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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은새 Nov 29. 2019

301호는 날마다 출장중

수상한 그녀와의 첫 대면

“안녕하세요? 아랫집인데요.”

“…….”    


그녀는 현관문을 열어놓고 현관 입구를 정리하고 있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 빤히 쳐다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뭐 때문에 그러느냐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저…. 어제 밤부터 오늘 새벽 4시가 넘어서까지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계속 들려서요.”

“전 출근해야 돼서 10시면 자는데요? 남편은 출장 가서 없고요.” 

“아, 그래요? 이상하다. 새벽까지 계속 발소리가 났는데….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밤부터 새벽까지 들은 건 분명 발소리였다. 의구심이 들었지만, 여자의 표정과 말투는 담담하다 못해 당당했기에 나는 짧게 사과를 하고 내려왔다.    

그날이 토요일 정오쯤이었다. 며칠 전 이사 온 윗집에서 짐 정리 등을 하느라 새벽까지 발소리를 냈을 것이라 생각했고, 처음엔 이사와 짐 정리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쿵쿵거리는 발소리로 인해 신경이 예민해진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급기야 이해가 아닌 분노의 감정이 들어앉았다. 생각해 보라. 공동주택에 살면서 새벽 5시까지 발꿈치를 찍어대며 쉬지 않고 걸어 다니는 행태는 타인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처사가 아닌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사라는 특수 상황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상식 없는 발소리는 계속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다음날 출근길에 위집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 10시에 잠을 잤다고 한다. 남편은 출장 가서 없다고 한다. 아이들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 대체 밤부터 새벽 5시까지 쿵쿵거렸던 몰상식한 발소리는 대체 누구의 발소리란 말인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위집은 아니라고 하니 내심 안심이 되기도 했다. 새벽까지 깨어서 돌아다니는 윗집을 만나면 정말 고통이다. 아무튼 10시면 잔다고 하니 다행스럽고 고맙기까지 했다. 대체 발소리는 어디서 난 것일까?

그 날 이후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밤에도 새벽에도 심지어 출근 준비를 하는 아침에도 윗집은 조용했다. 간혹 새벽에 어쩌다 들리는 가벼운 발소리 정도였다. 10시면 잔다는 윗집의 말은 사실로 믿어졌고, 층간소음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렇게 평온하게 지내던 어느 날, 욕실 환풍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욕실 뿐 아니라 베란다 천장에서도 물이 샜다. 집 베란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한 지는 5년이 넘었다. 그동안 5년 동안 물이 계속 떨어진 건 아니었다. 윗집 베란다에서 물을 사용할 때만 물이 떨어졌다. 지난 1년 동안 물이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는데, 한 달 전부터 또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이사 온 위집이 베란다에서 물을 사용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했다. 베란다 천장은 오래 전부터 윗집 집주인에게 수리 요청을 해왔으나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지금껏 방치되어 왔다. 베란다 물은 방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거의 체념하고 지냈다. 그런데 욕실 천장에서도 물이 새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윗집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니 수리업자와 함께 찾아왔다. 수리업자는 우리 집 욕실 환풍구와 베란다를 확인하였고, 정확한 원인을 찾으려면 윗집을 점검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윗집이 일 년 내내 중국과 일본 그리고 부산으로 장기 출장을 가서 집에 사람이 없기에 점검을 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또한, 윗집은 장기 출장으로 집에는 주말에만 잠깐 왔다가 짐만 간단히 챙겨 또 다시 출장을 가기 때문에 집에서 물을 전혀 쓰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고로 물새는 원인이 윗집인 3층이 아니라 4층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하였다. 어쨌든 정확한 건 3층을 점검해봐야 하므로 세입자가 출장 가서 돌아오는 대로 연락해서 일정을 잡아보겠다고 말하고 그들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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