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전세계 최고 부자 집안, 로스차일드 집을 관람할 수 있다고 해서 가봤다. (2021년 기준. 이 집안 재산이 450billion, 그러니까 한화로 약 510조 정도 되는데 빌게이츠 재산이 103 billion인 걸 감안하면 가늠도 안되는 재산 규모다) 10년도 더 전에 대학생 때 쑹훙빙의 화폐전쟁을 읽고 상당히 충격(?)을 많이 받아서 이 집안에 관련된 책을 종종 읽어봤는데, 집(정확히는 별장 중 하나)을 공개했다니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안 가볼 이유가 없었다.
일단 얼마나 꽁꽁 숨어져 있는지 엄청 큰 대문을 지나고도 차로 한참 들어가야 주차장으로 조성한 부지가 나온다. 그리고 차를 대고 집이 있는 곳까지 들판을 가로질러 올라가는데 대략 30분이 걸린다. 올라가는 데 보이는 주변 땅이 원래 다 이 집안 소유라니 (지금은 National trust에서 관리한다), 너무 넓어서 이곳에서 누구 하나 실종돼도 이상할게 없을 것 같은데, 심지어 이게 수많은 별장 중 하나라고 한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면 집이 나온다, 흡사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느낌이다. 사이즈 좀 작은 베르사유 같고, 집 내부 리셉션에서 뒤 분수와 가든까지 이어지는 길은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가 파티하는 곳, 딱 영화 속 장소와 비슷하다. 정문은 정문대로 후문은 후문대로 화려함을 자랑한다. 추측건대 이들의 재산이 과거 프랑스 왕실보다 더 많았을 텐데, 그래도 눈치상 더 크게는 안 짓고 작게 지은듯하다.
최고 부잣집답게 내부를 유럽의 왕실들 인테리어 스타일로 해놨다. 다만 베르사유가 18-19세기 느낌이라면 여긴 아무래도 좀 현대적이면서 클래식한 느낌이다. 등에 맨 백팩이 여기 전시된 어마어마한 금액의 물건을 칠 수 있으니 앞으로 돌려 조심해 가지고 다니라는 주의를 입장 때 들었다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줄…ㅎ) 그만큼 사방이 고가의 물건투성이다.
관람하며 좋았던 점은 방마다 어르신들이 있어 가이드를 해주고 방을 구경하며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다 대답해 주신다. 몰랐던 내용이나, 백그라운드 얘기를 들으니 더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지금 이 가문의 직통 후계자인 한나 로스차일드는 최근에도 책을 펴낸 소설가이고, 대부분은 조상 때부터 최근까지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의 정치 금융계와 다 얽히고설켜 지금까지 쭉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내부 입구, 식당, 응접실 모두 엄청 화려하게 해놨고 누가 봐도 이건 비싸고 럭셔리하다는 느낌을 주는 조형물과 예술작품, 가구, 인테리어 장식으로 집을 꽉꽉 채웠다. 멋모르는 내가 봐도' 아, 저건 진짜 엄청나게 좋아 보인다'라고 느낄 정도다. 그중 일부는 크리스티 경매에 아주아주 고가로 팔린 것도 있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이 이 가문이 프랑스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어 와인을 생산한다고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와인에 대한 관심 때문인지 집 지하에 거대한 와인셀러가 있다. 과장 조금 보태면 와인셀러가 운동장 만하다. 스케일이 다른 부의 사이즈다ㄷㄷ. 좋은 와인을 열면 같이 나눠 먹은 사람들의 서명을 병에 남겨 기록하는 것이 관례 같았는데 엘리자베스 여왕, 다이애나비, 로스차일드 가문 사람들, 데이비드 호크니, 미국 정치 경제 관료들과 예술가들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은 서명이 와인 병마다 가득했다.
베르사유 같은 경우는 주로 역사 속 인물들을 바탕으로 유적지를 관람하는 느낌이라면, 로스차일드는 현존하는 사람들이기에 조금 더 와닿았다. 진짜 내가 모르는 세상 부자들의 삶은 이렇구나 조금 체감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이렇게 부유한데도, 책 쓰고 일하고 직업인으로서 자기 할 일 하며 삶을 부단히 꾸려나가는 것 보니 인간이 사는 것 그 자체는 크게 차이가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
사담. 요즘 중국의 ‘Being rich together’ 슬로건 때문에 기업이나 연예인들이 엄청 털리는데, 중국 일반 사람들이 예전에는 몰랐던 이들의 사치와 향락 (그 밑바탕에 깔린 돈세탁, 부정부패, 횡령 등)을 sns를 통해 널리 알게 되며 군중이 분노했기 때문이라 한다. 물론, 중국식 사회주의의 진짜 얼굴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반면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유럽 '찐부자'들의 경우 세계 2차 대전 이후로 대외적으로 자취를 싹 감추었는데, 과거 프랑스 혁명부터 이어지는 서방권 민중들의 부자들에 대한 반발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들의 치밀한 전략이 지금 보면 그들로서는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Waddesdon house처럼 꽁꽁 숨어있으면서 대중의 눈에는 안 띄지만 끼리끼리 어울리며 그들만의 세상을 아주 화려하게 구축해 놓는 그런 식이랄까. 반대로 전 세계 어딜 가나 티 나게 명품을 휘감고 다니며 자산을 자랑하는 중국은 갑작스러운 경제 발전으로 급부자가 된 졸부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13억의 대중의 공격 타깃이 되고, 꼭 프랑스 대혁명 때처럼 말이다.
어쨌든 로스차일드가에 대해 음모론이니 뭐니 말이 많아도, 이 집안사람들이 세상을 많이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존재들인 만큼 기를 잔뜩 받고 가는 느낌이다. 다만 너무 커서 다리가 무척 아팠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