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소장 Feb 23. 2021

연봉 1억 넘는 상사

 “희생을 강조하고 강요하죠. 어떨 땐 강제할 때도 있어요. 단지 본인의 꿈을 위해서요. 우린 연봉 1억이 아니잖아요. 받는 만큼 일하는 거 아닌가요? 많이 받으시니 그만큼 많이 하셔야죠. 전 그렇게 생각해요.”


 ‘월 6,566,353원’ 연봉 1억의 실수령이다. 생각보다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신입사원과 비교해보면 약 세 배 정도 차이 난다. 억 소리 나는 연봉을 받으면 어떨까? 월급쟁이들 사이에서 성공한 축에 끼는 거 아닐까? 내 말을 들은 L은 혀를 내둘렀다. ‘억’이 아니라 ‘윽’ 소리가 먼저 나온다고 했다.


 “우리 회사에서 ‘TOP3’가 있어요. 대표, 상무 그리고 우리 부장이죠. 이 세 사람 연봉이 1억이 넘어요. 특히나 부장은 최연소로 팀장직을 맡았고 조기 진급도 달성한 회사의 인재(人材)죠. 하지만 직원들에겐 인간 재앙인 인재(人災)에요. 야근은 기본이고 주말 출근은 필수예요. 워커홀릭이죠. 덕분에 팀원들이 눈치 밥을 먹어요.”


 TOP3 멤버인 부장 주말 출근에 거리낌 없었다. 자서 주말 출근한 날에는 월요일에 꼭 색을 냈다. "주말에 출근해보니 컴퓨터가 켜져 있었다", "주말에 출근해보니 창문이 열려있었다"는 식의 을 했다. 자기가 주말 출근을 했으니 알아 달라는 투정이었다. 상사의 오버에 팀원들은 고된 월요병에 합병증까지 더 해졌다.

 “진짜 꼴 보기 싫은 행동은 따로 있어요. 주말에 출근하면 꼭 대표에게 전화해요. 그것도 회사 전화로요. 대표 휴대폰에 번호가 뜨잖아요. 그걸 노리는 거예요. 전화 내용이라 해봐야 별 거 없어요. 회사도 안 여는 걸요. 다만 부장의 속내는 명확해요. 바로 자신이 '주말'에 출근했다는 걸 어필하는 거죠. '회사를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하니까 잘 봐달라' 이런 메시지를 경영진에게 전달하는 거 아니겠어요?


 “누구보다 빠르고 높이 올라간 비결이 그거였군요. 연봉 1억의 비법이라니 잘 배워놓으세요.


 L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주말 출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 듯했다. 망상에서 도망친 L은 연봉 1억 부장의 일화를 덧붙였다. 부장은 퇴근시간만 되면 대표실 문에 온갖 신경을 쏟았다. 그러다 대표가 짐을 챙겨 나오면 누구보다 빨리 출입문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처럼 과한 행동은 오히려 실례 건만, 부장은 항상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문을 열어주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손잡이를 뺏긴 날엔 퇴근하는 팀원들에게 꼬장을 부렸다.


 “윗사람한테 하는 걸 보면 손바닥이 닳을 것 같아요. 어느 날 장이 화장실 앞에서 가방을 들고 서있더라고요. 잠시 후 대표가 화장실에서 나왔어요. 용무를 마치고 나온 대표에게 가슴에 품고 있던 가방을 건네주더군요. 아주 공손하게요. 가방 주인은 대표였어요. 화장실 간다고 가방까지 들어주는 모습이 짠했죠. 대표가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문이 닫힐 때까지 90도로 허리를 꺾고 있었어요.

 굽신거리는 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한편으론 마음이 아팠다. 연민이 생기려던 찰나 L의 말을 듣고 생각을 달리했다. 장은 전형적인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이었다. 여직원에게 옷과 화장을 지적했고 남의 아픈 가정사도 거리낌 없이 입에 올렸다. 상대방이 불쾌해하면 '농담'한 걸로 인상 쓴다며 태도를 질책했다. 윗사람 대하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온갖 트집을 잡으며 부하 직원을 갈궈댔다. 오직 경영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는 사람이며 다른 직원들은 필요할 때만 이용했다. 회사 사람들은 모두 장을 싫어했고 결재 요청이 아니면 대화조차 걸지 않았다.


