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승찬 Mar 28. 2021

그래도 넌 아직도, 노래를 부른다네

음악은 잘 몰라도 옳고 그름은 잘 알고 있어서

솔직히 요즘은 하루에 한 번씩 음악을 관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수많은 공연에서 '신나야 한다'는 철칙 아래 무대 위에서 밝은 모습만 보여왔던 밴드의 프론트맨, 피싱걸스의 비엔나핑거 님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상상조차 못했던 말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련함과 함께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 때문이었을 겁니다.

익숙함에서 떼어놓고 싶은 코로나라는 단어가 온 세상을 뒤덮으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분야 중 하나는, 단연 관중들과의 면대면을 토대로 하는 공연계일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자본의 힘을 쉽게 받지 못하는 인디 음악신은 그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사분오열 당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코로나가 대두되던 작년 2월부터 12월까지 약 420개의 공연이 취소되는 등 순수 입장료로만 20억 원이 넘는 손해를 입었습니다. 그로 인해 한국 인디신을 대표하던 공연장들인 브이홀, 무브홀, 에반스라운지, DGBD 등이 문을 닫아 가뜩이나 메이저에 치중된 한국 음악계에서 홍보 수단의 핵인 '공연'을 잃은 아티스트들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허나 정작 그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준 건, 어쩌면 그들을 바라보는 인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몇 주 전, 홍대 공연장을 뜨거운 감자로 만들어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20년 전에 이미 자취를 감췄던 '일반음식점 공연금지 조항'을 다시 꺼내오면서 막 시작된 공연을 10분 만에 강제로 해산시키고 아티스트들과 관객들을 허망하게 집으로 돌려보낸 일이 생긴 겁니다. 이는 관련하여 이미 존재하는 법을 초월해서 적용한다는 사전 공지나 공문도 없었기에 거리두기 지침을 완벽하게 지켰던 공연장, 아티스트 측이 모두 예측할 수가 없었기에 그 당황스러움은 생각보다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어디선가 민원이 들어왔던 건 사실이었기에 갑작스러웠던 조치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입장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와 같은 양해의 메시지였다면 아쉬움은 존재했겠지만 그 끝맛이 씁쓸하게 남지는 않았을 겁니다. 허나 해당 공무원은 '우리가 공지할 의무는 없다'라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는 며칠 후에 마포구청 측의 의견을 담은 기사에서 그 방점을 찍습니다.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이 공연장이고 일반음식점에서 하는 '칠순잔치' 같은 건 코로나19 전에야 그냥 넘어갔던 거지, 코로나19 이후에는 당연히 안 되는 것 아니겠냐"*


이후 며칠이 지나 유명인의 입에서 시끄러워지고 나서야 칠순잔치 발언은 설명을 하다 일어난 오해라며 해명 기사가 나왔지만 그 설득력은 아주 떨어집니다. 오히려 해당 관계자가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들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꽤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 있습니다. 무지는 죄가 아닙니다. 다만 그 무지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감히 죄라 일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인식만 가지고 다른 사람이 몸을 담고 있는 곳을 폄하하는 일은 당연하게도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될 일이겠죠.

어릴 적 겪었던 한 일화가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한 친구와 그 친구의 어머니를 마주하게 되어 같이 거리를 걷게 되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 둘에게 요구르트 하나씩을 나눠주고는 빈 플라스틱 통을 다시 본인에게 달라고 하셨습니다. 의심 없이 통을 비우고 그 쓰레기를 건네준 저는, 받자마자 적당한 곳에 그 요구르트 통을 집어던지시는 걸 보며 뜨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주워오려는 저를 손이 더러워진다고 막으며 '이게 저 사람들이 하는 일이야'라고 말한 어머니의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그가 가리킨 손가락의 끝에는 멀리서부터 집게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시는 청소부 아저씨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얹으신 말은-

"너희는 공부 열심히 해서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해. 알았지?"

저는 그 순간 오히려 그 얼굴을 쳐다보며 이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습니다.

플래시백을 멈추고 다시 눈을 떠봅니다. 그리곤 방 한켠에 먼지가 쌓인 채 놓여있던 MP3의 액정을 한 번 후 불어주고, 전원을 오랜만에 켜서 목록을 살펴봤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는 인터페이스 속 존재하는 이름들.

딕펑스, 뷰렛, 브로콜리너마저, 빨간의자, 슈퍼키드, 언니네 이발관, 익스, 자우림, 좋아서하는밴드, 짙은, 코르크, 피싱걸스... 제가 좋아했으며 좋아하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가나다 순으로 스쳐 지나갑니다. 나름대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 화면. 허나 추억에 빠질 새도 없이 제 머릿속에 칠순잔치라는 단어가 다시금 강하게 박혀버립니다. 어쩐지 제가 아끼는 아티스트들의 커리어, 그리고 그들에게 환호했던 저의 추억까지도 더럽혀진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그 공무원분이 칠순잔치 발언을 하며 지은 표정은, 그 친구의 어머니가 지었던 그것과 닮지 않았을까요.

음악은 죽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본인들의 이름 뒤에는 잔인한 총성을 넣으며 본인들이 없더라도 음악은 흘러갈 거라 했던 에픽하이.* 허나 히든트랙의 Fly로 다시 날아올라 완성도 높게 마무리되던 그들의 4집과는 달리 현실은 꽤나 냉담하게 아티스트들을 죽여가는 것만 같습니다. 드럼이 심장을 울리고 베이스가 발 밑을 간질이는, 기타가 귀를 찌르고 키보드가 그를 보듬어주는, 그 기분을 다시 느끼기 힘들어질까 그저 한 명의 리스너로서 참담한 마음을 가지게 될 뿐입니다.

"많이 부족한 자리였는데도 불구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그 자리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이 기운으로 며칠을 버티지 싶어요."

평소와 같았으면 객석을 차지했던 한 사람의 몫으로 뿌듯하게 바라보았을 공연 후의 코멘트도, 약간은 슬프게 들린다 표현하면 그건 주어진 무대를 감상하는 관객이라는 저의 롤을 어긴, 주제넘은 판단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행복함만 느껴진다 생각했다면 그것은 확실한 거짓일 겁니다.



[출처 및 인용]
* [두 번 우는 라이브클럽②] 현실 따로, 규제 따로..."어느 장단에 춤추나', 팝콘뉴스
* 에픽하이 4집 <Remapping The Human Soul) - 'Public Execution'

작가의 이전글 나를 모른다는 것에 대한 얕고 옅은 고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