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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Apr 01. 2024

찍기 싫으면

찍지 마




나는 이번에 선거를 하지 않는다.

선거를 하러 가야 하는 동네(뉴욕 아니면 필라델피아)에서 너무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와 있어서 사전 신청도 하지 않았다. 마음은 개운치 않다.

지난번 대선 때는 선거를 마치고 나오는데 투표소에 출장 나와있던 Y*N에서 인터뷰를 해줄 수 있냐고 졸졸 따라와서 '아니오 아니요, 다른 분에게 요청하세요. 저는 안 할래요.' 도망치고 그랬는데.

이번 선거는 내가 참여 안 해도 내가 예상하는 대로 흘러갈 것 같기는 하다. 그냥 느낌에.

하지만 내가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과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에는 좀 차이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하자니 지금 여기서 이러고 앉았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투표를 하러 가서 나의 미미하고 초라하고 보잘것없고 보푸라기처럼 하찮은 한 표를 고이 던지고 왔어야 했는데...... 후회도 된다.




오늘은 부활절이었다.

나는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중부 어느 조그마한 시골 동네 버거킹에 앉아서 맛도 없는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고 뻣뻣한 와퍼를 억지로 먹고 있었다. 집에도 못 가는 이스터라니. 흑흑.

부활절인데 나는 교회도 못 갔다. 그러다가 이 사진을 보았다.


어정쩡하고 민망한 저 손들


멋쩍고 민망하고 비굴하고 어정쩡한 저 추악한 손바닥들 위에 하늘의 진노가 임하기를.




찍고 싶은 쪽에 꼭 찍자. 기필코 찍어 주자.

찍기 싫으면 심호흡을 깊게 하고 한번 생각을 더 해보고 그래도 찍기 싫으면. 뭐. 어쩌겠나.

굳이 투표소에 가서 아무나 찍지 말자. 절대 아무나는 찍지 말자.

아무나 찍느니 그냥 집에 있자.

(선거도 하러 못 가는 주제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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