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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Jan 13. 2022

다정에 대한 간단한 고찰

앞으로도 다정으로 쌓아올려 더욱 더 견고해질 나의 세계.

나는 다정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그 표현에 담기는 따스함과 포근함, 또 소중함이 좋다.


전에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다정을 주고받고 싶었다. 소중하게 여기고 또 소중해지는 것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인간관계를 넓히고만 싶어 했고 어디든 발을 걸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좀 다르다. 그러니까, 흔히들 내 사람이라 일컫는 이들의 범주를 늘리기보다 지금 이 바운더리 안에서 양껏 다정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거다.


전에는 다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다정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더 정확히는 마음 가는 대로 다정을 나누어주는 일이 모두 낭비라고 여겼다. 냉정히 말하면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 나도 모르던 내 안의 인색함이 나의 다정을 아끼게 만들었다.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다 한순간 그 사람을 잃으면 어떡하지?' '그럼 내 다정은 다 어디로 사라지는 거지?' 생각했으니까.


이런 이유들로 살면서 누군가에게 다정하기가 참 많이 망설여졌는데, 어느 날엔가 문득 그런 걸 재고 따져서 주는 것이 과연 진짜 마음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꼭 내 맘과 같은 마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일일이 재고 따지다가 평생 누구에게 얼마큼이나 줄 수 있겠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모든 게 한결 편안해졌다. 설령 영영 돌려받지 못한대도 받은 이 중 누구라도 조금쯤 행복해 보인다면 그걸로 그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돌아오는 다정에 집착하지 않게 되면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정에는 정해진 총량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에게는 그걸 깨닫게 해준 친구가 있다. 옛날부터 주변의 좋아하는 이들에게 작고 소소한, 그리고 깜짝 선물을 해주는 것을 즐기곤 했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이나 되돌아오는 어떤 것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기뻐하고 반가워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데면데면하게 받아드는 사람, 예상치 못하게 난감해하는 사람, 가끔은 다시는 마음을 내밀 용기가 나지 않게 선을 긋곤 하던 사람도 있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아무리 상대를 생각해서 고른다 해도 결국 내가 원해서, 내가 고른 걸 주는 것이라 상대가 그렇게 기뻐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당연하다. 그걸 알면서도 역시나 또 사람 마음이란 게 매번 풀이 죽었다. 그래도 조금쯤 더 좋아해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 그 친구를 만났다. 누군가의 만남에서 으레 그렇듯 사소한 선물을 줄 일이 생겼다. 문득 그 친구가 떠올라 준비한 작은 것이었다. 그런데 유독 반응이 남다르게 돌아왔다. 별것 아닌 것에도 얼마나 좋아하고 기뻐하던지, 오히려 선물을 준 내가 얼떨떨할 정도로 반응해 주는데 마음속에 무언가 화아악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대번에 확 말고, 화-아-악, 아주 느릿하면서도 가득하게. 그때 생각했다. 어쩌면 주는 기쁨이란 게 이런 거구나. 다정에 다정으로 화답 받는 게 이런 거구나.


더 많이, 더 자주, 더 좋은 걸 주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더 특별한 것도. 친구가 너무 예쁘다며 한참을 만지작거리다 돌아선 귀걸이를 슬쩍 사서 손에 쥐여주었다. 퇴근 후 짬짬이 작업해 친구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우고 친구의 이름을 넣어 만든 친구만을 위한 포스터를 두 달 만에 만나 주기도 했다.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언제나 뛸 듯이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친구를 보며 내 마음도 얼마나 들뜨고 신이 났는지 모른다.


장난스레 직접 말해준 적도 있다. 너는 네가 얼마나 선물할 맛이 나는 사람인지 모르지! 그리고 이제는 부쩍 내가 더 자주 돌려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언제 어떻게 관계가 어그러질까 두려워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하는 것에 두려움이 앞서는 내게 이만한 확신을 선물한 친구가 참 고맙다. 




좋은 이를 만나 한 뼘 더 자라나며 다정해진 나의 세계.

앞으로도 다정으로 쌓아올려 더욱 더 견고해질 나의 세계.


좀 더 너르게 열린 세계 속에서 다정에 총량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무한정 쏟을 수 있는 다정에 세상 단 하나 제약을 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여유이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다정이 미약한 건 누군가가 나빠서, 부족해서가 아닌 여유가 없어서라고. 내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다정에 내어줄 수 있는 부분도 그만큼 좁아질 테니까.


그래서 항상 여유롭고 싶다. 내 다정을 받을 이들을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말이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퐁퐁 샘솟는 다정을 가진 이가 어떻게 따뜻하고 건강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스스로에게도 선(善)이자 익(益)이 되어 줄 거라고 믿는다.


오래지 않았지만 가진 시간의 두께만큼은 두껍게 발린 나의 J에게 이 글의 한 자락을 바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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