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 Dec 03. 2018

흔치 않은 흔한 일, 막 크리스찬 이야기

특수학급에서 만난 학생들 이야기

  코이카 해외봉사단으로 필리핀 로사리오 통합학교에 파견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필리핀은 3월에 학년을 마치고 4~5월은 긴긴 방학입니다. 그리고 6월에 새 학년이 시작됩니다. 세상에, 방학이 두 달이나 되다니! 마침 학교 앞, 시청 건물에 시립 도서관이 하나의 공간으로 생겼습니다. 비록 10평도 안 되는 공간이지만, 예닐곱 책장과 칸막이 책걸상도 있으며 에어컨까지 가동됩니다. 덥고 더워서 입맛도 없고 기력도 떨어지는 핫썸머를 보낼 생각에 아득했는데, 도서관에 가면 공부도 하면서 시원하게 보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라 생각을 했지요.

  그날도 그렇게 나섰습니다. 아침 8시면 여는 도서관인데, 그날따라 한 시간이 넘도록 사서 선생님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집에서 종일 선풍기의 더운 바람에 의지하느니 몇 십 분일지라도 기다려서 도서관 에어컨 밑에서 시원하게 보내는 게 아무렴 훨씬 낫다며 맘을 달랬습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를 구경하며 도서관 앞에 서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도 저를 구경했지요.

  겨드랑이가 끈적거리고 목에 땀줄이 자꾸 흘러내려 이대로 집에 가야 하나 고민이 슬슬 될 즈음, 옆 사회복지과에서 문이 열리더니 한 학부모님께서 저에게 다가오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하십니다. 하얀 천을 동그랗게 말아서 이마에 띠를 두르고서요. 무슨 일이냐고 여쭙자, 아들 크리스찬만 부릅니다. 담임선생님한테 알렸냐고 물으니 고개만 흔드십니다. 이곳은 핸드폰에 일정 금액을 충전해서 사용합니다. 그래서 혹시 로드가 부족했나 싶어서 부랴부랴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연결해드렸습니다.

  점심시간에 특수학급 선생님들과 학교 정문 앞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마트에 들러 커피와 주스팩을 사들고 크리스찬의 집에 갔습니다. 집은 논 한 가운데에 있어서 논길을 따라 걸어가야 했고, 쪼리를 신은 선생님은 풀 사이를 골라서 딛었습니다. 크리스찬은 처마 밑에 누워 있었습니다. 관을 받치는 두 버팀목 사이에 강아지 두 마리가 새근새근 자고 있었습니다. 처마를 덧댄 천막에 앉아서 크리스찬의 영정사진을 보았습니다. 며칠 전, 종업식 때의 모습 그대로더군요. 상장으로 받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손에 막대사탕 꽃을 들고. 조문객들에게 나누는 음식이 음료와 비스킷인데요, 집이 너무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워서 먹는 게 도리인지 그대로 두는 게 예의인지 난감하더군요. 그래도 크리스찬이 주는 음식이라니까 음료만 나누어 마셨습니다.

  크리스찬은 어깨에서 팔이 등쪽으로 젖혀져 자랐습니다. 마치 배가 등이고 등이 앞부분이어서 손을 뒤에서 모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팔에는 팔꿈치가 없고, 팔꿈치 자리에 손이 시작됩니다. 손가락이 두 가닥으로 붙어있는 데다가 두 마디뿐이어서 물병을 감아쥐기 어렵습니다. 엊그제 가족들과 수영장에서 놀다가 넘어졌는데, 공교롭게 시멘트 바닥이었대요. 손으로 바닥을 짚지 못하니 머리가 그대로 바닥에 부딪쳤겠지요. 그때는 본인이 괜찮다며 다시 잘 노니까 부모님도 걱정을 하다 마셨겠지요. 밤에 자다가 토하였고, 다음 날 아침에 걸음마 동생이 “꾸야(오빠), 꾸야..” 하며 흔들어 깨워도 꿈쩍도 안하더랍니다.

