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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반려 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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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Oct 21. 2019

영혼이 춤추는 시간

반려 첼로 5

눈을 감고 있어도 어지럽고 눈을 뜨면 눈 앞의 모든 것들이 핑핑 돌았다. 화장실에 가면 메스꺼워서 토할 거 같았다. 급체인가 싶어서 급하고 두려운 맘에 손을 땄다. 선생님께 결석 메일을 보내야 하는데 폰 화면을 볼 수가 없어서 어지러움이 진정이 되길 기다리다가 잠들었다. 맘이 불편하니 잠도 잠깐, 눈을 부릅뜨고 메일을 보냈다.

하루 종일 어지러워서 아무것도 못 하고 물도 못 마셨다. 방은 2층, 부엌은 1층인데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질 것만 같았다. 뭘 먹어도 메스꺼워서 게워낼지도 모르고 그게 더 고생이겠다 싶으니 그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녁에 (베트남이 모국인) 하우스메이트가 집에 오자마자 누룽지에 생강, 마늘, 미역을 넣고 끓여서 들고 왔다. 벽에 기대앉아 먹는데... 따뜻하고 부드러운 게 내 몸에 들어오니 뭉클해서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다음 날 택시를 불러서 학교 클리닉 센터에 갔다. 이석증 혹은 뇌에 문제가 있나 싶어 검사를 어디까지 해야 하나 겁도 나고 막막했다. 의사 선생님은 모국어가 뭔지 물어보더니 구글 번역기에 적었다, gastroenteritis. 특별히 뭘 먹은 것도 없고 외식도 안 했고 일상의 변화가 없었다고 의아해하며 이석증을 물었더니, 이석증은 고개를 돌릴 때만 빙글빙글 도는 거고 나는 박테리아 감염이란다.

집에 가서 푹 쉬라는 조언에, 숙제가 많아서 해야 하는데 어제오늘 결석해서 더 걱정된다고 했더니, 학교 제출용 의사 진단서에 아파서 숙제를 할 수 없고 최소 3일은 푹 쉬어야 하니 숙제를 연기하는 게 마땅하다고 적어줬다.


혼자 사는 삶.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벗들이 있지만, 내 일상의 공간을 혼자 사는 내가 가장 겁나는 순간은 나 스스로 내 몸을 추스를 수 없을 만큼 아플 때이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으나, 내가 스스로 정신과 감정을 돌보지 못하는 그 시간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어지러움증과 두통은 일주일이 지나면서 사그라졌다. 기운이 나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현악기사.

도서관에서 책 빌리는 것만큼이나 첼로를 빌리는 것 또한 간단했는데 왜 이리 망설이고 시간을 흘렸을까.

너무 오랜만에 안아보는 첼로는 여전히 내 심장에 닿는다. 그 울림이 설레고 뭉클하고 지극히 솔직해서 음계만 연습하고 기대어 놓아도 충분하다. 음계의 손가락 위치도, 현을 잡는 손가락 모양도, 손목과 어깨도 어색하지만, 내 방에 내 곁에 첼로가 있는 일상을 더하니 내 영혼이 그제야 웃고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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