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이 적어지니 덜 먹는 것도, 굶는 것도 소용없었다.
해가 바뀌면서 친구가 하는 공방 출입도 안 하고 TV 프로그램을 외우는 귀재가 돼 버렸다.
내가 리모컨을 만지기 시작한 건 불과 2년도 안 됐다. 누군가 틀어주는 프로만 보다가 말곤 했는데 지금은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엑스레이 찍듯 리모컨을 눌러대는 게 하루 일이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니 몸이 몸을 파고들어 늪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4월에 있을 큰 집 조카의 청첩장을 받았다. 한복은 작년 가을에 맞춘 거였고 내 몸은 몇 년을 내뺀 것처럼 한복 치수를 벗어나 있었다. 설 연휴를 보내고 하루 계획표에 야심 차게 운동 시간을 넣었지만, 온갖 핑계로 ‘내일’만 반복했다.
오늘도 오전 일을 마치고 몸과 맘이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휴대폰이 울리고 딸내미와 짧지 않은 통화를 하면서 뭉그적 주저앉는 거로 굳히려고 했다.
“엄마 뭐 하고 있었어?”
“음, 지금 산책하러 좀 나갈까 했는데 이것저것 좀 하고 그냥 낼부터 할까 봐”
내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딸내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응 아냐! 지금 나가서 계단이라도 오르락내리락하고 와. 그러고 전화해!”
단호한 그 말에 두 말도 못 하고 꺼내놓은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공기 질은 좋지 않았지만, 봄날처럼 따뜻했다. 눌러쓴 모자에 마스크가 이렇게 편안할 줄 몰랐다. 아는 사람을 만나도 모른 척하고 갈 수 있는 차림이 퍽이나 맘에 들었다.
이어폰을 끼고 뒷산 오르막에 올랐다. 시작인데 숨이 가빴다. 느리게 걸으며 이전에 걸었던 길을 찾았다. 계단 옆으로 정비되지 않은 샛길이 있었지만 혼자 걷기 겁이나 계단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가파른 길에 놓인 계단은 미끄럼 방지만 될 뿐 몹시 가팔랐다.
가다 쉬다 하며 낮은 정상까지 다다르니 숨은 가빴지만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흡을 정리하고 내리막으로 향했다. 마른 흙길이라 미끄러질까 조심스러웠지만, 첫 번째 운동기구가 있는 곳까지는 순조로웠다. 산 아래로 보이는 고층 아파트와 수많은 십자가를 보면서 워킹머신에 올랐다. 두 곡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맘처럼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흔들었다. 뻣뻣했던 몸은 윤활유가 들어간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몸이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한 나는 세 번째 노래까지 듣고 있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기구를 양보하려고 속도를 멈추는 순간 다리가 풀린 걸 알았다. 다리의 힘으로 기구를 움직인 게 아니고 기구가 다리를 흔들어댔던 것이다.
불안함이 조바심을 냈고 내리막이 내리 있는 곳을 바라보며 당황스러운 고민을 했다. 나아갈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삼삼오오 벤치에 모인 할머니, 할아버지 틈새로 끼어 앉아 다리를 털었다. 그런다고 힘이 생기진 않겠지만 최종 목적지를 변경하고 싶지 않아 쉬어갈 마음이었다.
떨리는 다리를 염두에 두고 천천히 걷다 보니 체육공원이 나오고 연못이 보였다. 지난번에 보았던 물고기나 오리는 찾아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지압용 자갈밭을 돌아 약수터 입구까지 갔다. 셔틀콕 소리가 들리고 게이트볼장에는 어르신들이 북적였다.
철봉은 비어있고 꺼꾸리는 고장인지 테이프로 칭칭 감겨있었다. 마땅히 앉을자리를 찾지 못해 트위스트에 매달리듯 올라섰다. 빙글 움직이는 순간 내 눈은 맞은편 그네에 꽂혔다.
자매인지, 친구인지 알 수 없지만 좁은 그네에 세 분이 나란히 앉아 햇살을 받으며 발을 구르는 모습이 소녀처럼 귀엽고 아름다웠다. 똑같은 색의 점퍼를 입고 앉은 키도 비슷하고 발 구르는 박자까지 닮아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서둘러 그들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아냈다.
멈춤 속에 흔들리는 그곳만 시간이 느리게 가는 거처럼 보였다.
‘바깥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이런 거구나!’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며 벙거지를 벗고 적당히 젖은 머리를 바람에 맡겼다. 엉클어지지도 못하고 이마에 딱 붙어있는 앞머리가 상상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갈림길에서 되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내가 대견했다.
뱃살은 1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생각은 날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