는 IT 콘퍼런스보다 와인 시음회를 더 즐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국 어릴 적 할머니를 도와 밭을 가꾸던 기억을 떠올리며 헝가리에서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동유럽의 젊은 내추럴 와인 생산자 중 가장 각광받는 존재라고 한다.
이렇듯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다가 느닷없이 와인 양조에 입문하여 놀라운 와인을 만드는 와인 메이커들이 있다. 물론 전통 있는 와이너리 집안에서 어린 시절부터 양조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와인 메이커도 훌륭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근본 콤플렉스를 안은 채 살아온 사람이라 그런지 람베르 스필만이나 이스트반 벤쩨 같은 생산자의 와인에 더 손이 간다. 심지어 정말로 맛있기까지 하다. 이들이 맛 좋은 와인을 내놓았듯 나도 얼마든지 좋은 코드를 짜고 손님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사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싶다.
생각해 보니 나만큼이나 ‘근본 없는’ 사람들이 이미 가까이에 있었다. 당장 회사에서 동료 개발자들만 봐도 전공과 배경이 제각각이다. 체육을 전공한 개발자가 있을 정도다. 영문학을 전공한 개발자 손님 앞에서 그 사실도 모른 채 “저 근본 없는 개발자입니다.”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물리학을 전공한 어떤 손님은 손재주 좋은 할머니의 명맥을 이어받아 지금은 직접 가방을 만들어 판다. 애초에 근본 없기로는 아내가 최고였다. 공대를 나와서 출판 편집자가 되더니 이제는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와인바에서 빵을 굽는다(이 빵 맛이 또 기막히다).
최근 스타트업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영상에서 본 한 시니어 개발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개발자를 채용할 때 학력이나 전공이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며 더 중요한 건 최근 5년의 이력이라고 한다. 근본이 부족해도 오히려 이를 극복할 정도로 부지런히 역량을 쌓아왔다면 그다지 문제 될 게 없다는 뜻이겠다. 람베르 스필만도, 이스트반 벤쩨도, ‘없음’의 김 사장도 노력깨나 했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역량이 단단히 다져지면 그게 바로 새로운 근본이 될 것이다. 결국 결실을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말이 쉽지 실천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