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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원 Mar 25. 2022

중년의 첫발은 무겁고 느리다

강의실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난 그 안을 소심하게 들여다봤다. 교육센터 담당자는 교단에서 인터넷 선을 찾느라 분주하게 움직였고 배정된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다. 정원이 다 안 찬걸 보니 화상수업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모양이었다. 쭈뼛거리다 들어간 나는 누구와도 눈이 마주치지 않았지만 다소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코로나 때문에 얼굴과 하나가 된 마스크는 걸어오는 내내 습기를 담아 축축하고 답답했지만 서로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는 측면에선 오히려 잘된 것 같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정시에 수업이 시작되고 연륜과 경력이 묻어난 강사는 본인 소개를 했다.

‘나는 저 나이 때 뭘 했을까? 음, 역시 저 자리는 거저 얻는 게 아니구나.’

라는 별게의 생각을 했지만 부러움 또한 사실이었다.      


본인 소개와 커리큘럼을 설명한 강사는 간략한 질문을 한다며 인기와 성공에 대해 사전적 의미를 쓰고 차이점과 생각을 각자 톡으로 올리라고 했다. 남들처럼 별 다른 생각 없이 사전적 의미를 찾아 복사하고 붙이려는데 뒤에서 들리는 터치음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첨엔, ‘빠르다’ 생각하고 말았는데 곧이어 그 소리가 나를 쫓듯이 따라왔다. 묶인 발로 도망가지 못하면서 소리 나지 않는 소리만 지르는 기분이었다. 평정심은 깨지고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단톡방엔 장문의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사방에서 두드리는 터치음은 굉음처럼 들렸고 두근대는 심장의 떨림은 손끝까지 가고 말았다.  

생각을 기다리던 손가락은 흐릿하게 보이는 자판 위에서 한 글자만 계속 치고 있었다. 

느렸던 게 생각뿐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자 그나마 썼던 글도 지우고 흥미 잃은 휴대폰도 내려놨다.

이내 혼자 또 서글펐다. 

‘우쒸, 안 그래도 아무 때나 서러운 나인데.’


잘할 거예요, 어디서든-멍 작가 지음(북스토리)


작년 8월에 하던 일을 멈췄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게 아니고 정말 쉬고 싶어 내 다리를 걸었다. 

두어 달 동안은 쉬는 방법을 몰랐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불안했다. 그 불안함은 영화를 봐도 집중을 방해했고 끼니때마다 찾아오는 허기짐도 잊게 했다. 하루의 길이를 가늠하지 못하게 하고 어둑해짐에 짓눌리는 것 같은 기이함이 나를 누르고 또 눌렀다. 무기력함에 혼이 딸려 나가는 기분이 불쾌했지만 털어낼 기운도 없었다. 

번아웃 증후군이다.      


‘현실은 모르겠고, 난 일을 그만하고 싶다고!’   

  

일하는 것도 아니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꼴이 기막혔다. 휴일에도 낮잠을 안 잤던 내가 젖은 솜뭉치처럼 침대에 축 처져 땅이 꺼지도록 자고 또 잤다. 몽롱함에 흐느적거리다 뭔가 계속해야 한다는 강박증까지 만들었다.      

몸은, 오랜 시간 일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고, 통장의 잔고는 머리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몸과 머리가 분리되지 못하고 일하기 싫다고 반항하는 중년과 뒤엉켜 셧다운 됐다. 

17년을 복사하다 보니 판단이 닳고 명백함이 흐려졌다. 망가지는 건 정상이었다. 


첫 수업은 멍하게 당했고, 바짝 든 정신이 대신했다. 

버스 앞자리에 앉아 차창에 머리를 기대자 퉁~퉁퉁 내 머리가 흔들렸다. 

별거 아니라고! 아니면 말라고!

서강대교에서 바라보는 한강 둔치의 야경은 어제보다 더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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