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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ysloth Nov 14. 2020

11월 14일 - 할머니와 손녀

오늘이 딱히 특별한 날은 아니다.

드라마 경우의수를 틀어놓고 코딩을 하다가, 

갑자기 '나는 원래 글을 쓰고 싶었어'라는 주인공의 말이 귀에 박혔다.

그리고 옆에는 할머니가 곤히 자고 있다. 


이모들한테 보여줄 할머니의 모습들,

나중에 돌아보고 싶은 웃긴 순간들을 

영상으로 많이 찍어두기는 했다.

언젠가는 유튜브에 올릴 생각이긴 하지만,

지금은 편집할 여력이 없어서 자꾸 밀려난다.

그래서 그냥 매일 밤, 아니면 하루 걸러 하루라도 

할머니 옆에서 짧게 기록할까 한다. 


엄마가 밤에 장보러 나가고 한시간이 지났을까.

할머니가 내 공부방에 또 들어왔다.

'엄마한테 전화 좀 해봐'

'아직 오려면 멀었다니까'


전화했더니 통화중이었다.

지금, 통화중이라서, 전화를, 할 수가, 없다고,

몇 번을 이야기하고 설명하고 나서야

할머니를 침실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한창 하던 작업을 마치고서야 침실로 가보았다.

아까 귀찮아하면서 밀어냈던 게 미안했는데 

다행히 할머니 혼자서 티비를 잘 보고 있었다.


나도 쉴 겸 할머니랑 놀아줄 겸

이불 위에 누워서 할머니 이불 아래 다리만 쏙 넣고 발을 데폈다.

그리고 스트레스볼을 집어서 이불을 덮은 할머니한테 툭 툭 던졌다.

'아이 아퍼'

'그래? 할머니도 해봐'

그랬더니 옳다구나 하고 온 힘을 다해서 던진다.

맞은 게 꽤나 억울했나보다. 

은근히 아프긴 하네...

우리 할머니 그냥 당하고만은 못 사는 성격이구만.

그래도 얼굴은 조준하지 말지 할머니...?

둘이서 킬킬거리면서 나는 계속 공을 주워다 할머니 손에 쥐어주었다.


이러고 놀고 있으면 그래도 시간이 금방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엄마가 두 세시간을 나가있는 동안 아무도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할머니한테는 그 시간이 반나절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침실 바닥에 앉아서 계속 노트북을 할 수는 없으니,

공부방에 있다보면 할머니를 챙기는 걸 깜빡한다.

방법을 뻔히 알면서도 할머니의 지루함을 달래주지 못해서 

할머니가 엄마 늦는다고 스트레스 받는 날에는 괜히 미안하다.


그래도 오늘은 같이 놀아서 그런지 엄마가 금방 돌아왔다.

오늘은 할머니가 전화하라고 한 번만 보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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