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원 May 10. 2022

핑크 하우스

큰 방 1, 거실 겸 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 1, 그리고 주방과 다용도실이 있던 아파트에서 신축 빌라로 이사를 했다. 빌라를 선호하지 않았지만 이사 날짜가 촉박해 집 보러 다닐 시간이 부족했다. 그나마 새 집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기에 빠른 결정을 하게 했다.

새로 입주한 집은 큰 방 1, 작은 방 2, 주방이 분리된 넓은 거실이 있는 구조였다. 이 전 집보다 평수가 넓어져 쾌적한 생활을 할 줄 알았지만, 그 공간만큼 무언가가 자꾸 채워졌다. 작은 방에서 거실까지 끌려 나온 장난감들은 키다리 아저씨 그림자처럼 늘어졌고 아이에게 스스로 정리하는 법을 가르치려 했던 난 거실 크기만큼 목소리만 커졌다. 네 살짜리 꼬마숙녀는 의사가 분명해졌고 가르치지 않은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늘어난 장난감은 뒤죽박죽 되어 정리해도 지저분해 보였고, 돌아다니는 레고 조각은 발바닥에 박히기 일쑤였다. 그래서 장난감 집을 만들어 통째로 쓸어 담으려는 구상을 했고 실천에 옮겼다.      


거실 공간은 충분했기 때문에 줄자를 찾아 거리를 측정하면서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간단한 사이즈였고, 간단한 듯했지만 의외로 손이 많이 갔다.

먼저 ‘ㄷ’ 자형으로 총길이를 재고 높이는 아이 키보다 높게 했다. 넓은 벽면에 맞게 만들려다 보니 정면의 길이는 길었고 양쪽 측면은 짧아 ‘ㄷ’ 자 모형은 기형이었다. 그렇게 사이즈를 재고 길게 나온 정면에서 2/3 지점을 잘라 경칩을 단 문짝을 그렸다. 아이 키보다 높은 양쪽 면에 비해 문짝은 낮게 만들었다. 아이가 문 앞에 서면 가슴 위로 안과 밖을 볼 수 있는 높이로 측정했다. 여닫이로 만든 문은 완전하게 젖혀져 공간 활용도 충분했다. 하지만 통째로 그려진 벽면이 답답해 보였다. 그래서 창문 대용으로 만들 구멍을 다양하게 그렸다.


정면에서 왼쪽은 사각형, 오른쪽은 세모, 양쪽 측면은 동그라미로 그린 허접한 도면을 들고 목공소를 찾아갔다. 비전공자인 내가 말하는 소재는 톱밥을 압축시킨 거였다. 목공소 사장님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원하는 바를 금세 알아차리고 며칠 걸린다는 말만 했다. 그리고 사장님의 갸웃거림은 며칠 후 도착한 물건의 무게감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다.

아이를 위해 제작했지만, 그 과정의 설렘은 완전한 내 몫이었다.  

벽면에 있던 소파를 창문 아래로 옮기고, 소파 옆에 있던 벤자민 화분은 텔레비전 장식장 옆으로 옮겼다.

도착한 가림막 같은 파티션은 생각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덕분에 쉽게 흔들리지 않아 아이 장난감 방으로 사용하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겉면은 연한 핑크색 시트지로 붙였고 안쪽 면은 별과 달이 가득한 야광 벽지를 사용했다. 아이와 함께 붙인 크고 작은 야광 우주선 스티커는 휑한 벽면을 흥미롭게 채워줬다.       


문을 열고 들어가 왼쪽 자리엔 레고 박스와 잡다한 장난감 박스를 넣고, 그 옆으로 작은 책상과 의자 2개를 놓았다. 약간의 공간을 만들고 오른쪽으로 소꿉놀이와 인형들로 정리하니 제법 아늑한 장난감 방이 되었다.

잔뜩 들뜬 아이는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들락날락거리더니 소꿉장난하며 음식을 만들어 내오기도 하고 창문을 통해 물건을 전달하고 간식을 받아 가기도 했다. 쪼끄만 아이는 밤마다 불을 끄고 그 공간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여우별 같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타임머신 같은 시간이었다.

감성이 풍부한 아이는 자장가를 좋아했다. 그날도 잠자리에 누운 아이는 자장가를 불러 달라고 했고 나는 좀 다른 걸 불러주고 싶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그렇게 첫 소절을 나지막하게 불렀는데 아이가 도리질하면서 눈썹 부위를 빨갛게 만들었다. 눈썹 부위가 빨갛게 물든다는 것은 곧 울음을 터뜨린다는 징조였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아냐. 아냐”

손사래까지 치더니 결국 커다란 눈에서 눈물을 떨어트렸다.

'아이고, 이 조그만 게 뭘 안다고'

그렇게 아이는 울었고, 난 우는 아이가 예뻤다.  

"달님은 영창으로 은구슬 금구슬을 보내는 이 한 밤 잘 자라 우리 아가"

나와 눈을 맞추며 울던 아이를 품에 안고 다른 자장가를 불렀다.


종일 신나서 뛰어다니며 말썽 부리다, 젖은 눈썹으로 잠든 아이 얼굴은 천사 같았다.     

      


당신은 언제 가장 행복했습니까?

난 이 질문에 늘 버퍼링이 생겼었다.    

오래된 육아일기를 쓰는 지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아이들을 키울 때 가장 행복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꼬마 숙녀의 딸기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