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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Oct 13. 2022

도토리묵 한 모에는  몇 알의 도토리가 필요할까

도토리묵이 먹고 싶다.

도토리묵이 벌써 언제부터인가 수년 전부터 먹고 싶었다.

맛없는 것 말고 정말 맛있는 도토리묵이 먹고 싶다. 맛없는 건 먹기 싫다.

내 기준에서의 맛있는 도토리묵이란

적당히 단단하면서도 적당히 호들 호들 하늘하늘해야 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지만 번질대고 미끄덩하지 않아야 하며

젓가락으로 집어 무사히 내 입으로 올 수 있어야 하지만 뭐랄까 나를 조마조마하게, 간질간질한 떨림을 같이 줄 수 있는 도토리묵.

덧붙여 도토리 본연의 맛- 떪은 것 같으면서도 쌉싸름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건강한 맛- 이 나는 도토리묵. 바로 그것이 내가 찾는 맛있는 도토리묵이다.

맛있는 도토리묵을 가질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을 가지고 정말 맛있는 도토리묵무침, 도토리묵밥 등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라며 한탄했다.

내가 맛있는 도토리묵무침을 먹지 못하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저런 도토리묵 자체를 손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언제나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보면 사실, 뭐 살면서 저렇게 맛있는 도토리묵은 한국에 살 때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도토리묵은 아니었을 거다.

저~기 어디 강원도 어디 국도변에 위치한 이름도 빛도 없는 재야에 숨겨진 고수가 운영하는 식당이라든지 혹은 하루에 딱 50 그릇만 파는 묵집이라든지.

그런 식당이 분명 한국에는 존재하겠지. 존재해야만 한다.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가을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여름엔 모기가 무서워서 마당에 못 나간다.

그러다가 보았다.

오!! 이거 도토리야?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도토리 찾기


그랬다. 새로 이사한 우리 집은 Oak tree 가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먹을 수 있나?

이거 먹을 수 있나? 이거 먹어도 되는 도토린가? 이거 혹시 먹으면 죽는 거 아닌가? 먹는 도토리 못 먹는 도토리가 따로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독이 있는 도토리 아닐까? 식용이 아닌 도토리일지도 몰라 등등의 아무 말을 흥분하여 떠들고 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남편이 손가락을 들어 '저길 좀 봐'라고 가리킨다.

다람쥐 한 쌍이 가을볕에 나란히 앉아 앞니로 도토리 껍질을 까고 있었다.

'쟤네들도 먹잖아. 안 죽어.'

음. 그렇구먼. 남편의 말에 금방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내 머리 위로 도토리가 또록~ 떨어졌다. 갑자기 맛있는 도토리묵에 대한 열망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용솟음쳤다.

곧바로 도토리를 주워 도토리묵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도토리묵 만들기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 지 35분 만에 포기했다.

나는 은근과 끈기가 부족하고 포기가 빠른 자임이 분명했다.

도토리를 주워 그걸 가지고 묵을 만드는 과정은 너무 복잡했다.

나는 그저 마당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를 열심히 주워 씻고 대충 말려 이리저리 휘리릭 갈아 푹푹 끓이면 묵이 되는 줄 알았는데 도토리묵이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도토리에서 묵까지 오는 공정 단계가 이만저만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절망하고 포기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이미 오래전 서울에서 은퇴하시고 귀농생활을 하고 계신 자급자족 전문가에게 나의 도토리묵에 대한 계획을 의논했는데 자초지종을 들으신 그분의 첫마디는


어머, 얘, 나도 도토리묵은 안 해봤어.
그게 보통일이 아니더라구. 그냥 묵가루를 사

아.. 세상엔 의욕과 아이디어만으로는 성사가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쓸쓸한 도토리



맛있는 도토리묵은 한국에 갔을 때 먹기로 해. 이렇게 다짐하고 도토리묵 만들기는 포기하려고 했는데.

매일매일

마당에 나갈 때마다

도토리가 내 머리를 때린다. 또록~ '아야!' 도토리 크기도 꽤 커서 정통으로 맞으면 아프다.

도토리가 헤헤헤~ 하면서 메롱메롱하는  같이 느껴졌다. 다시금 맛있는 도토리묵에 대한 열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신에게는 도토리 25알이 있사옵니다



오늘부터 도토리 딱 100알을 주워서

그걸로 얼마만큼의 도토리묵을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우선 나에게는 25알의 도토리가 있다.

75알을 더 모아서 꼭 시도해 볼 것이다. 

이 허망한 노력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뭐 또 혹시 모르잖나?

내가 그렇게도 열망하고 바라던 '맛있는 도토리묵' 이 만들어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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