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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Jun 08. 2021

교양이 뭐길래

이야, 저 사람, 참 교양 있다.

달콤했던 부처님 오신 날, 습관적으로 틀어놓은 텔레비전에 배우 하정우가 나왔다. 인생과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는 프로라고 했다. 보통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에 하정우는 보사노바, 재즈, 또 뭐를 듣는다고 답했다. 어떤 외국 가수를 좋아한다고도 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다 말고 멍하니 그걸 보며 생각했다.


이야, 저 사람, 참 교양 있다.




나는 교양과는 거리가 멀다. 더군다나 외국의 웬만한 문화들과도 거리가 멀다. 영화가 그나마 찾는 비율이 비슷한 듯하지만 그래도 한국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책도 한국소설이며 에세이를 더 자주 읽고, 노래? 가장 심각한 분야 중 하나다.


어느 카페에서 앤 마리의 '2002'가 흘러나온대도 아마 무슨 노래인지 모를 거다. 저스틴 비버의 노래도 그 옛날 옛적의 'Baby' 외에는 모른다. 다 그냥 어디서 많이 들어본, 좋은 외국 노래일 뿐. 방탄소년단이 'Butter'로 빌보드를 휩쓸고 있어도 나는 그 노래보다 방탄소년단의 '봄날'을 더 잘 안다.


그래서 그런지 누가 좋아하는 노래로 팝송을 꼽으면, 또 더 나아가 어떤 장르를 어떻게 좋아하고 어떤 가수의 어떤 느낌의 곡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 교양 있어 보인다. 특정 가수를 좋아해서 LP를 모으고 노래방에 가서도 그 팝송을 부른다고까지 하면 그 사람은 내게 확신의 교양인이다. 그날의 텔레비전 속 하정우도 내게 그랬다.


종종 우리나라, 그러니까 대한민국에 요모조모 불만을 품다가도 금세 푸시시 식고 마는 이유도 어느 정도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아, 탈조선 탈조선 농담처럼 말은 해도 정작 나가 봐야 무슨 재미로 산담. 나가 살아 봐야 다 내게는 우리나라 것보다 어렵고 흥미롭지 않은 것들뿐인데.


정말 의도는 1도 없는 애국자 납셨다. 이 나라에 가진 불만들을 혈관 속 DNA까지(근데 이 가사가 이과적으로 오류가 있다면서요?) 지독히도 K-어쩌고적인 취향이 찍어누르고야 마는구나. 이래서야 내 평생에 멋진 척 비싼 척 고상한 척, 척척척 삼척은 물 건너갔구나,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




이렇게 교양의 'ㄱ'자도 없는 듯한 내게도 그런 비슷한 소릴 듣게 하고 기함하게 하는 취미가 있다. 바로 공연을 보는 것이다. 뮤지컬이나 연극, 콘서트, 전시 같은 것들.


이런 걸 보러 다니는 게 취미라고 하면 대개 가장 크게 하는 오해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돈이 많을 거란 것이고 둘은 교양 있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두 가지 다 해당 사항이 없는데 말이다.


일단 돈에 대한 해명. 나는 돈이 없다. 더 나아가 매달 씀씀이를 줄이고 줄여도 수지타산이 안 맞을 정도로 벌이도 적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취미를 가지느냐고? 남들이 옷을 사 입고, 여행을 가고, 술을 마시는 돈을 나는 거기에 쏟는 것뿐이다. 나는 단벌 신사의 집순이이자 알쓰(알코올 쓰레기)니까.


누군가 술자리 한 번에 삼만 원씩 뿜빠이(!)할 때, 나는 그런 자리 세 번을 안 가고 홀로 조용히 콘서트를 본다. 누군가 이십만 원을 주고 셋팅펌을 할 때 나는 이만 원 주고 머리를 썩둑 자른 뒤 남는 십팔만 원으로 뮤지컬 티켓을 산다. 운 좋으면 두 장도 산다. 이십을 쓰고도 더 쓸 십팔만 원이 있는 게 아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다음은 교양. 레베카, 맘마미아, 시카고, 오페라의 유령 같은 뮤지컬만 뮤지컬이 아니다. (애초에 워낙 유명한 극들이라 저런 걸 한두 번 본다고 교양인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저렴하고 그보다 소규모인 뮤지컬과 연극은 아주아주 많다. 뒷배경을 몰라도, 시놉시스만 훑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그리고 가볍게 볼 수 있는 것들도 많고.


전시도 비슷하다. 물론 요즘은 '전시'라는 탈을  인생네컷 포토존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터라  의미가 약간은 변질되어가는 것도 같지만, 아무튼 흔히들 생각하는 난해함이나 극한의 예술성과 맞닿은 전시만 있는  아니다.  그대로 흥미로운 전시도 많다. 이해하기에도 어렵지 않고, 흔히들 생각하는 교양만큼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나 정도는 우스울 정도로 뮤지컬과 연극을 한 달, 일주일, 아니 하루에도 몇 편씩 보고 다니는 분들도 여럿 알기에 한 달에 두세 편쯤 보는 나의 자그만 소비(?)를 취미라 소개하는 것도 사실 가끔 민망하다.




물론 이런 해명을 일일이 하고 다닐 수는 없다. "너 돈 많은가 보네~"라고 한 마디 던지고 마는 이들은 보통 내 대답을 들을 의향이 없이 하는 말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취미를 밝히면 얼결에 교양인이 된다. 내게 크게 관심은 없지만 지나가듯 들은 내 취미 생활만큼은 이상하게 잘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번번이 멋지다, 신기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럴 때면 생각한다. 내가 잘 모르고 관심 없는 걸 잘 알고,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사람을 '우와'하고 바라보며 교양 있다고 여길 때, 그 사람도 나 같은 기분을 느낄지 말이다.


교양. 교양이 뭐길래. 교양은 어떻게 쌓는 것일까. 어떤 걸 교양이라고 부를 수 있고 어떤 걸 교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걸까. 그 경계는 누가 정하는 걸까.


결국에는 다 상대적인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도 취미를 밝히면 돌아오는 '되게 교양 있어 보인다'는 묵직한 칭찬에 그저 허허실실 웃어본다. 제 인생에 교양이란 대학 시절 수강신청에 번번이 실패하곤 하던 그 '꿀교양'뿐인걸요, 라는 솔직한 대답은 꿀꺽 삼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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