 “이혼한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들 다 있는데서 “그러니까 이혼당하지”라고 말했어요. 직원들 기분 상하게 하는 걸로 벌금 매겼으면 연봉 1억을 다 토하고도 부족할 거예요. 어이없는 건 경영진은 장이 직원에게 존경받는 인물로 알고 있대요. 도대체 대표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 생각할까요? 몰라도 한참 모르네요.


 장은 연봉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TOP이었다. 회사에서 부하직원을 가장 많이 내보낸 장으로 영광의 자리를 또 한 번 차지했다. 올해도 벌써 세 명에게 사직서를 받았다. 퇴사 이유는 모두 똑같다. 장이 싫어서였다. 연봉 1억 부장은 부하직원에게 헌신을 넘어 회사에 인생을 갈아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삶의 중심은 회사가 되어야 하며 회사의 성장이 곧 자신의 성장이라 외쳤다. 대표적인 예는 월요일, 금요일 연차 금지였다. 본인뿐만 아니라 팀원들도 월요일, 금요일엔 연차를 못쓰게 했다. 샌드위치 데이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쉬면 업무 감이 떨어진다며 휴가를 제외하곤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걸 내버려 두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허락했지만 특별함을 구분하는 것은 장이죠. 연차 쓴다고 하면 이유를 물어봤어요. 개인적인 일로 쓰겠다고 하면 개인보다 회사를 먼저 생각하라고 잔소리해요. 내 연차 내가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왜 난리인지 모르겠어요. 예전에 있었던 선배는 장한테 화가 나서 화, 수, 목요일 삼일 연차를 쓰더군요. 하필 인사평가 몇 달 전에 그 일이 벌어졌는데 역시나 부장이 업무 태도 부분에서 최하점을 줬어요.


 장은 본인 말처럼 왜 인생을 갈아 넣으면서 까지 회사에 몸 바쳐 일하는 것일까? 그는 큰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훗날 지금 회사의 '임원'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지금 받는 연봉을 뛰어넘고 더 높은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을 희생하고 부하 직원들을 다그쳤다. 장의 꿈은 경영진이 되는 것이지만 직원들의 꿈은 아니었다.


 “희생을 강조하고 강요하죠. 어떨 땐 강제할 때도 있어요. 단지 본인의 꿈을 위해서요. 우린 연봉 1억이 아니잖아요. 받는 만큼 일하는 거 아닌가요? 많이 받으시니 그만큼 많이 하셔야죠. 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부럽지 않나요? 연봉 1억이잖아요. 우리 두 사람 연봉을 합쳐도 1억이 안 되는데요.

 L과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그는 확고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랫사람을 쥐어짜고 싶지 않았다. 굽신거리며 비굴하게 살면 돈이야 많이 벌겠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고 버려야 했다. L과 나는 구성원 모두가 자신을 싫어하고 미워한다면 불행한 삶이라고 결론지었다. 회사생활을 오래 하더라도 부장처럼 살지 않기로 다짐했다.


 연봉 1억이 넘으면 회사에서는 성공한 사람이죠. 그게 인생의 전부 인 가요?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미워하잖아요. 왜 저렇게 살까요? 결혼도 했고 자녀도 있거든요.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중요하지 않은가 봐요. 1억 벌면 뭐요. 그냥 돈 벌어오는 기계밖에 안 되는 걸요. 저는 조직의 대의와 이해관계에 모든 걸 갈아 넣으며 살지 않을 거예요.”


            

*연봉 1억 실수령 추산
주 5일 근무제의 월 근로시간은 209시간입니다.
4대 보험료는 근로자 부담액 기준이고, 소득세는 국세청 근로소득 간이세액표(2020년 2월) 기준으로 실제 실수령액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