  부랴부랴 근처 가장 큰 병원에 갔대요. 그 병원은 제가 감기몸살처럼 아픈데 38도가 넘는 고열이어서 뎅기열 검사하러 갔다가 3일 동안 열이 지속되면 검사하러 오라며 감기약 처방만 해준 곳이에요. 손을 쓸 수 없어서 더 큰 병원으로 가라 했고, 구급차를 타고 갔지만 이미 길에서 한 시간 이상을 더 달려야 했습니다.

  장례기간은 일주일이었고, 마지막 날 밤에 선생님들과 다시 모여 크리스찬에게 작별인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페이스북 쪽지로 크리스찬의 사진을 모았고, 담임이었던 엘리노르 선생님이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라켈 선생님은 크리스찬이 좋아하던 사탕을 사들고, 제이비 선생님은 빔 프로젝터를, 크리스틴 선생님은 노트북을 들었고, 로 선생님은 앰프를 끌었습니다. 저도 무언가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전날 그렸던 아이의 얼굴을 액자에 담았습니다.

  캄캄한 하늘에 별들이 은하수에서 흩어져 나온 듯 무수히 많았지만, 그믐에 가까워 땅은 어두웠습니다. 우리는 서로 손전등으로 앞 사람의 걸음을 비춰주며 논길을 걸었습니다, 마치 지상의 북두칠성처럼요.

  선생님들과 함께 도착하고나니 마을 사람들이 더 모였습니다. 크리스찬의 명복을 빌고 추모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크리스찬이 누워 바라볼 수 있는 벽에 흰 천을 둘러쳤습니다. 몇 장 되지 않은 사진이었지만 우리는 보고 또 보고 또 보았습니다. 사실 담임선생님은 혼자서 입에 넣을 수도 먹을 수도 없는 크리스찬이 간식으로 무엇을 챙겨왔는지도 모를 만큼 무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찬도 결석이 잦았기 때문에, 영상은 사진 몇 장 뿐이었고 한 곡의 음악이 끝나기도 전에 반복되고 또 반복되었습니다.

  2015년 4월 15일, 세월호 추모 미사가 있던 날에 크리스찬의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 가족, 동네사람들, 선생님들, 친구들과 친구 가족들이 운구차를 따라 동네 추모공원에 걸어가서 크리스찬의 길을 배웅했습니다. 크리스찬이 하늘이 덮이기 전에 누워서 고이 품은 것은, 평생 갖고 놀 수 없고 죽어서야 자기 몫이 생긴 큰 자동차 장난감과 얼마 전에 선물 받은 빨대 달린 물병이었습니다.

  6월 1일, 새 학년 첫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유․초․중등부가 모두 한 울타리에 있는 학교는 부산스러웠습니다. 수척해지신 어머니께서 새로운 시작에 상기된 학생들 사이에서 크리스찬의 책과 물품을 챙겨가셨습니다. 내 살이 겹치는 곳마다 땀범벅이 되니, 사람이 가까이 닿으면 더 더운 이 여름에 어머니께서는 얼마나 가슴이 시리셨을까요.

  누구나 어떤 생명이든 태어난 것과 같이 죽음 또한 자연합니다. 하지만 크리스찬이 필리핀 시골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적 결함이 장애가 아니고 접근성 또한 좋은 곳에서 태어났더라면 지금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소위 ‘강대국’에서 ‘약소국’으로 퍼지는 것이 정치.경제적 침탈의 논리가 아니라 의료.교육적 분배가 먼저 이루어졌더라면 죽지 않아도 될 생명이 죽게 되는 경우는 적어도 인간 차원에서 의롭게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 세상에 힘없이 사그라지는 수많은 크리스찬들이 여전한 오늘밤에도 크리스찬의 하늘이 덮이기 전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은 어디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