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바빠서 진이 쏙 빠진 한주다. 머리만 어디 닿으면 잠을 잤다. 에어비엔비에서 지내는 노마드 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들어왔고 마루 공사를 시작했다. 집 들어가기에 앞서 밥통 먼저 입주시키는 것도 잊지 않고 했다 (미신 잘 믿는 스타일). 한국으로 치면 1층은 바닥은 말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2층 방 한쪽 구석에서 생활하고 있어 짐은 다 못 풀었지만 그래도 이제 정착을 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들었다. 주방이 정리가 안되어서 한동안은 마당에 작은 상을 펴서 밥을 먹었는데 햇빛 싹 받으며 먹으니 나름 캠핑 분위기가 났다. 이래저래 아직 불편하고 주변이 공사판이지만 그래도 어디 몸 하나 뉠 곳이 있다는 것에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평상시 먹던 것보다 부실하게 먹어서 그런지 몸이 많이 피곤했는데, 이게 나이 때문인지 신경을 여기저기 많이 써서 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의 먹는 낙은 갖가지 반찬 찌개와 함께 먹는 탄수화물 대신 매일매일 딸기 한 팩과 납작 복숭아 한 줄을 해치워 버리는 것에 있다. 내가 구독하는 몇 안 되는 채널 중 하나인 조승연의 탐구 생활에서 최근 올라온 내용 중, 안정적인 것 65 새로운 것 35 정도가 가장 밸런스가 맞는 삶 같다는 말이 있엇는데, 그걸 몸소 깨달은 몇 주를 보내고 있다. 너무 안정적이면 권태가 생기지만, 너무 모든게 새로우면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지친다 (이래서 젊을 때 여행도 많이 가고 이것저것 하라는 듯…). 어서 안정적인 상태를 50이라도 찾아서 피로를 좀 풀고 싶다.
그 와중에 출근해서 회사일하고 회의도 참석하고 있는데 지금의 생활환경이 좀 열악해서인지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 동료들에게 말했더니 식겁했다. 이것저것 신경 안 쓰고 원래 하던 일만 묵묵히 하면 되니 오히려 머리가 쉬어지는 느낌이다.
짐 정리하다가 힘들어서 이따금씩 드러누워 쉬는데 그러다가도 챙겨야 할 물건들, 사야 하는 가구가 생각나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것 같다. 아직도 결정 장애로 인해 여러개가 답보 상태이고, 하다못해 블라인드도 어떤 종류를 어떤색으로 달아야 할지 모르겠다. 인터넷 뒤져보다가 몇 개 골라 놓고 결정 못 하고 이런 상황의 반복, 그냥 이제는 뭐라도 사긴 해야 할 것 같다. 돈을 버는 것 만큼 쓰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다. 남편은 옆에서 열심히 전기 물 인터넷 자동차 보험 로열메일 카운슬 등에 컨택해서 주소나 인적 사항을 바꾸고 있는데 ‘늘 그렇듯’ 한군데 연락해서 처리하는데 거의 반나절씩 걸린다. 똑같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입이 아프다고 한다. 원래 이사 가는 게 이렇게 힘든 건가?
몸과 정신이 아주 피곤한 요즘이지만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집이 조금씩 정리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긴 하다. 일단 뭐가 없는데도 전 집보다 훨씬 따뜻하고, 다 새것이라서 (영국에 사는 동안 시설물 이용에 대한 역치가 아주 낮아짐) 쓰는 동안에 기분이 좋고 조심스럽다. 직전 월세가 런던만큼 엄청 비싸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냥 버리는 돈의 느낌이었는데, 이제 은행에 빚을 갚아갈수록 집에 대한 지분이 생기는 것 같아 뭔가 남는 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번 주말에는 날씨도 좋던데 마당에서 바베큐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