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다시 찾은 공항은 실망스럽게도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인천국제공항 동측 주차장은 장기 주차된 차량으로 빼곡했고, 예전처럼 주차 타워의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한참을 뱅뱅 돌아야 했다. 출국장 안은 평일 아침에도 열려 있는 체크인 카운터마다 북적였다. 코로나는 그저 나의 사적인 일이었던 것처럼 공항에서의 모든 장면은 익숙함과 동시에 낯설었다. 코로나로 인한 타격은 전혀 받아본 적 없다는 듯 공항은 말끔했다. 예상 밖에 공항 분위기에 당황한 건 나뿐. 마침내 여행의 모든 것이 전처럼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오랫동안 나의 버킷 리스트에 있던 태국 섬 여행을 마침내 이루게 된 건, 코로나로 인해 처음 겪어본 길고 긴 여행 공백 덕분이다. 지난 7년 간 쉼 없이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여행이 지겹다는 사치를 부려왔던 터라, 불청객 같았던 코로나 공백이 없었다면 나는 이번 여행도 여러모로 비효율이라고 미뤄뒀을지 모른다. 나의 최종 목적지는 고작 태국이면서 비행기를 두 번(귀찮음 두 배인 국제선-국내선 경유)이나 갈아타야 하고, 비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배까지 운에 맡겨 잡아 타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계기로 고도화된 수고로움이야말로 여행의 진정한 즐거움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떠날 수 있다면, 지금이 적기였다. 스스로를 괴롭혀온 현실에서 되도록이면 멀리멀리 나를 떠나보내는 게 유리할 테니.
엄격했던 격리의 시대가 끝나니 다시 자발적 고립이 필요해졌다. 태국 끄라비(Krabi)에서 롱테일 보트를 타고 더 깊숙한 섬 라일레이(Railay)로 가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체 어디로 여행을 간다는 건지 웬만해선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도 내 마음에 들었다. 자발적 고립과 동시에 내가 원한 건 자유로움이었다. 어딘가 히피스러운 분위기도 흐르지만 자연의 숭고함을 아는 사람만이 모여 있는 듯한 섬. 그곳에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사회적 위치와 속도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나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다. 나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다짐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하고 한껏 자유로워질 것을.
라일레이 섬에서의 자유로움은 몸에 겹겹이 덮는 옷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시작한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에서는 몸에 걸친 모든 게 거추장스럽고 답답해 보인다는 걸 체득하게 된다. 모두가 최소한의 복장으로 밤낮없이 해변에 모여들고, 주저 없이 물에 뛰어든다. 내리쬐는 태양 빛을 온전히 맨 몸으로 받아내는 외국인들과 거친 암벽에 오르내리며 희열을 느끼는 맨 발의 현지인들. 라일레이는 동양인보다 서양 여행객이 월등히 많이 찾다 보니, 종종 사진을 남기다 보면 이탈리아 남부의 해변 같은 풍경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곳은 철저히 관광객을 상대하는 섬이기 때문에 태국의 낮은 물가는 기대하기 힘들다. 1박에 100만 원이 넘는 고급 리조트는 만실이 예삿일이고, 25만 원이 넘는 코스 요리를 내는 파인 레스토랑 또한 기회를 넘보기 힘들기 정도로 예약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섬에서는 자본의 권력보다 자연의 위대한 힘이 더 세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은 값비싼 숙식이 아닌 오렌지와 바이올렛 빛으로 추상화를 그리는 듯한 아름다운 석양과 자연의 빚어낸 기암절벽, 푸른빛의 파도를 만드는 바다에 훨씬 더 큰 감흥을 얻고 가니까.
이곳에 4일간 머물며 나도 자연스럽게 하나씩 서서히 벗어낼 수 있었다. 비단 몸에 꼭 맞는 래시가드뿐만 아니라, 나를 옥좨오던 타인의 시선과 판단, '정상성'에 끼워 맞추려 안간힘을 쓰면서도 스스로를 잃어버리까 전전긍긍했던 이중적 두려움, 스스로를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는 부끄러움. 낯선 원시의 풍경 안에서 맨 몸으로 부딪히면서 비로소 나를 마주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그것을 봉인당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자유. 삶이 여행이라면, 퇴사로 마무리 지은 2022년 여정에서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로움을 조금 맛본 것 같다. 그리고 이제야 내 앞에 놓인 인생 숙제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